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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Jul 07. 2019

원칙(Principles) - 삶의 딥러닝

Principles by Ray Dalio (1)

 원칙의 의미가 '많은 경우에 두루 사용되는 규칙'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고 웃음이 났다. 원칙이란 지켜야 할 기준이란 강제성이란 의미로 많이 학습되었다. 세상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새로운 원칙(규칙, 제도)을 만들고, 그 실행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대책을 세운다. 이렇게 살아내고 있음에도, 스스로 원칙이란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가벼움 때문이다.


 EBS에서 최진석 교수의 강의를 스쳐가듯 보며 한 대 맞은 느낌을 가졌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은, 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욕망, 희망이란 미래의 기대로 인해, 현재에 오류를 일으킨다. 그 말이 미래의 방향성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공자의 학습에 대한 열정적과 인위적 인간 의지를 통해 이상적 세상 운영의 원리를 만들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의 공생적, 순환적, 체계적인 원리를 통해서 세상의 운영원리를 설명한 노자를 읽어보면, 이 둘은 대립적 구조라기보다는 때에 따른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비워야 채울 용도가 생기는 당연한 구조는 더 높은 수준의 이야기다. 비워있는 것은 용도가 있지만 그 수준의 한계가 존재한다. 그 시간의 흐름과 사용 속에서 사람을 깨달아간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배우고 익히며, 그 실행을 통해서 삶의 딥러닝 결과를 다시 삶에 적용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삶이다. 포기할 때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자신의 안목과 비례해서 지식을 지혜로 만든다. 그것을 다시 후대에서 물려주고 보조자로서 또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는 소박함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이 달리오라는 처음 접한 외국의 기업가의 말을 읽으며 자꾸 노자의 문구와 비슷한 이해를 갖는다. 동서양 문명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깨달음과 인간 사고의 과정은 또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환경의 차이가 사고의 방향과 표현의 방식에 영향을 줄 뿐이다. 700쪽이 넘는 분량을 읽고 한 번에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작가의 조언처럼 그의 개인적 인생의 이야기는 건너뛰고 인생의 원칙, 일의 원칙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지인의 말처럼 세부적인 부분은 번역이 매끄럽지는 않다. 제목은 책의 논제를 알려주고, 목차는 논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그것을 잘 이해하며 읽어간다면 작은 원칙들과 사례의 재미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악당의 명언'이란 책처럼 블랙 & 화이트, 레드 & 화이트의 강렬한 텍스트와 큰 목차들이 꽤 괜찮은 milestone 역할을 해준다.

 

 


 리영희의 인터뷰처럼 원칙이란 책에서 '진실'이란 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사람이 기업가인가? 철학자인가? 심리학자 또는 뇌과학자인가 혼란이 생길 정도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 확신에 대한 의심이 조금 걷힌 것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이해한 것을 말하는 진실 또는 솔직함이다. 그 불편함(고통)을 감내하고 한 단계 올라서는 것, 그것을 해야 하는 필요성, 그 온갖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에 다가올 변화를 생각해 보게 한다. 사실 위의 목차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결과를 만드는 사람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실행과 꾸준함의 차이다. 성취의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과 진실보다는 내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오류로 인한 2차적인 차이가 생길 뿐이다. 그런 삶의 누적이 나는 삶의 격(格)이 달라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의 세부 원칙과 사례를 보면 '팩폭'처럼 신랄하다. 내 마음이 뜨끔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 마음이 존재하는 진실, 그 마음에 휘둘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차원의 자아(이성)과 저차원의 자아(본능, 감성)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현상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레이 달리오는 '원칙(principles)'라는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상기시켜줄 뿐이다. 타협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도 다른 어려움에 직면한 사례가 모두들 갖고 있다. 마음의 안식, 일시적 안락함을 선택해도 인간의 욕심은 내가 바라는 것이 운 좋게 내 삶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은 스스로 안다. 하지만 우리는 '기대'라는 유혹을 종종 즐기고 또 후회한다.


