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의 클래식

by 김호섭

1985년 어느 겨울날이다.

학기 내내 전쟁터 같던 캠퍼스는 고요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오가던 투석과 최루탄. 그리고, 학생들과 백골단 사이의 숨 막히는 도망전-추격전도 이날부터는 잠시 멈춰 섰다. 겨울방학이기 때문이다.

허당은 3학년에 올라서자 군입대 문제도 있고, 학교에 별반 딱히 이렇다 할 정도 없고 하니 이참에 휴직. 아니지. 휴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1학기만 마치고 2학기부터 휴학 중이니 세상 한가하다.

이렇게 주어진 한가한 시간에 어디 멀리 해외여행도 다니며 호연지기도 키우고, 공부도 더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의 시간을 가지면 좋으련만, 그렇게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보태려 해야 할 일은 아. 아. 아르바이트다.

고교시절부터 다양한 알바로 잔뼈가 굵은 허당은 이번에는 커피숍 알바를 하기로 한다. 힘든 육체노동은 그만하고 좀 편한 꿀알바를 찾기 위해서다. 인천의 명동. 신포동을 뒤진다. 알바천국이나 알바몬 그런 게 없으니

당연히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 동네야 원래 허당의 홈그라운드이니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를 꿰차고 바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Q :<몽마르트르 커피숍>을 아시나요?
A : 도를 아시나요. 같은 거냐?

Q : 아니다.

A :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의 우아한 프렌치스러운 카페냐?

Q : 안 가봤다. 프랑스.


인천 답동성당. 그 앞에 위치한 가톨릭회관 빌딩. 그 지하에 위치한 <몽마르트 커피숍>.

거기서의 홀서빙 일이다.

당시, 인천에서 원두커피를 제공하는 커피숍은 통일 다방과 몽마르뜨 딱 두 곳뿐이다.

통일 다방은 가게 규모가 다소 작았지만, 몽마르트르는 거의 100평이 넘는 큰 공간이니만큼 허당은 인천

톱 레벨 만남의 장소에서 홀서빙을 책임지는 당당한 알바생이 된 것이다.

이 큰 공간을 채우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팝과 포크가요가 대부분이었던 인천 커피숍 업계에 드물게도 클래식을 제공한다. 사장님의 따님(프랑스 유학파 출신이 분명하다고 예상되는 누나임, 좀 무서워서 말은 못 걸음)이 뮤직박스에서 LP판으로 틀어주던 음악이다.


고고한 클래식 선율이 흐르던 이 공간은 젊은이들뿐 아니라, 인천의 내로라하는 패션피플, 식자층, 클래식

애호가, 선남선녀 소개팅장소로 최적의 공간이다.

아울러, (서울에는 명동성당이 있듯이) 인천의 답동성당 또한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데모하다 쫓기던 학생들의 피난처이자 보금자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하니, 이 커피숍은 늘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허당은 그야말로 쉴틈 없는 서빙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에 매진하였다. (공부를 이렇게 했었어야만 했다...)

쉽게 채용이 돼서 좋아라 했지만, 이른바 알바생의 무덤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어쩐지 쉽게 채용되더라니...' 그래도 청년 허당은 버틴다. 위안이 되는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잔잔한 클래식 선율과,

(당시 연예인 누구?를 닮았다 하여 인천 전역에 소문난 알바생) 허당을 보러 온다던 여학생 팬클럽 덕분이다.

마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가 히트하면서 몽마르트르에서도 비 오는 수요일에 손님들께 장미 한 송이씩 제공해 주곤 했는데, 이런 날이 되면 멋진 알바생 허당이 선사하는 장미.

기절 장미를 받으러 여학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기나긴 대기줄 때문에 근처 거리는 경찰이 나서서 교통통제를 해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어쩔 것이냐 이 매력을. 운명이거니 하는 수밖에.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허당은 군대에 끌려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대략 4~5개월을 일한 기억을 간직한다. 답동성당, 가톨릭 회관에서 야학을 하던 학생들, 이리저리 도망 다니느라 초췌한 학생들, 동인천역에서 이곳 가톨릭회관건물 지나 사동 사거리까지 꽉꽉 어깨걸고 구호를 외치던 청년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들.

장미 한 송이에 까무러치던 여학생들의 함박웃음과 그 눈망울들. 사장님 몰래몰래 학생들 빈 잔에 리필도 해주고, 장미를 꼼꼼히 다듬던 투박하고 허술한 허당의 두 손.

그리고 클래식.

허당이 기억하는 순간순간들은 파리의 어느 그것처럼 그저 근사하거나 품격+우아+찬란한 모습만은 아니었어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허당 개인 역사의 클래식이다.




2022년 어느 가을날이다. 11월 어느 날,

허당은 이사를 했다. 그 옛날, 몽마르뜨 커피숍이 있던 가톨릭회관 근처 거리의 오피스텔이다. 이삿짐을 풀고, 저녁 무렵 슬슬 동네 마실을 나가본다. 당연히 답동성당, 가톨릭 회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회관은 이미 철거되었고 지금은 대형 주차장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근처 신포 국제시장과 개항장 거리등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 편의 공간을 위해 성당에서 이 가톨릭 회관 건물을 구청에 팔아 몇 년째 공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편의성이야 좋다만, 추억은 철거되었고 몽마르뜨는 어디 가고 역사는 사라진다. 저 멀고 먼 뒤안길로.


그래도 한 가지 바래본다.

그때의 우렁찬 함성과 생생한 장미 한 송이가

그 시간 속에 한걸음의 변화와 한 스푼의 낭만이었기를.



가톨릭회관자리는 주차장건물 설립을 위해 공사중... (뒷편에 보이는 건축물이 인천 답동성당)




개인에게 남는 기억은 추억이라 하고, 민족이나 국가에게 남는 것은 역사라 한다.

나는 개인 인생의 역사에서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추억할 것인가. 때로는 아프거나 슬프거나 짜증 나거나 하는 안 좋은 기억들도 추억하겠지. 철거된 어느기억도 마찬가지. 그 모든 순간들의 총합체가 나의 역사일 테니.


허당은 터벅터벅 오피스텔로 돌아온다.

몽마르뜨의 추억이 그저 단순히 흘러간 옛날 시간의 기억이 아니라면

그 기억이 오늘의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면

그 또한 우연이 아니리라.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나의 소소한 오늘 하루도 훗날 추억할 개인의 역사가 될 지어니.

그냥 흘러가는 오늘의 이 시간도 아무런 의미없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2022년 11월이 간다. 영원한 11월이 없고 영원한 가을이 없듯이 시간은 흐른다.


그래도 클래식은 영원하다지 않던가.

허당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래. 나만의 새로운 역사를 쓰자. 그 역사는 글의 역사일 것이다.

철거되지 않을 역사. 미래의 나를 이끌 오늘의 역사.

나만의 클래식이다.

한줄 요약 : 일상의 소소한 글을 쓰는 일이 소소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각자 모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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