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1/2)
범죄의 여왕이란 제목과 찾아본 포스터를 보며 상상했다. 박지영이 범죄 대부인가? 오래전 영화인 301, 302처럼 미스터리 한 영화인가? 동그랗게 표시된 402, 403, 404를 보면서 꼭 교도소의 죄수 호실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포스터만으로는 상당히 호기심을 유발하는 영화다.
신림동 고시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의 배경은 현대사회의 모습이 품고 있는 단절된 사회를 잘 보여준다. 고시촌에서 모두들 장원급제를 품고 공부를 한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경찰공무원과 같은 각자의 꿈이 있다. 그 꿈과 목표를 위해서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공간에서 생활한다. 그 단절된 생활이 보답은 합격과 신분상승, 금전적 욕망의 충족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한 모습으로 사회로의 귀환이라고 생각한다. 단절된 사회에서 세상에 나갈 공부를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고시를 병이라고도 한다. 합격의 영광이 빨리 온다면 신분상승, 부, 권력을 얻는 이도령 장원급제와 같다. 하지만 수 년째 그것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주변의 시선과 자신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정체성, 부담, 자괴감과 투쟁해야 한다.
미경은 고시생을 자식으로 둔 엄마다. 모든 엄마가 자식을 귀하게 여긴다. 자식이 공부도 잘했었고, 고시공부라도 하면, 세상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편견과 자부심을 갖는다. 그래서 자식을 "이판", "이변"이라고 부른다. 그 이름의 변화도 자식의 의견을 존중하는 표현일 뿐이다. 반면 영화 속의 고시 공부하는 아들 녀석은 참 싹수가 노랗다. 나 같으면 저런 태도의 자식이면 생활비고 용돈이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미경은 120만 원이나 나온 수도세를 핑계로 아들을 만나러 간다.
맨션이라고 이름 붙은 허름한 고시원은 가관이다. 수동적이고, 사랑을 받지 못한 개태는 B101에 산다.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관리소, 경찰서장의 딸로 집에서 고시원으로 유배된 402호, 10년째 고시의 늪을 헤매는 403호, 120만 원의 수도세를 그냥 내고 내려가라는 404호, 고시는 망했고 세월을 낚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는 301호가 나온다. 수도세는 어떻게 120만 원이 나왔을까? 고시생에게는 4일 후에 있을 시험이 관심사고, 관리소장은 돈만 받으면 된다. 엄마인 미경은 결국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사달을 낸다.
차폐된 방은 개인에게 독립된 공간을 제공한다. 문은 외부와의 단절과 소통을 상징한다. 그 문은 결국 엄마의 호기심, 의심, 관심을 통해서 열리고, 개태는 불량스러워 보이지만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셈이다. 엄마는 단절된 이야기를 바느질하듯 조금씩 연결해가고, 그 안에서 발생한 사건과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간다. 그 과정이 스릴러처럼 긴박하기보다는 여자들의 감촉과 집중력에 따른다. 개태는 그런 감촉과 집중력이 실행되도록 도와주는 감초 역할일 뿐이다.
보톡스 야매 시술사인 엄마가 막 판 어쭙잖은 히어로처럼 뛰어든 아들보다 훨씬 강력한 캡틴 마블처럼 강하다. 그녀를 통해서 아들, 404호는 시험 보러 가고, 301호는 자신의 벤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403호는 지신 시험의 과정을 벗어난 셈이고, 인생의 큰 짐을 자신의 책임에 따라 지고 갈 것이다. 개태는 다시 미경을 도와서 야매 시술소에서 새 삶을 펼쳐나간다. 402호도 활기차게 고시원을 나왔다. 그들의 미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세상과의 단절된 벽에 세상의 빛이 조금 열렸다고 생각한다.
박지영을 빼면 무명의 배우들이 많다. 생각보다 음산한 분위기의 배경에 자잘한 웃음이 있다. 세상에는 환한 빛 아래 평화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그림자에 덮인 곳이 있다. 그래서 엄마들이 바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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