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이 Apr 21. 2024

수리야 나마스카라

휴지기 이후 요가로 복귀하는 지름길 

 작년 3월, 나 같은 회피형 인간에게 요가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큰소리로 얘기해 놓고 (물론 듣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나는 요가 휴지기에 들어갔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이다. 요가를 쉬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풀재택의 종료와 이직 준비였다. 약 2년 간 지속되던 풀재택이 종료되고 주 2-3회가량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는데, 퇴근길 정체 때문에 정시퇴근을 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밤 8시가 넘는 생활이 이어졌다. 사실 요가원 마지막 수련이 밤 9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굳센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수련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3년 새해 목표를 환승이직으로 삼았던 나는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원 동기를 창작해 낼 시간도 필요했다. 몇 주 정도 결석을 이어가던 나는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다 핑계다. 불경기인 데다 두 자리 수로 넘어간 연차의 직장인인 내가 지원서를 밀어 넣어 볼 만한 회사 자체가 당시에 많지 않았다. 요가를 할 기력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힘들수록 요가 매트에 서서 스트레스를 다스렸어야 하는데, 에너지가 바닥을 치다 보니 요가매트에 설 기운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가 매트는 치워버린 대신에 현실 회피하는 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인 알코올을 이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일상이 어려울 정도로 매일, 많이 마셨던 건 아니다. 유난히 마음이 힘든 날에는 맥주나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정신을 마비시키고 문제들로부터 숨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이 현실에 불만족해서 생긴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그렇게 술로 뇌를 마비시키고 힘든 시간을 눈 감고 흘려보내고 나면 또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그렇게 숨을 좀 가다듬고 되돌아온 정신줄을 잡아 앉혀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면접 준비도 하면서 환승이직을 준비했다. 그동안 요가 수련은 하지 않았다. 



출근하기 시작한 지 반년도 안되었지만 지긋지긋한 여의도...

 

그렇게 반년 가량이 흘러 나는 약 6년 간 몸 담은 두 번째 회사를 떠나서 세 번째 회사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적응에 실패했다. 업무에는 적응했지만 이 회사에는 영원히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서 다시 이직을 준비 중이다. 


 이번 이직 실패의 이유를 매일매일 곱씹어 본 결과,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예전 회사와 반대인 곳'이었다는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이전 회사에서 가진 불만을 직면해서 해결해 볼 시도는 안 하고 그냥 도망쳐 나와서 다른 회사로 이동할 생각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이런 악수를 두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즉,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기보다는 피하려고 했더니 아예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이다. 


 예전 회사는 말을 꺼내면 그래도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 함께 해볼 수 있었을 만한 곳인데, 지금 회사는 기업문화 특성상 아예 꽉 막혀 있다. 공교롭게도 여기서의 문제 해결 방법은 도망뿐이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빠르게 섰다는 것과 도망치는 건 내가 잘하는 것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직 직후 또다시 이직을 준비하면서 불행하게 지내는 와중에 그나마 얻은 게 있다면 '회피만 계속하면 정말 인생 망한다'를 체감했다는 거? 건강한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약 1년 만에 나는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나의 실패만 계속 곱씹을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일 야근 때문에 바로 요가원에 등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집에서 간단한 수리야 나마스까라(Suriya Namaskara) 수련부터 시작했다. 



수리야 나마스까라는 태양 경배 자세라고도 불리는데, 아래와 같이 연속된 10여 개의 아사나를 여러 번 반복하는 일종의 시퀀스다. 빈야사 요가에서는 특정 아사나를 중심으로 수련하더라도 그 끝은 수리야로 마무리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수련 방법이다. 또한 온몸을 사용하는 시퀀스이기 때문에 수련 웜업으로도 수리야를 하는 경우가 많다. 



 수리야 B가 좀 더 긴 시퀀스이기 때문에 보통 수리야 A는 10번, B는 7번과 같은 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같은 시퀀스를 여러 번 반복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자연히 머릿속에는 잡생각이 들어앉을 새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요가의 가장 큰 매력인 '움직이는 명상'을 체험하는 데에 가장 좋은 수련 방법이 바로 수리야 나마스까라다. 


 혼자서 수리야를 수련하기는 어렵고 (수리야 A 3번만 하면 그냥 매트에 누워 있고 싶은 욕망이 바로 찾아온다), 유튜브에서 본인이 원하는 수련 시간에 맞는 영상을 찾아서 틀어놓는 것을 추천한다. 


 밤에 자기 전, 짧게 수련할 때에는 요가소년 님의 아래 영상을, 

https://youtu.be/gHcpJv9E0x4?si=neIhKbktD9M_fosw


 주말 오후에 땀을 좀 빼면서 할 때에는 에일린요가 님의 아래 영상을 추천한다. 

https://youtu.be/Wcmsy2WAy0s?si=ZC1gsVj-xqSMTOem



1개월 전부터 다시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일 년 사이에 몸은 많이 뻣뻣해진 데다가 평일은 퇴근이 늦어 주말에만 수련을 하는 탓에 요가 수행 능력이 쉬이 회복되지는 않고 있다.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부 아사나도 이제는 1초도 버티지 못하게 되더라. 좋아하던 동작들인데 잘 안되니까 속상하지만, 다시 요가 열심히 할 동력이 생긴 거라고 생각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 한줄기 햇빛 비치는 나의 동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