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위험성, 포르투갈길3
이 글은 <순례길의 위험성 포르투갈길> 3편입니다. 1,2편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1편 : brunch.co.kr/@khs0540/19
- 2편 : brunch.co.kr/@khs0540/20
순례길에서의 일이 있고 난 후 다음 날 아침. 그 시골 동네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대도시, 리스본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기에 여행자들도, 한국인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 남자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포르투갈인들이 보일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순례길 이후로도 7개월을 더 여행했다. 17개국의 나라를 돌고 돌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호텔 노부부의 말처럼 천사들이 내 곁에 머물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그보다 더한 일은 겪진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나는 NGO에서 근무했었다. 나름 규모가 큰 회사였고 입사하기까지 약 4년의 준비과정이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나를 위해서였다
˙퇴사 그리고 여행의 이유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게 우선이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먼저 나서서 하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점점 내 시간이 없어졌다. 내가 기분이 나쁘면 그것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나를 나무랐고, 성공적인 업무성과가 있던 날이면 나를 채찍질하며 보완할 점들을 찾아내곤 했다. '나'는 '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게 마치 옳은 방향인 것 마냥 살아왔다. 그러던 중 하루는 우연히 하늘을 바라봤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보다 하늘을 질투하고 시기했다. 마음이 좁쌀만 해져서는 하늘 한 번 못 쳐다보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퇴사는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더 버티던 중 외근을 하다가 45톤 트럭과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으나 차가 360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주마등을 보았고,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면 불쌍하기 짝이 없어서 하다못해 귀신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했다.
˙온전한 시간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고 어떤 상황이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호텔 노부부의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힘을 발휘되려면 환경이 뒷받침되어줘야 하며 혼자 스스로 극복하기에 너무 큰 일을 겪으면 사용할 방법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이 모든 조건들이 타이밍 좋게 맞물려야만 사람은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혼자였고 낯선 나라에서 이겨내기엔 큰 어려움과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기에 내가 나를 돌봐주는 것이 중요했다. 들여다보고, 달래주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니 혼자라는 현실에 무너지기보단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조금씩 내면에서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은 도시 이동을 하던 중 순례길의 일이 떠올라 과호흡이 온 적이 있었다. 어찌할지 몰랐던 난 평소 알고 지내던 심리상담사에게 연락을 했다. 상담사는 나에게 '지금은 힘겹지만 내뱉고 있는 한 숨, 한 숨에 집중하고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호흡이 돌아올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던 미래에 어떤 일이 다가오던 중요하지 않고 현재의 내가 숨 쉬고 있고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삶을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도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내가 나약한 것이라며 애써 무시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었고 그러지 말아야 했다. 여행의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기에 내가 중요했고 나를 먼저 살펴야 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무렵이 되었을 때도 이것만큼은 꼭 지키며 살아가자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2018년 11월 20일, 포르투갈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