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추억 속으로 한걸음

옛 추억 떠올리기

by 김청

온전히 삿포로에서 시작한 하루.


어제 공항에서 넘어온다고 일찍부터 움직인 탓에 피곤했는지 일찍 눈이 떠지지 않아 10시쯤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커튼을 쳐놓고 잠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일어나서야 ‘아, 나 지금 삿포로에 와있구나.’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얼마나 날이 좋길래 햇빛이 이렇게까지 쏟아지는지 보려고 커튼을 열어 밖을 확인해 보니, 정말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많은 나무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푸릇함과 파란 맑은 하늘이 공존하는 장면을 보니 마음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인데, 여기에선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감사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푸릇함과 맑음의 공존


이번 여행처럼 비행기만 끊어놓고 출발한 무계획 여행은 처음인지라, 오늘은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일단 뭘 좀 먹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근처 마트를 다녀왔다.


일본으로 오기 전, 갑작스럽게 장염이 걸리는 바람에 쫄쫄 굶었는데 무리가 가는 식사를 하면 이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간단하고 건강한 것들을 챙겨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마트에서 장 본 것들은 양배추 샐러드, 연두부, 낫토, 토마토 그리고 샐러드드레싱과 에다마메(찐 완두콩에 소금을 친 간편 술안주)


일본 음식 중에 다시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들 물어보는데, 사실 딱히 없었다. 근데 유독 생각났던 에다마메. 처음에 다들 고작? 이라고들 말하지만, 한 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에다마메의 맛을 보고는 별거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분주히 움직이는 손과 입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리고 괜스레 장염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재스민 차 한 병까지 장바구니에 담아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일단 먹고 오늘 뭐 할지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장 본 여러가지 재료들


집으로 돌아와서는 양배추 샐러드와 토마토를 씻어 자른 후 그릇에 가지런히, 연두부는 그릇에 폭삭 엎어 드레싱 뿌려 준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낫토를 열어서 겨자소스는 버리고, 간장만 조금 (있던 양에서 1/3 정도) 넣어 준비해서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했다.


일본까지 왔는데 싱싱한 해산물이라던가, 질 좋은 와규라던가 이런 것들은 고사하고 이렇게 건강식이라니... 싶지만, 이번 주까지는 나의 장을 위해 양보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차려진 한 상이라서,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오늘은 뭘 하면 좋을까 가만히 앉아 고민했다. 그러다 불현듯, 이전에 살았던 집이 잘 있는지 궁금하길래 오늘은 이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건강식 한 상 차림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은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추억들을 되살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눈에 들어오던 것들이 있어 연신 핸드폰의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떠난 여행이라 카메라도 사치라며 다 두고 왔는데 막상 오니 아쉬웠던. 그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가며 핸드폰으로 선명하고 또렷하게 한 장 한 장 남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담았던 것은 어느 한 주택. 집을 정말 깔끔하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신경을 쓰는 것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잘 관리된 주택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처음으로 오기 전, 머릿속으로 그렸던 일본의 집의 형상에 굉장히 가까웠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누구일지, 어떤 사람일지 너무 궁금해지는 외관.


푸른 하늘과 잘 어울리는 잘 관리된 어느 주택


조금 더 걷다가 만난 것은 우산이 잔뜩 걸려있는 곳이었는데, 무슨 이유로 저렇게나 많은 우산이 걸려있을까 싶어 유리문 안쪽을 슬쩍 보니 리사이클링 제품들을 모아둔 곳인 것 같았다.


맑은 하늘 아래에 걸려있는, 지금은 제 역할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우산들을 보고 있으니 왜인지 모르게 처량한 느낌이 들었달까. 그래도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덜 씁쓸하겠구나.


잔뜩 걸려있는 우산


홋카이도는 워낙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빠르면 10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서 5월 초중순까지 눈이 내리는 지역으로 여기에 살던 3년이란 시간 동안 평생 볼 눈을 다 봤다고 생각했었다. 눈이 오기시작하면 사람 키가 넘을 정도로 끊임없이 눈이 오는데, 눈이 쌓이면 그 무게가 상당하다. 그래서 눈을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


그래서 옛 건물들을 보면 저 파란 지붕의 집처럼 지붕이 특이하게 생겨있다. 홋카이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개성 있는 지붕 형태인데, 앞쪽은 눈이 쌓이지 못하고 바로 미끄러질 수 있도록 저런 형태로 지어졌다고 들었던 듯하다. 그리고 뒤에도 미끄럼틀과 같은 경사가 있는데 알아서 미끄러지거나, 치울 때 잘 떨어지라고 저렇게 설계한 것이겠지?


