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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Mar 02. 2019

경영자의 역할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

 나는 종종 '당신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이성적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경제학을 볼 때 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전제조건'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이론이란 우리가 단순화해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지, 세상에는 우리가 말하는 이론으로 정리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론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이런 변화를 만드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세상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존재지만 속은 아주 복잡하고, 위대하며 또 단순하고 문제 투성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런 불확실성과 인간의 바람이 합쳐서 합리적이고 그럴싸한 이론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체스터 바너드란 사람은 게리 해멀의 경영의 미래란 책을 읽을 때 알게 되었다. 또 페친분이 피터스와 함께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회사에서 한 조직을 관리하며 느끼는 문제와 심정으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나는 완전하게 직원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점이다. 기회가 된다면 주인 정신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경험으로 보면 주인 정신으로 사는 것은 3D 직종이라는 것이다. 대신 주인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과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손자병법의 지피지기와 같이 내가 해야 할 역할과 협력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영자는 전문 직종이고 꼭 주인 정신과 결부되는 것도 아니다.


 경영자는 경영의 대상이 있어야 존재 의미가 있다. 그 대상이 지속 가능한 무엇인가(목표, 사업)를 해야 하고, 단기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생존을 위한 성과 즉 생산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세상은 또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변화를 선도하거나 따라가거나 외면하면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간처럼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주체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수명만큼만 경영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어마어마한 과업을 수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이 전통적 학자라기보단 실무적인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정리한 내용이기에 이론가들의 체계적인 접근, 논리적인 부분에서는 모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 세계를 훨씬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에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여백과 같은 인간의 이해가 돋보인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협력에 대한 생각을 얻기 위해서다. 현재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협력은 불가피하다. 내가 여러 경험을 통해서 협력을 해보면 참 더럽게 잘 안된다. 되는 확률보다 안 되는 확률이 훨씬 높다. 그 이유는 책에서 말한 그 여러 가지 이유다.


 경영자의 역할이란 사람으로서 그 조직의 존재 이유가 되고, 기능적으로는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할이란 공동의 목표와 생존을 위한 협력의 타당한 이유가 개인, 조직(책에서는 물리적, 개인적, 개인적, 사회적 같은 표현을 사용함)의 입장에서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이를 조율하는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인 조직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이해하면 원래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생각하면 당연하고,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하는 어르신들이 좀 못됐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책을 읽으며 궁극적으로 조직이 만들어지고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조직의 영역과 활동이 존재한다. 그 영역에서 목표에 근접하는 성취와 결과로 이익을 만든다. 그러나 이익을 위해서 모였지만 이익만을 목표로 하면 망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란 목표에 근접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근접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 협력이 숨어있다. 종종 수익 중심, 숫자경영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익은 기업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추구하는 목표에 근접해야 발생하는 결과다.


 내가 장부 쓰는 사람들이 과하게 기업에서 날뛰는 것을 달갑게 보지 않는 것은, 그들은 결과와 분석에 특화되었지 결과를 만드는 과정과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예를 들어 돈은 남편이 벌고, 통장은 마나님께 드리는 것은 역할 분담이지 통장 들고 갑질 하라고 준 것은 아니다. 인간이 좋아하는 사랑으로 이야기하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애도 생기는 것이지, 애를 만드는 목표를 위해서 결혼하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도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일반화와 단순화가 큰 왜곡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의 복잡한 개인과 조직의 입장을 고려해서 목표를 잊거나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목표를 향해서 동참하게 위해서는 높은 기술과 윤리적 복합성을 갖고 이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실력과 높은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듣는 과정이라고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하나마나한 소리를 자주 잊고 헛지랄과 헛삽질을 부질없이 하는 것이 인간이다. 기술이 인간의 이해를 끌어안는 이유가 보다 높은 결과를 창출하기 위한 것처럼, 비기술적 사회과학도 인간의 이해를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기업을 예로 들면 이익을 위해서 뭉쳤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꽃을 피워야 슬기롭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편하게 느끼는 정신적인 부분을 돌아보면 아직 우리 사회의 업 철학, 자신의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익의 이해만큼 높아지길 바란다. 


그러니 또 직원 정신을 갖고 열심히 회사에 가야 한다는 말이 되는구나. 좋은 말은 어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고 채근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경영자의역할 #체스터바너드 #인간승리 #제길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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