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남은 선명한 흔적이 준 깨달음
나는 평소에 물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이다. 물을 마셔야 피부관리에도 건강관리에도 좋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물을 마시는 것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려고 여러 번 노력을 했었는데, 요즘 그 어떠한 때보다 오랫동안 이어나가고 있다.
번번이 실패했었던 것을 기억하면 스스로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물 마시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던 한 시절이 떠올랐다. 지난해 겨울, 건강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아침에 따뜻한 한잔의 차를 마시는 연습을 했었다. 맹맹한 물을 그냥 마시는 것보다는 차를 마시면서 적응을 해나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을 한 것이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겨우 한 컵 (약 350ml - 작은 맥주 한 캔 크기)을 비우지 못해서 하루 종일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하루는 차를 마셨던 컵을 씻어두지 못하고(뒤에 약속이 있어 급하게 가느라 못한, 결코 안 한 것이 아닌) 퇴근한 적이 있었다. 잔에 담겨 있던 차를 허겁지겁 다 비우긴 했으나 마지막에 떨어지지 않는 몇 방울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컵에 그대로 남겨둔 채였다. 하필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다음날 학교를 나갈 계획도 없었다. 덕분에(?) 나의 하얀 찻잔은 몇 방울의 차를 머금은 채 주말을 외롭지 않게 보냈을 것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다시 마주한 찻잔에는 외롭게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선명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재빠르게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벅벅 닦아내 보았지만 주말 내내 머금고 있던 자욱을 지워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미 컵과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컵 안에 물을 잔뜩 받아두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번 수세미로 벅벅 문질러 흔적을 겨우 지워냈다.
선명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찻잔을 수세미로 문지르면서 '모든 일에는 때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상황을 때에 맞춰 처리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쳐버리면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컵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흔적을 통해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p.s. 시기가 늦었더라도 열과 성을 다해서 그 일에 몰두하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