홋카이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붕 모양


지나가다가 또 발견한 다른 모양의 지붕도 경사면이 남다르다. 그리고 추가되어 있는 뾰족한 것들.. 저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하나는 눈이 쌓이면 한 번에 많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알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따로 에피소드를 정리할 예정이지만, 깡패라고 불리는 까마귀가 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기엔 뾰족이들의 간격이 좀 넓은가 싶기도 한데)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라는데.... 사람을 굉장히 많이 공격하는 깡패들이다. 특히나 산란기가 되면 사람들의 정수리를 쪼아 대는 통에 문제가 많은데, 이건 나도 당한 것들이 많으니 나중에 한 번에 에피소드를 따로 풀 예정이다. (사실 오늘도 까마귀랑 대치했었음)


홋카이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붕 모양 2


눈 관련 얘기를 하다 보니 또 생각난 하나는 신호등.


처음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몰랐었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면 신호등이 세로로 서있다는 걸 알아차릴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가로로 누워있는 일반 형태면 아무래도 눈이 쌓이는 면적이 많아지니 세로로 세워서 눈이 덜 쌓이게 한 거라고 한다. (다른 일본 지역도 그런지 아닌지는 기억이 안 난다....)


역시 사람들은 처한 환경에 맞추어 잘 적응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그렇게 걷고 걸어 이전에 살았던 집과 골목들을 마주했는데, 여전히 그대로 있어서 당연하지라고 생각이 드는 한편으론 나 말곤 변한 게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집 맞은편에 있어서 자주 들렀던 빵집도 여전히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에 나서는 등굣길에 항상 빵냄새로 식욕을 자극했던 추억의 빵집. 별 것 들어간 것이 없는데도 맛있었던 샌드위치.


그리고 이 가게엔 마감 전 타임 세일이 있어서 랜덤 한 봉지 가득을 300엔에 주는데, 그걸 사기 위해 앞 쪽에 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 풍경이 눈에 선했다. 나도 몇 번 줄을 서봤는데, 꽤 괜찮은 구성으로 들어가 있어서 가성비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근데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아서 1인 가구인 경우 처치 곤란이 될 수도.


추억의 빵집, 집 맞은 편 보스턴 베이커리


3~4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와서 여기에 이게 있었는지 저게 있었는지 기억이 선명하진 않았지만, 평소 등교했던 그 길을 천천히 걸으며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등굣길에 또는 하굣길에 방앗간처럼 들렀던 로손 편의점과 나의 첫 자취집을 구해준 부동산 아파만 숍.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로손에서 파는 오뎅을 그렇게나 먹었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오뎅은 말 그대로 진짜 어묵을 뜻하는데, 일본에서는 다양한 종류가 함께 있다. 유부 주머니, 양배추롤, 곤약, 계란, 무 등 다양한 것들이 함께 있고 이것들 중 하나씩 선택해서 사는 형태.


나는 곤약과 실곤약을 참 좋아했다. 귀국해서도 실곤약과 곤약을 사서 직접 끓여 먹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로손과 아파만숍


24시간 운영을 해서 새벽에 뭐라도 먹고 싶으면 당장 달려갔던 디너벨. 코로나로 인해 영업 축소를 했으련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에 심심한 입을 항상 달래주곤 했었던 고마운 친구.


요즘은 어떤 것들이 있나 해서 들어가 봤는데, 여전히 똑같은 곳에 똑같은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변함없음에 한 번 놀라고, 그걸 다 기억하는 내 기억력에 한 번 놀라고.


24시간 영업하는 디너벨 마트


둘러보다가 장염 때문에 몸 사리는 중이라 아직은 마실 수 없는 맥주코너에서 새로 출시한 듯한 아사히의 맥주를 발견.


다음 주부터는 무조건 1일 1 맥하면서 다니겠다는 다짐을 또 해본다. 삿포로에 왔으면 삿포로 클래식이지. 기다려라 나의 삿포로 클래식.