 좋은 결과는 좋은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어떤 목표를 선택하기 이전에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협조를 구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면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좋은 선택의 시작은 삶, 일에 있어서 "계획", "기획", "설계"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총명함과, 그 마음의 소리를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현실에 맞게 사고하는 명철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본능의 유혹을 이겨내며 꾸준하게 도전함으로 성과를 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블로그에 상군 열전에 나오는 聰, 明, 强이란 말을 인용하고, 그 말의 해석을 좋아하는 이유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principles)'를 읽고 동양과 서양이 삶을 살아가면 성취를 얻어내는 사고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목표와 방해되는 요인에 대한 대처는 참 어렵다. 나 개인의 부분은 자기 관리라는 부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최근 건강 계측기에 분홍빛이 들어와서 매일 일정한 운동과 식사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건강이란 목표에 대한 선택이다. 자주 즐기는 음식과 절제해야 하는 것들의 유혹은 목표에 제거해야 하는 요인이다. 이는 나와의 투쟁이다. 이 원칙이 '일의 원칙'에서는 어떻게 설명될지 궁금하다. 이런 말을 언급하는 것이 말로는 쉽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 자식의 조울증으로 인해 더 폭넓게 사람의 사고 체계에 대한 학습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위기의 말처럼 가족에 찾아온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배움을 통해서 새롭게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환자의 진단이 틀리면 처방이 달라지고, 환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지 모른다. 좋은 결과가 좋은 선택에서 시작하듯, 현재 직면한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은 진실에 기반한다. 좋은 진단은 그것을 해결할 방법에 대한 다양한 방법적 수단을 찾는 좋은 동기유발 요인이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것이 계획, 프로세스다. 그 이후의 상당한 과정은 실행이다. 실행의 과정에서 판단, 조정, 변경이 발생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실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처음에 시작한 목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인간이 삶, 조직 속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고, 수 천년 간 인간이 축적한 반복 활동 데이터를 통한 가이드다. 그 가이드를 우리는 원칙이라고 하고, 현실의 변화에 적절하게 trailoring(변경관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한 가지 변수는 다른 체계와 구조, 경험, 지식을 갖은 또 다른 인간의 존재다. 그 존재와 연결되면서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즐거움과 분노라는 플러스 효과와 마이너스 효과가 공존하는 게임이다. 인문 고전과 달리 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이 부분에 집중하는 것 같다. 심리학, 인문학들이 개인의 성숙함을 유도하고, 기술적인 부분의 가이드는 자기 계발서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변화는 스스로 수용하고 판단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을 알아가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 지식의 폭이 지혜가 되고 타인이 나에 대한 기대와 필요를 갖게 한다. 종종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 내다 보면 '전생에 단군 할아버지 테러를 가한 게 아닌가?', "지겹다, 다음 생은 개뿔 하계에 다신 안 내려오겠다'라는 농담을 한다. 잘하는 것이 없는데, 찾는 곳은 많으니 고달프다. 또 누군가 필요하다는 말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그때그때 다른 상황의 기준이 제일 어렵다. 진실이 불편할 때가 많고,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 그 상황이 통제되는 않는 여건이 그렇다. 그래서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보다 "아이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자조적 멘트가 아직은 많다. 나의 누적된 학습과 습관이 부족한 것이다. 


 효율적 의사결정에 대해서 "학습"과 "결정"은 중요하다. 나도 팀장들에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봤다. 내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다른지 알기 위해서다. 결론은 "무지"다. 이 무지의 자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인간이 갖고 있는 무지의 망각 때문이다.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한 단계 진보하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장차 습관)이 다시 한계 진보하는 이유다. 과학적 발전으로 인공지능보다는 빅데이터를 처리한 결과를 활용하는 것, 그리고 기계와 인간이 갖은 장점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하는 이야기도 아주 맘에 든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소중한 존재가 기계 시다바리를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기계도 인간이 설계하고 창조한 것이다. 어떤 삶과 일을 할 것인지는 인간의 몫이다. 그 몫에 대한 책임 또한 나 스스로의 몫이다.


 인생의 원칙이란 만고불변의 확고부동한 고집이 아니다. 무엇이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최고의 방법인지를 스스로 몸으로 머리로 이해하고 행동하는 과정이다. 변화가 끊임없기에 이 또한 그치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장 일의 원칙을 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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