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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l 11. 2019

쓸거리를 찾았고, 위로를 받았다.

잘 고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인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너 윤태영 알아?"

"윤태영! 아니? 누군데?"

"강원국은? 알아?"

"알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연설 비서관이잖아."


그렇다. 사람들은 윤태영을 잘 모른다. 나도 고백하건대 몰랐다. 내가 무식해서 일 수도 있겠다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회사 동료들 중 윤태영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원국은 모두 알고 있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강원국이 TV에 나와서인가? 뭐... 그리 궁금하지는 않다.


윤태영은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문'을 수정하기도 했다. 모두들 들으면 '아...' 하는 이 문구는 윤태영이 고친 것이다.


<고치기 전>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라는 국정운영 원칙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고친 후>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것을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겠습니다.


이 연설문, 특히 이 대목은 대부분 머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보고 또 봐도 멋진 표현이다. 그러나 고치기 전 문장을 보면 그렇지 않다. 뇌리에 박히는 구석이 없다. 이대로 연설을 했다면, 머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문장을 잘 고치는 사람이 책을 썼다. '좋은 문장론'이 바로 그 책이다.




좋은 글은 고칠 때 탄생한다.


나는 단 한 번도 글을 쓰면서 고친다는 것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오히려 한 번 쓸 때 제대로 써서 고칠 필요가 없는 글을 쓰는 게 목표였다. 그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비문인지 아닌지를 신경 쓰느라 내용을 신경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저자는 좋은 글은 잘 쓰기보다 잘 고칠 때 탄생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글에서 좋은 부분과 좋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고 고칠 수 있다면 좋은 글쓰기의 절반은 달성한다고 한다. 초고를 쓸 때보다 고칠 때 두 배의 노력이 들어가며 마감 직전까지 글을 고쳐야 좋은 글, 멋진 글의 반영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초고에서는 내용에 신경을 쓰고 계속해서 고쳐나가면서 멋진 글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고치는 방법을 많은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안내문에서부터 대통령의 연설문, 주례사까지 총망라하여 문장 고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문보다는 단문을 많이 쓰라, 단문 2개에 복문 하나 정도가 어떻겠는가, 그러면 리듬감도 산다. 같은 낱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쓰지 말아라, 일상의 쉬운 언어를 사용하라, 군더더기는 삭제하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 영어식 포유문을 사용하지 말라는 디테일한 원칙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제공하고 있다. 


회사의 문서를 보면 이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0000 제도를 설정한 사용자로부터 기업 분할된 사용자가 이 계약을 체결하고 관련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경우, 분할된 사용자의 계약년수 산정은 분할 전 사용자의 계약년수 산정과 동일하게 기산하여 할인율을 적용합니다.


한 번 읽어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포유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문장도 너무 길다. 이렇게 한번 고쳐보면 어떨까?


기업 분할된 사용자가 이 계약을 체결하면 분할 전 사용자의 계약년수에 따라 할인율을 적용한다. 이때 분할 전 사용자가 0000 제도를 설정하고 있어야 하며 분할된 사용자는 증빙서류를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저자를 잠깐 흉내 내어 봤다. 어떤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지지 않았는가? 문장을 끊어 단문으로 바꾸고, 산정 기산과 같은 쓸데없고 어렵기만한 한자어를 쉬운 언어로 바꾸었다. 


단문으로 작성하거나, 쉬운 언어로 작성해 가면 상사는 반드시 고친다. 복문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단문을 사용하면 글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이미 회사원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쉬운 언어보다는 어려운 한자어에 집착한다. 마침표를 한 번만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쓸거리에 대한 생각


좋은 문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책의 말미에 쓸거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드러난다. 앞 부분도 좋았지만 난 쓸거리에 대해 말하는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그들의 어깨를,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준다.


관찰의 결과는 모두 쓸거리가 된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이를 살아 움직이듯 묘사한다. 인상 깊은 장면은 만나면 꼭 메모를 한다. 부질없어 보이지만 글을 쓸 때는 정말 귀중하고 보배로운 존재가 된다. 저자가 말하는 쓸거리를 찾는 방법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쓸거리다.


그중 최고의 쓸거리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는 것, 자신의 주장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것이 차별화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한다. 내 하찮고 특별할 거 없는 이야기가 무슨 쓸모냐고? '평탄하면 평탄한 대로 특이한 삶이다. 평탄하지 않으면 그대로 또 특이한 삶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어 보자. 이 세상의 모든 개개인은 특별하다. 내 삶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특별하고 새롭다. 


뒷부분은 글을 고친 사례에 할애했다. 저자가 선택과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은 과도한 예화나 사례가 아니었다 싶다. 물론 자신의 글이고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난 뒷부분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솔직히 뒷부분은 좀 대충 읽었다. 과도한 예시가 아니었나 싶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없다. 재미없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을 덮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이다. 세상에 하찮은 이야기는 없음을, 자신의 이야기는 절대 하찮은 쓸거리가 아님을 깨닫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좋은 책을 만났다. 이제 이 글을 고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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