다양한 종류의 맥주들


그렇게 걷다 보니,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학교에 다시 오면 반갑기만 할 줄 알았는데 반가운 마음보다는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벌써 지겹지? 싶으면서, 왜 지금도 학교 다니는 중인 것 같지 싶었다. 다닐 당시, 이르면 아침 6시부터 늦게는 새벽 3~4시까지 (사실상 2시간 텀)지겹도록 머물렀던 학교였기에 그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오랜만에 찾은 이 학교가 마냥 썩 반갑지만은 않았나 보다.


은행나무길을 따라 들어가는 학교 길이 익숙하면서도 새삼스러운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긴 여전히 한적하고, 여유롭고,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학기 중에 왔으면 학생들이 많을 텐데, 지금은 방학이라 (일본은 한국보다 한 달 느린 4월, 10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더 고요하고 여유로웠던.


학교 들어가는 13조 은행나무 길


이미 다들 알고 있듯이 일본에서는 자전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이다. 학생들도 당연히 자전거를 대부분 타고 다니는데, 부는 바람에 자전거들이 힘없이 픽픽 쓰러진다. 삿포로엔 바람이 많이 부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지금은 방학이라서 자전거가 많지 않아 넘어져도 세우는 것이 비교적 수월할 텐데, 자전거 한 대가 바람에 넘어가면 도미노처럼 다 같이 쓰러지는 자전거들로 인해 서로 뒤엉켜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 사이에서 꺼내다가 체인이 나가는 경우도 있고, 프레임이 구겨지는 일도 다반사.


생각해 보면 쓰러진 자전거들 틈에서 내 자전거를 찾아 꺼내는 일이란 정말 최악이었다.


많은 수의 자전거를 수용해야 하니 따로 거치대가 없어 생겨나는 일. 그렇지만 학교 곳곳에 거치대가 있는 곳들도 있어 나는 항상 그곳에 자전거를 주차해 두었었다. 저들 틈에서 꺼낼 자신이 없었기에.


바람에 쓰러진 자전거들, 그리고 그들끼리의 뒤엉킴


그렇게 쓰러진 자전거들을 뒤로 대충 학교를 한 바퀴 돌고, 드디어 오늘 만나는 친구를 위해 한식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부지런히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의 메뉴는 된장찌개에 간장제육볶음 정도로 준비해야겠다 머릿속에 그려놓고 처음 오자마자 살았던 기숙사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 아까 잠깐 언급했던 깡패 까마귀(특별히 한 편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줄 예정)도 만나고, 귀여운 차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모습도 만나고, 하수구에 문제가 있는지 샛노란 장비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나가면서 만났다.


모든 것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았다.


장난감 차 같은 일본의 차들, 샛노란 하수처리차


열심히 걸어 다시 마트에 도착했고, 부지런히 필요한 것들을 담아 집으로 향했다. 6~7시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이 되어 그 시간에 맞춰 준비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 한 동안은 본가에 있으면서 엄마, 아빠가 차려주시거나 외식을 했었으니.


나는 요리하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그동안 잊고 살았던 듯하다. 회사 일에 치이고, 이런저런 갖은 핑계를 대며 요리를 하지 않았던 지난 몇 달간.


음식을 준비하며 다시금 새삼스럽게 느꼈던 건, 난 참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된장찌개와 간장제육볶음을 위해 장본 것들


요리를 하기 위해 재료를 구입하는 것부터 재료 손질,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나의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굉장히 소중하고 보람이 느껴지는 일이라는 건 이미 예전부터 느꼈기에 요리라는 행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 먹고 나서 정성을 담은 음식들을 소중하게 품어주는 그릇들을 정리하는 것까지.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좋아했고, 좋아하고, 좋아할 것이다.


음식을 하며 그간 잠시 잊고 살았던 기억이 떠오르니 다시금 나를 되찾아 가는 느낌이 들었다. 삿포로에서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김치찌개 같은 색의 된장찌개, 간장제육볶음과 김치로 차린 조촐한 한식 한 상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 한 숟갈을 그득그득 입에 넣으며 (다행히 장 트러블 없이 잘 넘어갔다) 그간 쌓아왔던 각자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앉아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해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무려 5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을 근황, 사회 이슈, 다양한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니 또다시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 되게 열심히 살았었구나, 너도 되게 많은 것들을 노력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서로가 대견하다 생각하며 마무리한 하루.


내일은 또 어떤 삿포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눈을 감기 직전 벌써부터 기대된다.

내일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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