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일이지만 미주에서 큰 계약 수주를 하자마자 대표이사가 회사를 M&A 시장에 내놨다. 이해가 가는 부분도 없지 않으나 얼떨결에 그 일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하게 됐다. 동시에 Why, 왜라는 질문을 다양하게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체스터의 경영자의 역할, 피터 드러커의 경영의 실제를 읽어 본 것은 참 도움이 된다. Back to basic과 같은 회귀인지 재귀인지 그런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현업을 하는 많은 직장인들은 업을 뛰어넘으려면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대표이사들은 업을 뛰어넘어 경영을 한다. 그 차이를 이해한다면 사기꾼 같은 부분이 많지만 자본시장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자본시장에선 어쩌면 투자, 기업소유를 떠나 기업이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상품의 속이 곪았는지, 상태가 좋은지, 내년에도 괜찮을지 사실 알 수 없는 미래와 상품의 상태의 지속가능성 때문에 고민하는 것 아닌가?
최근 국내, 해외 기업들의 홈페이지에 가면 Sustainability라는 글씨를 많이 볼 수 있다. 지속가능성이란 경영이란 글씨에 있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하고 있는 업을 번영시키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한국은 정부가 지원하고 밀어주고 가르쳐서 끌어올렸다. 21세기가 오면서 우리도 성장하고 기준이 바뀌고 있다. 교역조건 외에도 다양한 환경 여건의 변화에 따라 부가적인 조건들이 바뀐다. 그럼에도 기업은 지속가능 성장을 해야 하는 명제를 붙잡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철학이 시대를 반영하고, 경제학의 조류도 시대의 철학에서 자유롭지 않다. 굳이 철학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시대의 주요하고 중요한 요구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자원집중 성장이 만든 재벌구조와 21세기의 환경 속에서 산업이 한 단계 올라섰고, 지금은 그 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다. 방향이 아무리 좋다고 그 방향으로 움직일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방향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진 자본시장처럼 투명한 의사결정과 경영활동, 지속적인 성과도출이 가능한 경영활동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작년 유럽 1류 기업과 일을 해볼 때와 같은 일을 하는 국내 대기업과 비교하면 기가 찰 정도로 차이가 난다. 관련팀이 전부 사전 확인하고 참여하고, 자유롭게 의사소통해서 그 자리에서 기본 방향을 결정한다. 반면에 국내기업은 메일에 3-40명이 들어가서 누가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제각각으로 떠들기 바쁘다. 이런 게 수준차이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경영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은 것을 통해서 수준차이를 알 수 있는 근거다. 좋은 기업은 입구만 들어서도, 문서 하나만 받아도 차이가 난다. 기업 속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하는 정신의 수준, 그것이 경영의 수준을 가늠하는 작은 힌트기도 하다.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데 경영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안 그런가? 아무리 주인정신은 대주주가 갖고, 직원은 직원정신만 갖는다고 해도 말이다. 동업자정신이 발휘되도록 뭔가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한 해의 주요 사건과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시장의 결과를 통해서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법인 상법, 자본시장법을 일반인이 잘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법과 제도의 변화는 미래에 대단히 큰 영향을 준다. 책의 사례와 주식시장, 자본시장, 법률적 다툼의 결과보다도 법과 제도의 변화는 규제방식과 수준의 변화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강제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동시에 큰 바뀐 법과 제도의 틈을 후벼 파서 뭘 해보려는 음흉한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전자는 방향을 바꾸는 일로, 결국 행위의 변화는 관행과 문화의 변화를 초래한다. 후자는 변화에 대응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계속 PDCA처럼 보완, 수정, 검토, 실행, 피드백을 반복해야 할 뿐이다. 이런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일을 잘 안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등신짓을 하니 제값을 못 받는 것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머스크처럼 큰 비전을 갖고 도전하기보다 나라지원으로 안전빵, 그 이후에 자리 잡고는 편하게 사는 것과 더 큰 세상을 만들려는 도전의식이 부재한 것일 수도 있다. 기업과 경영자만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시대와 세대의 수준인 것이다. 다들 이렇게 저렇게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세상은 알게 모르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 지금까지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보다는 집사서 대출받고, 대출받은 돈으로 다시 집 사고를 반복하던 세대에겐 회사도 상장하고, 인적/물적 분할해서 다시 상장하며 지분권을 늘리고, 중복 상장하는 것은 두 번 파는 것이니 서슴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소액주주가 대부분이라도 대주주가 휘젓으면 대항이 안된다. M&A를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창업자는 이기기 힘들다는 말을 들으며 한참 웃은 적이 있다.
10년 전부터 ESG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하며 이젠 보편화되었다. 세상의 주역세대가 매년 한 살씩 밑으로 교체되고, 시대는 조금씩 변화한다. 법률의 개정과 기업환경의 변화가 당장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들이 살아갈 환경이 더 좋게 된다면 느려도 방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진 자본시장도 과거에 우리와 같은 수준을 거쳐서 된 것이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받을 땐 정중하고, 주식시장에서 소액투자자이자 1주 1표의 권한을 획득한 소액주인에겐 돈 받고 공정하지 못하다면 옳지 않은 일이다. 자금을 투입한 후원자(물론 특수목적 투자자들이 존재하지만)에게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권리보호의 방향으로 자본시장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주식이 곗돈 붙고 계주 튀면 사고 나듯 하는 일과는 다르지만 계주 본인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기준,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경영활동의 투명성이 담보되는 제도가 지속가능한 형태로 검토되었으면 한다. 20세기 기업이란 선수를 키우기 위해 심판인 제도와 법률이 편향되었다면 이젠 점점 공정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너무 늦게 발동이 걸린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 뒤쳐졌으니까.
한 가지 200페이지 '회사의 모든 일에 송곳 검증은 필요 없다. 빠르게 일을 진행하고 검토는 나중에 여유 있을 때 하면 된다'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다. 경영자가 있고 조직장이 있고 담당자가 있는 이유다. 쪼개서 송곳 검증을 물샐틈없이 하려고 노력하고 자동화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주주와 기업, 경영자와 직원, 기업과 시장 모두 신의성실하게 지속가능한 성장을 구현해야 하고 그 구현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헌을 함으로 얻어진 결과다. 이런 일에 대충 선빵 날리듯 하는 것을 올바른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개정하는 법률과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 앞에 모두 '올바른'이란 말을 넣으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속도 우위로 일을 하고 나중에 검토한다는 말도 그렇다. 계약서는 도장 찍기 전에 살피고 검토하고 위험을 확인, 제거해야 한다. 도장 찍고 난 뒤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내 기준에서 모르는 일엔 도장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투명한 의사결정과 경영을 위한다면 이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경영이 주주라는 주인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