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되지 않은 열정의 숨바꼭질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 그대를 위해 보내는 편지

by 가야금 하는 희원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것들을 잘하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순간순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찾아올 때면 이상하게도

난 시간이 딱딱하게 굳는 걸 느낀다.

유연하게 흐르고, 여태껏 유려해 보이던 시간이 굳건해진 걸 보면 나도 꽤 긴장했나 보다.


그 공간을 음표와 숫자들로 채울 때면 그들은 다소 엄숙해진 공기에 혼란스러움과 답답함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우린 신기하게도 눈뜨면 보이는 걸 더 ‘’잘 보려고’’ 혹은 귀로 들으면 들리는 걸 더 ‘’잘 들으려고’’ 동공의 크기를 확장시키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나는 가끔 일상을 지내다 보면 내 빛의 종착역이 무척이나 어색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땐 난 잠시 간절함의 온도가 너무 뜨거움을 알아차리며 내려놓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나의 피사체가 온전히 진실되게 빛나려면 지나친 나태함도 지나친 열정도 금물이다. 나에게 가장 온전한, 또는 내가 가장

안온함을 느낄 수 있는 온도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평정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평정심의 평평한 여유로움이 부러워질 때 즈음, 나에게도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그 자유로움은 감정의 호흡에 사로잡힌 내 기준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즉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으로 또는 되고자 하는 목표와 이상으로 나 자신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더 나은 세상을 그리고 더 나은 나로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마음의 조각이 과열된 감정에서 발생한 뾰족한 파편들이라면

잠시 머무름을 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이렇게 소중한 교훈을 깨달은 ‘나’이지만, 계절이 지날수록 내 열정의 계절 또한 추워지기도 하고 더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온도이기 때문에 반대되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의도되지 않은 열정, 숨 쉬듯 자연스러운 열정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아야 하는 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 채 부재를 기준으로 늘 노력을 갈망한다. 하지만, 진짜 우리가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이다.


따라서, 이제부턴 이 진실을 누가 먼저 똑똑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흠뻑 젖은 열정의 조각이

자신의 욕심에 결국 흘리고 만 눈물이 아닌, 우수에 찬 기쁨의 눈물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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