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유전자 아닌가?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는 했다. 다 읽지는 않았다. 1장, 11~13장을 중심으로 읽었다. 대신 길고 긴 서문을 잘 읽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신이 만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불쌍한 생명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불경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유전자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답은 없다. 알 수도 없다. 사람의 근원에 대한 추정은 끝이 없다. 나는 이런 답이 안나오는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런데의 무한루프가 내 머리속에 맴돈다. 세상은 좀더 좋아지고 살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모두의 바램이자 유전자의 바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머리는 복잡하다. 그것을 위해서 이것을 알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독실한 나의 주변 사람들과도 거리가 있다. 나는 종교란 그 위대한 힘을 떠나 나약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일과 현상이 신의 존재에 대한 추정을 긍정한다. 그렇다고 신을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더 종교적으로 불경스러울 수 있다. "신이 세상을 만들때부터 인간 그럴껄 왜 몰랐을꽈아?"라는 질문을 던졌으니 말이다. 친구 목사님이 몇 달간 책을 읽고 논쟁하다 너 말고 제수씨를 좀 만나자고 하는 정도였으니..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영웅과 사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때가 많다. 인생에 반복적인 상황은 없다. 반복적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인간은 시간을 망각하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생존을 위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한다. 게임이론처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영웅이나 사멸의 갈림길보다는 생존, 조금의 불만족스러운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생존과 번영이란 것에 충실한 것은 너무나 현명한 선택이다. 나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 개체속의 유전자는 그 구성이 A급이던, B급이던 모두 오리지날, 원본이며 진정성을 갖고 있다.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체 왜 궁금한지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무수한 게임이론을 통한 경우의 수가 12장에서 이어진다. 그 복선이 출구전략 또는 사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밈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지식이 부족하고 앎이 부족하면 얻는 것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냥 내가 알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인간을 유전자가 통제하는 기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은 유전자로 구성되었지만 혼과 백이 있는 존재로 볼 것인가였다. 유전자로 구성된 육신이 백이라면 백은 그의 존재에 대해서 충실하고, 혼은 백을 제어하지만 그 속에서 상생한다.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가장 일방적인 것은 인간에게 시간 뿐이다. 백은 혼이 움직이는 실현을 구체화 해주지만, 혼은 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을 나누는 순간 그것은 사람이니다. 생명이 달린 것에 그런 종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점이 종교와 또 부딪히는 부분이 아닐까한다.
유전자의 생존과 번영이란 측면에서 12장은 우리가 왜 고전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복잡한 경우의 수로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열띤 설명이 잘 와닿지 않는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반복회수와 통계가 익숙한 것은 아니다. 딱 한번이란 기회는 실패의 확율이 높다. 반복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발전한다. 우리가 익숙해 진다는 것은 그런 경우의 수에 대한 학습과 결과에 대한 경험, 지식, 지혜가 축적된다는 것이다. 4차 산업의 AI도 이런 엄청난 반복을 통해서 그 분포의 빈도가 높은 것을 선택하는 방식에 가깝다. 유전자자체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밈이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원초적 본능보다 학습된 정신 능력과 유전자로 구성된 몸의 훈련을 통제함으로 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인간은 게으르다'는 말처럼 '유전자는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옳다고 생각한다. 생존 유지가 우선이고 생존이 유지되면 숟가락 잡을 힘만 있으면 개체수를 늘리려고 복붙에 열을 올리는 단순한 동물은 아니다. 그런 경향이 있다고 그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그나마 인간의 지적 축적 활동을 통해서 게으른 유전자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상생하는 관계에 가깝다. 유전자가 착하게 사는게 중요한지, 옳게 살아간다는 것이 힘든지 판단하지 않는다. 더 좋은 유전자와 안 좋은 유전자가 서로 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오만한 사람이 덜 떨어진 유전자를 어찌어찌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는 것이 맞다. 유전자가 예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이 게으른 유전자 다발에 상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힘에 부치면 유전자들의 게으른 긴 손을 널부러트리듯 휴식이란 이름으로 멍을 떼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이기적이 될 수도 있겠다.
책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충분히 경청해야 할 바가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조금 안타까운 노력같기도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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