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계절 에세이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난 혼자 감성에 젖어 팝콘처럼 피어오르는 추억에 잠시 머무르곤 한다.
그러다가 잠깐 놀러 온 햇살 한 줄기에 비 오느라 깜빡했던 기지개를 조심스럽게 켜곤 한다.
이런 날은 미뤄뒀던 추억 여행을 허용해도 될 것 같은,
오묘한 센치함에 나를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날이다.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왜인지 빈 손이 더 비어 보인다.
왜냐하면 비 오는 날 '공연' 또는 '수업'이 있을 때면 나보다 가야금에 우산을 씌워주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수업과 공연이 없어서 가야금을 포근한 방에 세워 두고 나오는 날엔
내 왼손, 오른손의 허전함이 가야금의 존재감을 쉬이 드러내곤 한다.
빗방울을 마치 가야금의 현인 듯 무작위로 배열해놓고 나면 고르게 흩어진 악상이 울려 퍼진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듯 나만의 방식으로 빗방울 조각에 무엇이든 끄적거리는 것이 요즘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 되었다.
세상은 매혹적이면서도 얼음장처럼 차갑다.
비를 망각할 정도로
‘비’ 보다는 내 기억이 나를 사로잡을 정도로 굳건하다.
그러나, 나만의 방식으로 비에 내 언어를 끄적이는 게 행복한 일상이 된 건 세상의 차가움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인위적인 따뜻함을 추적하기보단,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온기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대단한 비밀은 없었고, 휘황찬란한 지름길 같은 것은 없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었고 '우리'라는 세상이었다.
살다 보면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세상이었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따라서, 난 모든 면에서 배움을 다독여야 하는 여행자이다. 늘 가던 곳도 혹은 가보지 못했던 곳에선 내가 모르고 싶은 일들이 벌어진다.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힘껏 모르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단정 짓는 순간, 배우기를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순간 펼쳐질 무응답이 어쩌면 가장 나를 옭아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늘 미묘한 가르침이 나의 마음을 울리는 순간을 대담히 마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내가 마주하는 것들에 조용히 응답하며 용기있는 삶을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