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주의자의 색다른 경험
지난 겨울,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7시간 동안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시레토코라는 곳을 다녀왔다. 몇 년을 기다린 여행이었기에 떠나기 두 달 전부터 버스, 호텔, 3가지의 투어(유빙 걷기, 자연공원 산책, 관광 투어)를 예약하고 당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예약 과정까지는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출발 하루 전 안타까운 소식을 받았다. 우리가 신청한 여행 투어 3가지 중 '유빙 걷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메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취소되어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동안 많이 기다렸던 여행인 만큼 남은 투어들만이라도 체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설렘을 안고 도착한 시레토코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작은 소도시였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짐을 추스려 급하게 내린 곳은 중간 정거장인 XX리조트. 이곳에서 우리가 묵을 호텔까지는 15분 정도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친 눈보라를 뚫고 힘겹게 호텔에 도착했고, 나와 친구는 간단히 짐을 풀어두고 투어 가이드님을 만날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되기 10분 전쯤 메일을 통해 받은 사진과 똑같은 미소를 가지고 계신 가이드 분이 호텔 로비로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그런데 함께 투어를 간다던 나머지 다른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유빙 걷기 투어 취소와 함께 모두들 전체 투어를 취소한 것. 가이드님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단 둘이 가이드 분과 같이 투어를 떠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좀 더 자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첫 투어지로 떠났다. 첫 번째 일정은 스노우슈즈를 신고 자연공원을 걸으며 다양한 설명을 듣는 일정이었다.
공원 안에 하얗게 내린 눈은 나의 골반 정도 높이로 쌓여있었는데, 스노우슈즈를 신고 걸으니 전달되는 압력이 분산되어 눈 속으로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과학적인 부분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익히 배워서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실생활에서 직접 느끼니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투어 중에서 서브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던 이 일정이 나에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준 것은.
자연 속을 걷고, 보고, 느끼는 도중에 한 나무를 만났다. 나무의 몸통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의 구멍들이 나있었는데 딱따구리가 쪼아서 생긴 구멍이라며 왜 그런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딱따구리가 나무 안에 살고 있는 벌레를 먹기 위해서 나무를 쪼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이 답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말씀하셨다. 반이 틀린 이유는 '일부러 구멍을 내서 그 속에 벌레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더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영리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먹이를 찾는 동시에 먹이를 불러들이는 역할도 한다니.
하지만, 여러 군데에 구멍이 난 나무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바람과 같은 자연의 현상에 의해서 부러지거나 뽑히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게 나무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것이 자연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왜 그런 것일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서 필요성이 있는 일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누군가가 내 머리를 한 대 친 듯한 멍한 기분이 느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나 거대한 숲을 만든다. 하지만 너무 많은 나무들이 숲에 빼곡하게 살고 있으면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나무들은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기 때문에 성장을 하지 못하고 금방 죽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숲은 점점 늙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황폐화 현상이 올 지도 모르는 상황에 도달한다. 그러나 딱따구리들이 날아와서 오래 살아온 나무들에 구멍을 내고 점차 많아진 그 구멍들에 의해 몸체를 지탱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다가오면 고목들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분명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나무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햇빛을 공급받아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어 젊은 숲을 조성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서 숲은 계속 젊은 푸름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자연의 섭리가, 숲이 유지되는 이유가, 그리고 더 나아가 생태계가 이런 방법으로 유지와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모르고 있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눈으로 직접 쓰러지고 뽑혀나간 나무들을 보면서 배워오면서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하며 바라보니 자연이란 정말 위대하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 또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들이 내가 직접 겪은 경험으로 바뀌는 순간을 겪은 시간이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순간에 느꼈던 희열을 글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경험주의자이기 때문에 경험이 어떠한 형태이던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많이 겪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을 해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나며,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하게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직접적으로 경험해보는 것이 간접적인 경험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경험이 소중하고 귀중하지만,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며 경험한 것은 앞으로의 나에게 막강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또 다시 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