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1/2)
오랜만에 극장에 가기로 했다. 사실 요즘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 한국영화가 많이 나오고 많이 보려는 중이다. 그럼에도 딱히 호기심을 끄는 영화가 없다. 콘스탄틴이 새로 나온다니 그 정도나 기대할까? 극장(요즘은 영화관이라고 해야 하나?) 가기 전 식당에 좀 일찍 갔는데, 기다리란다. 조금 어이가 없긴 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을 정도로 괜찮다.
리모델링 중인 극장에 들어서니 공사가 한창이다. 극장 올 때마다 포스터를 한 장씩 갖고 가는데 요즘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관람료가 오르는 걸 생각하면 야박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차라리 옛날 동시상영관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수지타산이 맞을 리가 없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왔고 또 변해갈 것이다. 상영관에 들어서니 의자가 커졌다.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은 아니지만 우등버스 좌석 수준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줄어가고, 영화비도 오르고, 시설공사도 해야 하고 갈수록 1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늘어나겠지. 그런 점에서 돈 내고 광고 보는 시간은 짜증이 난다. 이건 관객이 돈을 받아야 한다고!
7-80년대에 유행하던 일명 2층 양옥집과 마당이 나오는 집을 보며 배경이 한국인지 해외인지 혼란하다. 해고와 실업, 이로 인해 가족이 처하는 상황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음 아프고, 잔인하고 또 복잡한 이야기다. 동시에 영화 주제로는 아주 진부하다. 오래전 인수합병을 마주하며 직원의 80%를 해고하라는 인수 측과 협상에 협상을 거쳐 결국 20%선으로 방어하느라 경을 친 적이 있다. 자리 올라가면 대략 난감 골치 아픈 일과의 대면이 잦아지지만 이런 일은 정말 지랄이다. 동료들을 위해서 실질적 보탬이 되도록 더 챙겨보고 나름의 결과가 있어도 욕만 배 터지게 먹을 수밖에 없다. 좋은 일이 아니니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배은망덕이란 말이 떠오를 때가 많다.
만수가 25년이란 말을 몇 번 하는데 사람은 자신이 시간을 쏟은 만큼 애착과 집착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회사를 해고하라'라는 노동관을 갖고 사는 내가 멘털이 좋은 것인지 또라이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정신적 타격이 적은 편이다. 대신 학처럼 살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먹을 찍 뿌려대는 놈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오리처럼 발을 열심히 구르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 방식이 영화와 같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다시 여러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상다반사의 문제를 영화로 만들리는 없을 텐데.. 왜 '종이', '파피루스'란 주제를 잡았을까? 찾아보니 구글신이 기원전 2560년 경에 파피루스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4천5백 년간 인간 문명과 함께한 종이와 파피루스를 돌아보니 영화가 새롭게 보인다. 만수가 가려는 회사도 파피루스라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종이, 종이의 기록을 통한 정보의 전달이 20세기까지 인류 문명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달리 책을 보라고 그렇게 어르신들이 닦달을 하지 않았나? 그렇게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전문가가 된다. 물론 전문가를 내 나름으로 정의해 보면 '안 되는 것만 콕콕 짚어내는 부작용이 심각한 부류들이고, 정작 기가 막히게 되는 건 잘 못하고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건 아주 잘함. 기가 막힌 건 일명 듣보잡이나 또라이들이 창의성이란 이름으로 혁신을 만듦. 그냥 남들이 다 아는걸 혼자 다양하고 깊게 아는 부류인 경우, 즉 말과 달리 할 줄 아는 게 의외로 없는 자격증에 묻어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물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줄 사람들도 많다. 잘 분별해서 전문가를 보자는 의미일 뿐이다.
범모.. 이름만 봐도 범상치 않은 배역은 구가다로 표현하려고 했는지 이름이 구범모다. 아날로그 오타쿠 분야의 하나인 오디오쟁이에 가깝다. 고시조는 이름만 보면 아주 옛날 이런 의미일까? 현역을 지키는 것은 역시 최선출.. 선수출신이란 말인가? 배역의 이름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유만수, 이미리, 이아라는 아직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구닥다리는 하나씩 사라져 간다. 어찌 보면 변화에 수동적으로 자중지란이다. 차라리 김해숙이 옥상에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돌아보면 훨씬 인상적이란 생각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파피루스의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물류로봇이 롤을 나르고, 장인이 확인하던 것은 자동화 로봇이 처리한다. 그곳에서 유만수가 하는 일이란 패드로 자동화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터치 몇 번이 전부다. 갑자기 샤오미 블랙팩토리가 떠올랐다.
그럼 유만수는 필요한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의미가 있는가? 장인의 영역은 테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집약된다. 이 집약된 프로그램은 목적에 맞게 설계된 기계를 통해서 장인보다 더 정확한 수준으로 균일하고 지속가능 생산이 가능한 자동화의 시대가 다가오는데 말이다. 기존 인류문명의 흐름을 믿던 사람들과 기득권은 현타가 올지 모르겠다. 이런 변화를 종이란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미래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어쩔 수가 없긴 하지.
산업화가 되고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지만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부작용이라면 전쟁도 과거보다 더 화끈하게 하는 점이 아닐까? AI와 자동화의 세상이란 새로운 문명의 흐름이란 변화는 어쩔 수 없다. 시작하기 전에 말려야지 인류문명에서 발동이 걸리면 멈추기 쉽지 않다. 어떤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존재해야 할까? 세상은 변해도 자식을 구하고자 과감해지는 이미리처럼 모성은 영원할 것 같다.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리원처럼 미래는 희망적으로 그리는 점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베팅이 아닐까?
영화가 끝난 지 2시간이 안 됐지만 아직도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렇게 자동화된 시대에 인간의 범죄는 어떻게 될까? 이것을 기계가 잡을 수 있을까? 인간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죄는 미래 시대에도 남아있을 듯하다. 완벽하지 못해서 얼빵한 듯 하지만 촘촘하게 빈틈을 채우며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다. 내일은 어떻게 살지 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변화를 거스를 수도 없고, 그 변화가 내일은 또 불명확해 보이니 인간은 매일매일 아리까리 하긴 하다. 프롬프터 엔지니어 같은 직업도 또 그냥 막 하는 게 아니다. 자동화가 되고 지식은 인간이 끊임없이 자원으로 확보해야 할 듯하다. 자동화는 좀 거들어 줄 뿐이고.. 거참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세상이란 nothing is easy 뭐 이렇지.. 옛날에도 지금도..
가을비가 그치면 선선한 하늘 깊은 푸른 하늘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굴러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식당 냅킨에 그려진 파란 고래처럼 희망은 인간이 내일을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되던가 ㅈ되던가 뭐 다 나 하기 나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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