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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May 24. 2019

옛것을 새롭게 쓴다는 것

루쉰 '고사신편' 

 노신, 루쉰에 대한 이야기는 리영희의 책을 읽다가 알았다. 이념적인 색채보다 나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고려를 하는가?'와 같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으로 보완하기도 하지만, 인간 스스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면 더 살만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책머리에 간략한 루쉰의 약력,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론의 확립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Q정전 때문인가? 나는 이런 이념적인 제단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부족한 개인, 그 개인에게도 그 사람의 크기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이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다. 부족하다고 그가 다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루쉰의 고사 신편 중 하나라 우의 치수에 대한 이야기, 관문을 떠나는 노자의 이야기를 알았다. 그때가 나름 사서삼경을 읽어보겠다고 노력하고 그리고 도덕경도 보며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다. 특히 '관문'은 인상적이었다. 공자와 노자는 대립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책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자의 뜻을 받아 입신양명과 같은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다시 더 나이가 들어서 노자처럼 순리에 맞게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립되는 것은 사람의 때에 따라서 선택해야 하는 것의 차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단계적, 보완적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야 상반된다고 하는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 나야 삶이 발전하는데 필요한 도구를 효과적으로 선택하는 것이지 획일적이고 교조적으로 종교처럼 따라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신선함이 있었다.


 내가 처음 본 책에는 고사신편 중 3편이 나오고, 다시 구매한 책은 번역을 너무 현대식이라 느낌이 다르다. 좀 잊고 지내다 고사신편을 다시 한번 봐야지 하던 참에 구한 책이다.


 이 책에는 보천(補天), 분월(奔月), 이수(理水), 채미(菜薇), 주검(鑄劍), 출관(出關), 비공(非攻), 기사(起死) 8편의 고사신편이 있다. 서언에서도 루쉰의 스타일은 나온다. 글을 통해서 고사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도 전달되고 추가로 생각할 여지를 만들려는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여와, 예, 우, 백이숙제, 노자와 공자, 묵자, 장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검과 관련된 고사는 잘 모르겠다.  

 조금은 풍자적이고 우회적이다. 결론이 이렇다 보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백이숙제가 주나라 왕의 인의를 논하지만 다시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이야기, 출관을 통해서 공자와 노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의 차이가 보인다. 장자의 기사를 통해서 죽은 이가 살아났지만 그 실체와 장자의 자연친화적 또는 창조적인 부분과는 또 거리감도 있다. 이런 고사를 새롭게 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는 고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게 도와주고, 그 고사의 이야기를 조금은 가깝게 또 조금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 시대가 바뀌면 시대의 생각에 따라서 또 바라볼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쓴다는 창의성이 좋다. 그리고 소제가 있다고 다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루쉰이 이해하는 동양고전의 깊이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현재는 살아가는 나도 동양고전을 읽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지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 맞게 다시 이리저리 보면 온고이지신 하는지 돌아 보아야겠다. 


#루쉰 #고사신편 #독서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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