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우 -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中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을 켜는 방법은
켜질 때까지 전원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충전뿐이다.
글배우,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中
앞만 보이도록 양옆을 막아 둔 경주마처럼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죽어라 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무리하며 달리다가 넘어져 상처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상처를 무시하고 참으며 달리던 길을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갔었다. 결국 피투성이가 되어 더 이상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그럴 때면 생채기가 나을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버티지 못한 나의 다리를 탓하며 더 이상 이전처럼 달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괜한 짜증과 화를 냈었다.
그러고는 충분한 휴식도 없이 뒤에서 쫓아오는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또다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나를 쫓아오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달린다고 해서 제대로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달리는 것에만 매달렸었는지.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충분히 쉬어주는 것이었다. 계속 달리는 것이 아니라.
2023년은 나에게 또다시 신호를 주고 있다. 이제 진짜 좀 충분하게 쉬라고. 이전까지의 나였으면 보내는 이 신호를 무시했을 텐데, 이번엔 나도 알았던 것 같다. 쉬지 않으면 더 긴 여정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이 쉬어감이 내 인생 모든 부분의 크고 작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길, 충분하게 충전하고 다시 내 페이스대로 달릴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