내가 가야금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연주자가 잠든 후에, 가야금은 무엇을 할까요?

by 가야금 하는 희원

연습을 마친 뒤,

연주자의 고뇌와 열정이 젖어있는 가야금,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달빛을 회상한다.


마치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메뉴를 고르듯

연주자가 연주했던 선율을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말이다.

특히 왼쪽 4번째 줄은 위, 아래 높이를 교차했던 오후답을 떠올리며 차분함을 선택한다

(흔히 사람들이 아는 바이브레이션을 가야금에서는 '농현'이라는 연주방법으로 떠는소리를 내곤 한다)


위, 아래 바쁘게 여음을 운반하랴

꽤나 피곤했을 것이다.


과연 수백 개의 소리를 빛냈던 혹은 설익기도 했던 여음들은

내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어디로 향할까?


마냥 어릴 때는 그 여음들이 휘발될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의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며 겸허해지기도 하였다.


지금의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은하수를 깊이 새기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조각 이불에 자기의 곰인형을 품듯,

조금씩 조금씩 끄적여가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로 끄적이는 것이 더딜 때면

벌써 토라진 가야금이 삐죽거리기 시작한다.

괜히 심술부리는 것이다.


뭉근한 끄적거림이 조금은 느리더라도 차라리 나태해지는 것보다

낫다는 반응이다.


머쓱함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손가락으로

가야금에게 화해를 권하며 악기 연습에 다시 몰입한다.


가야금은 이럴 때마다

내 숨자리에 맞닿아있는 슬픔을

양 입술 끝자락에 가지런히 걸쳐있는 미소를

심장에 툭 뭉쳐있는 호흡에 경청한다.


이 모든 것을 포용하기에 넓은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가 가야금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따라서 여러분도 이처럼

나의 이야기 속에서

가야금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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