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위험성, 포르투갈길1
이 글은 <순례길의 위험성 포르투갈길> 1편입니다. 2,3편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 2편 : brunch.co.kr/@khs0540/20
- 3편 : brunch.co.kr/@khs0540/21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내가 아는 포르투갈 도시는 리스본이 전부였지만 비행기 값이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도착지는 포르투(Porto)라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아프리카까지 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들어온 이유는 요즘 많이 걷는다던 '순례길(Camino)'때문이었다. 여행을 한 지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지났던 당시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고, 모로코에서 만난 동생들이 포르투갈 순례길을 걷는다길래 '아 나도 가봐야겠다'싶은 생각이 들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포르투갈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포르투갈 길을 제외한 순례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걷고자 한다면) 보통 1000km가 넘는 편이지만 비교적 단거리(250km)를 단기간(약 10일)에 걸을 수 있는 포르투갈 길, 그중에서도 포르투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길을 걷고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발을 딯은 11월의 포르투갈은 한창 우기였기에 최소 하루에 한 번은 비가 왔고, 감기에 걸려버린 나는 며칠을 끙끙 앓고서야 순례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1월 7일,
나는 순례자가 되었다.
˙순례길을 걷는 이유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독실한 크리스천은 아니었다. 그저 나의 첫 번째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자연스레 나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이란 존재가 항상 함께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신앙심을 가지고 그의 길을 따라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순례길은 아니었음이 분명했고, 시작의 이유를 굳이 뽑자면 모로코에서 만난 동생들의 루트가 솔깃했을 뿐이고, 그때까지의 나는 시간 많고 여윳돈이 넘쳐나는 여행자였기에 발길 닿는 대로 떠난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신앙심을 가지고 시작할 순례길을 나는 아무런 목적 없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나름의 계획을 세워 첫 발을 딯었고 첫날의 목표치는 25km를 걷는 것이었다. 꽤나 잘 걷고있는 나를 칭찬하며 23km즈음 되었을 무렵 알래스카 부부를 만났다. 약 8시간만에 만난 첫 번째 순례자였기에 그들과 대화하고싶어서 나는 되도않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결국 무릎을 크게 다치고 말았다. 아마 끝없이 펼쳐진 돌길과 조금 더 값싸다는 이유로 구입한 아동용 등산화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계획에도 없던 어느 외딴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 날 새벽 6시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알베르게(albergue)는 스페인어로 숙박소, 숙박지, 작은 호텔 등을 뜻한다.)
˙순례길의 악몽
그 날은 비가 참 많이도 왔었다. 세로로 내리던 비가 걸은 지 3시간이 지나자 가로로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 때문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주변에는 그 어떤 쉼터도 보이지 않았기에 걷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다. 한 10킬로쯤 걸었을까. 어떤 포르투갈 남자가 손짓 발짓으로 히치하이킹을 해주겠다는 듯 다가왔다. 길가에 세워진 차를 가리키며 함께 타자고 제안했다. 문득 포르투갈 순례자 길 오픈 채팅방에서 종종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지쳤고 비가 많이 왔고 더군다나 무릎을 다친 후였기에, 그를 믿고 차에 탔다. 차를 탄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그는 도착했다고 했다.
그곳은 인가 따위는 보이지 않는 어느 산 속이었고, 갑자기 그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강한 공포를 느꼈고 몸이 굳어버렸지만 나의 머릿속은 온통 딱 한 문장만 생각이 났다... '도망쳐.'
그렇게 나는 소리를 지르며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 이 끔찍한 이야기가 이쯤에서 끝나기를, 무사히 남은 순례길을 걸었다는 결론이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가 차에서 내려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