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지만 깜깜하진 않은, 회피형 인간에게 최적의 동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운동 생활도 시작되었다. 시간이 넘쳐 나는 대학생 때와 달리 월급 노동자가 되고 나니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평일 퇴근 후 저녁 서너 시간과 주말 이틀로 쪼그라들었고, 그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쓰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1 레슨료 등 운동을 제대로 배우는 데에 드는 비용을 부담 없이 지출할 수 있게 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건강을 위한다는 핑계로 낭비한 비용도 적지 않지만, 그렇게 돈을 들이면서 운동도 습관으로 들여둔 덕분에 지금껏 최소 한 종류 이상의 운동은 사계절 내내 하고 있다.
요가 외에 수영, 달리기, 필라테스, 헬스, 발레 등 이런저런 운동을 10년 가까이 해왔지만, 내가 해온 운동들의 공통점은 시작부터 명확했다. 혼자서 하는 운동일 것.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인 운동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팀을 이루어야 하는 운동은 물론이고 페어(pair)로 하는 운동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테니스도 몇몇 친구들이 열띠게 추천을 해줄 때마다 흥미로운 척했지만, 고려의 대상으로 올려본 적도 없다. 친구들아, 미안. 편협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운동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1시간은 달린 것만큼 나에게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스케줄을 맞추어야 하는 불편함은 차치하고, 운동을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레 발생하는 육체적, 정신적 부딪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내가 던진 공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는 상대를 보다가 치미는 화를, 혹은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낼 때에 불뚝 튀어나올 화를 어른답게 다룰 자신이 없다.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낸다면 어떡하지? 아, 이 문장을 적으면서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운동을 하면서 갈등을 직면하는 용기도 배우고, 앙금을 마음 바깥으로 꺼내어 놓아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요가가 아니라 테니스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모를 일이다.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요가 수련할 수도 있지만, 나는 주로 요가원에서 다른 사람들 옆에 매트를 깔고 수련한다.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싫다면서 왜 그러느냐고? 회피형 인간이 사람을 피하는 것은 고독하게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라는 것을 일러두고 싶다. 혼자 있는 게 안전하기는 하지만 나 홀로 고독하게 있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마음을 나누다가 갈등을 겪게 될까 봐 두려울 뿐. 그래서 타인과 한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같이 있다'는 감각은 가질 수 있지만, 상호작용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운동 위주로 하게 된다.
특히 요가는 다른 운동에 비해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에게만 집중할 것을 강조하는 운동이다. 오른쪽 매트 위에 있는 수련자가 나보다 더 능숙하게 아사나를 하건 말건, 왼쪽 매트 위에 있는 수련자가 나보다 빠른 속도로 차투랑가를 하건 말건 마음을 휘둘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자신 안으로 조용히 침잠할 수 있다. 어두운 동굴이지만 한 줄기 햇빛은 들어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실루엣이 얼핏 보이고 나 혼자 있다는 고독과 두려움에 빠질 일은 없는 동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수련할 수 있지만, 수련 후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만의 수련을 무사히 마친 옆 사람과 마주 보며 끝인사 정도는 정겹게 나눌 수 있는, 고요하지만 고독하지는 않은 동굴.
요가라는 동굴을 지탱해 주는 것은 그날의 수련을 리드하는 강사님들이다. 나는 잘 안 되는 아사나를 우아하게 해내는 옆 사람을 보면 몸의 균형은 물론이고 마음도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본인의 호흡에만 집중하라는 요가 강사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나의 호흡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쩜 그렇게 요가강사님들은 하나 같이 다 차분하고 단단한 목소리를 가지셨는지 모르겠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다잡게 되는 그 강인한 목소리들 덕분에 오래도록 요가를 할 수 있었다.
강사님들은 내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데에도 길라잡이가 되지만, 내 속으로만 홀로 틀어 박히는 것도 적절히 제어해주기도 한다. 모든 수련을 마친 후에 매트 위에 누워서 하는 송장 자세(사바 아사나) 때 잔잔하게 틀어주는 BGM 선곡이나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에 건네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서 함께 수련하는 낯선 타인들이 느슨하게나마 요가로 연결된 인연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이렇게 요가는 남과 부딪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을 독려하는 동시에 앞, 옆, 뒤에서 함께 수련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과 배려를 잊지 않고 상기시켜 준다. 그래서 타인과 깊이 엮여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두렵지만, 사람들로부터 뚝 떨어져서 외톨이로 지내는 것도 두려운 나 같은 회피형 인간에게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