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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a Jul 08. 2019

풍선과 귤이 가족관계라고?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를 읽고

이 책이 담고 있는 화학적 이론은 그렇게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나는야 문과출신). 그렇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큰 맥락은 그런 이론적 지식을 100% 이해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물리적인 재료 12가지를 테마로 서술한 세계사책 같기도 하다.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이과적인 책이라기 보다 문과적인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바로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라는 책이다.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큰 덩어리로 묶자면 2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첫째로는 나비효과. 재료의 변화 하나로 작게는 제품의 혁신, 크게는 전혀 다른 산업의 분화와 더 나아가 사회구조의 변화까지 유도할 수 있다는 부분이 놀라웠다. 이는 단순히 혁신적인 재료가 나오기 전의 재료가 어땠으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신소재로 인하여 얼만큼 제품의 편의성이 향상됐느냐 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신소재의 분자구조나 강점 따위는 책을 읽기 전에도 자연스럽게 서술되리라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그 외적인 영향력의 범주는 생각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리바이스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공통점

청으로 유명한 데님(denim)이 광산 작업자들이 거친 환경에서도 튼튼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재질을 고민하다 개발된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으나, 그 시초가 "금"을 채굴하기 위한 작업복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신용카드로 유명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본래 채굴자 대상 운송 서비스업을 시초로 시작한 기업인 것 역시 흥미로웠다.



인간의 금에 대한 욕망이 궁극의 패션아이템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뜬금없지만, 취업 논술 문제같은 맥락이 떠오르는 것이다. "K-pop 성장에 따른 A 건설사에 미치는 영향은?", "전세계 바나나 품종 멸종에 따른 국내 전자제품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따위의 질문들 말이다. 다 물어보는 이유가 있었다.


청동은 희귀하여 일부 지배계급만 가질 수 있었지만, 더 강력한 철은 지구에 널려있기 때문에 철의 가공방법인 제철방식만 알면 누구나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이로 인해, 어떤 이는 민주주의가 성립하게 된 것은 철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원소이기 때문이라는 설을 제시하기도 했다는 점. 신소재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귤과 풍선이 가족관계라니

둘째로는 사고의 확대였다. 사실 위 나비효과와도 큰 맥락에서 보면 비슷한 내용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나비효과는 직접 산업군 외 사회전반에 대한 영향이라면 사고의 확대는 신소재의 분자구조 자체에 대한 나의 무지에 따른 놀라움에 가깝다.


우선 고무라는 신소재에서 풍선이 발명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고무의 핵심 분자인 '아이소프렌'이 새콤달콤 감귤에도 있는 분자구조라니. 그래서 빵빵한 고무풍선에 귤껍질의 즙을 뿌리면 풍선이 터져버린다니(비슷한 분자끼리는 섞이기 쉬워서, 껍질에 함유된 리모넨이 고무성분을 녹여 풍선막을 약하게 만들어 풍선이 터진다고 한다). 늘어나는 맛없는 고무(먹어보진 않았다)와 이불 속에서 까먹어야 제 맛인 감귤이 분자구조상 친척관계란 생각은 꿈에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사물을 분자구조로 바라보니 모든게 새로운 느낌이었다



마찬가지로 포도당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있느냐에 따라 질기고 유용한 종이/무명옷이 될 수도, 먹을 수 있는 밥알이나 전분이 될 수도 있다. 귤과 풍선, 그리고 포도당의 분자구조에 따른 생산물이 어떻게 다른지를 안다고 해서 당장 내게 신세계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릴 적 학습지 씽크빅을 다시 한번 보는 느낌이랄까. 굳은 뇌가 조금은 말랑말랑 해 지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기약없는 호기심을 부려볼테냐

상상력과 호기심은 여전히 유효한 인류 발전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강조했지만, 신소재 재료 그 자체가 혁신적이라기 보다는 해당 재료를 어떻게 가공하고 합성하여 어떤 목적과 용도로 쓸 것이냐에 따라 모든 것은 뒤집어진다. 그 변혁의 결과는 개별 사회 뿐 아니라, 어쩌면 전 지구적 daily life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기약없이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여 얻어낸 신소재들.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나를 포함해 요즘 현대인들이 스스로 어떤 것에 이 정도로 "호기심"과 "끈기"를 가진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그 호기심에서 나온 행위의 결과가 당장의 금전적, 가시적 결과로 나올 지 아닐 지 모른다면 말이다. 수천 수백만 정보와 경쟁 안에 살면서, 우리는 언제나 "정답"만을 찾는다.


내가 호기심을 가지고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아도 이미 정해져 있는 '최적화된 정답'. 그 정답을 빨리 찾기 위한 효율화 작업과 기술들을 익힐 뿐이다. 이런 패턴은 인간이라기보다 기계같다. 앞으로도 세계사를 바꿀 신소재 역사의 '주체'가 인류이려면, 기계적 측면은 AI에 맡기고 조금은 인간스러운 상상력과 인문학적 마음(역량이라는 wording은 쓰고 싶지 않다)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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