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어함박눈 May 04. 2020

사람이 가진 힘

순례길의 위험성, 포르투갈길2

이 글은 < 순례길의 위험성 포르투갈길> 2입니다. 1,3편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1편 :  brunch.co.kr/@khs0540/19

- 3편 :  brunch.co.kr/@khs0540/21


순례길을 떠난 지 고작 2일 차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하루 25km를 걸어버렸던 탓인지, 가방의 짐들이 너무 무거웠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나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절망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그 날 처음 알았다. 몰랐으면 좋았을,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악을 쓰는 내 모습을 결국 마주하고 말았다."NO"라는 말밖에 할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리고 살기 위해 소리 질렀고 손에 쥔 등산스틱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 남자는 그런 나를 보고 바지를 내려 변태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 틈을 타 수 십 번을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리고 달렸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난 어느 호텔에 들어가 어느 노부부 앞에서 큰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시골의 어느 한 호텔에서 만난 천사들

그 노부부는 호텔을 운영하는 주인 부부였다. 그들은 제대로 설명했을 리 없는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일단 방으로 가서 당장 따뜻한 물을 받아서 욕조에 몸을 담그길, 빨래를 해줄테니 흙범벅이 된 나의 옷들을 본인에게 맡겨주길 담담하게 요구했다. 그 후 방으로 안내받은 나는 문을 잠그고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인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용기와 자신감이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기분이었다.

알베르게를 나선 뒤, 비가 오기 직전의 나의 둘쨋 날 순례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노부부 중 부인의 얼굴이 보였다. 부인은 자신이 문 앞에 서서 기다릴 테니 지금 빨래할 옷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아무 판단 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옷을 벗어주었고 목욕 가운만 입고 있던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추위를 느낀 나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틀고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내가 보였다.' 


흙탕물에 뒤엉켜 온 몸이 갈색 투성이인 나였지만, 숨을 쉬고 있었고 따뜻한 물의 온도를 느끼고 있었다. 차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욕조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처럼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버렸다.


한참을 울고는 욕조를 나와 주섬 주섬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침대로 가 이불을 덮고 누우며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생각하고 싶었고 생각할 힘 조차도 없었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연속된 물음표를 던졌다.


'만약 그 남자가 차에서 내려 끝까지 나를 쫓아왔다면', '만약 내가 등산스틱을 놓고 내렸다면', '만약 내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등의 끝없는 '만약'이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 나를 질책하고 또 질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부정당했으며 나를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으로 끌어내렸다. 이 모든 게 나의 잘못 같았다. 분명히 난 잘 못한 게 없는데 모든 화살은 나에게로 왔다. 평소 같았으면 쉬웠을 남 탓이 그 날만큼은 내 탓을 했다. 한참을 질책하고 나니 이렇게 멍청한 내가 왜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앞으로의 내가 방금 겪은 일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 믿었다. 들춰내고 싶지 않은 나의 싫은 점들을 일부러 드러내 기어코 꼬집었다. 그렇게 나만의 악몽을 만들어내며 한없이 가라앉고 있던 중,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열자 10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보였고 아이는 나에게 저녁식사를 하러 오라고 했다. 말할 힘도 없었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아이는 다시 한번 저녁식사를 하라고 이야기하며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신발을 신고 식당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따뜻한 모닥불과 다정하게 차려진 음식들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이 모든 서비스에 부과되는 금액이 얼마인지, 혹시 여행자인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건 아닌지, 밥을 먹으며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가는 게 좋은 지 핸드폰을 두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저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밥을 꾸역꾸역 넘겼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는 카운터에 있는 호텔 부부에게 잘 먹었다며 인사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때 노부부는 나에게 따뜻한 차를 한 잔 들고 와서는 곁에 앉아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앞으로 이 길을 걸을지 말지는 네가 선택해야 할 거야.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단다. 때론 하나님이 네게 힘든 시련을 줄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천사들이 너의 곁에 머물며 너를 도와줄 거야. 너는 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훨씬 더 강한 사람이야. 그러니 나는 네가 이 길을 계속해서 걸었으면 좋겠어.

여행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되었던 때였다. 한 달 동안 안전하게 지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발목을 부여잡고 있던 두려움을 애써 용기로 눌러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과연 내가 이 여행을 계속하는 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순 있지만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빌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였기에 떨쳐내지 못했다.


당시 온갖 생각과 걱정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유독 한 가지가 걸렸다. 지금 내가 여기서 모든 걸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두 번 다신 홀로 여행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내가 나를 제일 잘 알았기에 이것만큼은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심리치료를 받고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을 한다 하더라도 여행을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가더라도 분명 즐기지 못하고 전전긍긍해하며 마음 졸이다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포기하지 못했다.

순례길 1일 차에 만난 쌍무지개

여행을 가 본, 여행을 꿈꿔본, 여행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행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실히 돈을 모아서 떠나는 이유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 행복,기대감 등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곳에서 여행을 포기하게 된다면 나에게 여행은 두려움, 공포 등으로 남을 게 뻔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용기가 안 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리카를 떠나 순례길에 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