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여행
2018년 11월 21일, 여행을 한지 어언 2달이 되던 날 드디어 엄마가 왔다.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
사실 엄마는 이 전에도 둘째 언니와 50일의 유럽여행을 다녀온, 다수의 여행 경험이 있는 선배(?) 배낭여행자이다. 어쩌면 내가 여행을 애정 하게 된 것도 엄마가 물려준 본능 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보다 더 여행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나와 2주간 파리를 시작으로 3개국 여행을 하게됐다.
공항 입국장에서 만난 우리 모녀는 한바탕 신나는 환영식을 하고 숙소를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는 엄마를 위해 한식이 항시 준비되어있는 한인숙소로 예약했다. 물론 우리 둘만 쓸 수 있는 2인 룸으로. 이제껏 최대 15,000원의 숙박비를 넘지 않았던 나로서는 엄청난 사치였지만 엄마라면 그 어떤 돈도 아깝지 않았다. 그 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골목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파리를 실컷 누리고 또 누렸다.
"엄마와 함께한 지 어느덧 5일째 되던 날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핸드폰만 부여잡으며 검색에만 몰두하고 있던 나는 평소보다 몇 배로 머리를 쓰고 있던 터라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었고, 시차 적응에 유럽 음식까지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적응 중인 엄마는 지쳐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프랑스 한복판에서 서로를 등졌고 수다 떨기에 바빴던 입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 완벽한 여행
사실 나는 '엄마에게 가장 행복한 여행을 선물해드리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래서 완벽한 여행을 계획하고 또 계획했다. 엄마의 표정이 살짝이라도 어그러지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머리를 미친듯이 굴려 좋은 아이디어를 끌어내려 애를 썼다.
그렇게 혼자만의 예민함을 감췄다고 생각했으나, 엄마는 내 눈치를 보고있었다.
분명 속상한 일(가령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다는 등)인데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서도 기꺼이 몸을 일으키는 엄마가, 달팽이 요리를 먹는데도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맘놓고 식사를 하는 엄마가, 프랑스 파리에서도 한 사람이 아닌 엄마로서 존재함이 그토록 속상했다. 37살에 나를 낳은 이후로 그녀의 세월은 잠시 어딘가에 던져두고는 우리 세 자매를 온 맘 다해 키운 엄마였기에 파리에서조차 여전한 엄마로서의 모습이 나는 싫었다.
엄마랑 다툰 뒤 큰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문득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삶으로 살기 원하는 건 우리들의 이기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충분히 행복한데 우리가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인생을 바꾸려 한다면 오히려 엄마는 더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번 여행만큼은 엄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쯤 되면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방자함이었다. 난 여전히 엄마 앞에선 어린아이가 되어버렸고 그런 나를 한없이 품어주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여전히 나는 엄마의 딸이었고, 우리 엄마는 나의 하나뿐인 소중한 엄마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지만 또다시 나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역시나 딸 앞에서는 한없이 인자한 엄마가 먼저 등을 돌려 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남은 여행만큼은 엄마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로, 서로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가족이라 해도 나는 엄마가 아니었고 엄마는 내가 아니었기에 서로를 알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느꼈다.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레 내려놓아지게 된 욕심이었지만, 그 이후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가끔 예상치 못하게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항상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내려놓음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