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에서 볼이 날아온다. 볼을 따라 페널티라인 안쪽으로 K-황소 황희찬이 돌진한다.
퍼스트 터치! 아... 좀 길다. 보통 저런 공중볼이 날아오면 국대급 선수 들은 다음 동작까지 머릿속에 계산해놓고 퍼스트 터치를 한다. 다음 동작을 위한 볼의 방향과 볼을 받는 내 몸의각도 등을 볼이 오기 전 찰나에 미리 결정하고 퍼스트 터치에 이를 반영한다. 쉽게 말해, 볼이 나에게 도달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이 볼을 처리할지 미리 내 주변의 적을 휘리릭 둘러보고 동료들의 위치도 파악하고 침투할 공간도 예상하고 퍼스트 터치를 한다는 얘기다. (단 한 사람의 축알못도 이해할 수 있도록 애쓰는 참 친절한 설명이다.)
그래서 황소의 저 터치는 슛을 때리겠다는 의도다. 척 보면 안다. 안 봐도 유튜브다.
터치한 볼은 골문에 가까워졌고 역시, 황소는 어김없이 슈팅을 때렸으나 볼은 허공으로 훠이훠이 나빌레라.
마음이 급하다 보니 디딤발과 차는발의 균형과 각도가 불안정하다. 차는발의 발목에 힘이 들어가고 살짝 들린다. 그러니 뜰 수밖에.
슬로우모션으로 잡히던 그 장면, 생생의 빨개진 눈은 텔레비전이 뽀솨져라 그 장면에 주목한다.
황소 뒤에서 달려오던 한 사나이가 아쉬워한다. 화면에 살짝 잡힌 그 사나이는 배트맨 쏘니 손흥민이다.
쏘니에게 경기 내내 그림자처럼 달라붙던 브라질 수비수들도 마침 아무도 없다. 완전 노마크 찬스!
황소는 이 순간에 슛보다는 뒤에서 달려오던 쏘니에게 컷빽 패스*를 했으면 어땠을까?
쏘니가 이렇게 프리한 상황이 몇 안되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다.
경기는 이미 4:0. 대세는 기울었다. 세계 최강 브라질은 역시 강했다. 슬슬 툭툭 볼을 다루다가 찬스가 왔다 하면 무섭도록 놀라운 스피드와 그림 같은 패스웍으로 한국의 수비진을 유린하는 모습에 슬슬 짜증 한 사발이
밀려오지만 양 팀의 실력차를 엄연한 사실이다. 이들의 재능은 타고난 거다.
축구를 하는 거냐 삼바춤을 추는 거냐... 인정할 건 인정하자. 펠레의 후배들 다웠고,
브라질은 역시 넘사벽 그 잡채다. 이런 젠장이다.
'브라질'이라고 부르고 '이런 우라질'이라고 괜히 혼자 신경질을 부려본다.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거늘.
지칠 대로 지친 태극전사들이지만 후반 20여분을 남기고는 마지막 투혼을 발휘한다. 패스도 손발이 맞아가고 슈팅도 간혹 날린다. 질 때 지더라도 제발 하나만 넣어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포르투갈전의 피말리던 그 시간보다는 쫄깃함이 덜해서 연식 오래된 방구석 붉은 악마 1인에게는 애달 박달이 덜하니 '이 또한 건강에 감사한 일이다'라고 허허 너스레를 떨어본다.
서두에 언급한 황소 슛 장면은 태극전사들이 그런 좋은 분위기와 흐름을 슬슬 타던 시점에서 나온 장면이다.
다른 아쉬운 장면도 몇몇 있었지만 그 장면에 유독 아쉬움을 토로하던 생생은 답답한 마음을 식히기라도 하듯 방구석 창문을 화들짝 열어젖힌다. 아이코 추워라.
살짝 눈발도 날리는 새벽 회색 하늘에 뭉게뭉게 추억 구름 풍선이 하나 떠오른다.
그 옛날, 젊은 생생 시절 축구하던 장면이 황소 슛과 오버랩된다.
고민이 이어진다. 이 장면의 이야기를 쓸 거냐 말 거냐.
태극전사들이 이렇게 투혼을 쏟아가며 도전을 하는데 나도 뭔가 도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쓰는 이야기. 바로, 모든 스토리텔러들에게 지극히 위험하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다.
대학시절, 생생은 (술 먹고 다니느라고) 본격적인 데모꾼은 아니었다만, 백골단에 끌려가 닭장차에서 무자비하게 두드려 맞는 친구들의 모습에 격분, 두 주먹 불끈 쥐고 행진에 가담 연일 목청을 드높인다. 덩달아 닭처럼 끌려가 얻어맞기도 한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우리 대부분은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갑자기 군입대 영장은 날아오고 생생은 최전방으로 끌려간다.
세상 추운 동네. 강원도 철원이다. 자대 배치를 받은 그날부터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는 건 군기 타임이다.
이유는 없다. 쳐다본다 맞고 어리버리해서 맞고 허술해서 맞고. 맞고 또 맞고.
주먹으로, 발로, 마포 자루로, 야삽으로 참으로 다채롭게 무지하게 맞았다.
맞은 얘기는 고만하자. 쓰는 자도 읽는 자도 괴로운 시절의 장면이니.
그런데 이리도 군기 삼엄한 시절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사단장배인지 연대장배인지 부대에서는 연일 축구시합이 한창이다.
G.O.P 철책근무부대 바로 아래 지역에 위치한 FEBA 부대 : 전투지역 전단 - Forward Edge of the Battle Area. 엄호 및 경계부대가 작전하는 지역을 제외한, 지상 전투부대의 주력이 전개하고 있는 일련 지역의 최첨단 한계. - 출처 : 네이버 사전
통상 철책근무 부대 바로 아래 위치하며 전투대세 준비를 갖추는 부대. 일정기간에 철책근무부대와 근무교대를 한다. FEBA 지역에서 병사들은 온갖 훈련과 작전으로 가히 공수부대나 수색대에 버금가는 천하무적 군인이 된다. 훈련이 비는 짧은 기간에는 이렇게 닥공 축구대회가 열린다
- 부연설명 : 생생
생생의 소대는 어느 날 패전의 위기에 처한다. 출전 선수는 주로 고참들이고 까까머리 이등병은 죽어라 노래만, 응원가만 부른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팀은 패전의 위기에 처한다. 시간은 흐르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곧 울릴 시점이다. 이때. 최고참 이 병장이 생생을 호출한다. "야. 너. 들어와."
'저. 저요? 아니지...'
"이병 김호섭. 저 말입니까?"
씩씩하게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생생의 군대스리가 데뷔의 날이다. 통일화 끈을 바짝 조여매는 생생의 눈빛이 반짝인다.
(To be continued...)
*컷빽패스 : 풀백,윙백 같이 사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공을 받거나 공을 드리블해서 상대팀 깊숙이 들어간
상황에서 자신의 대각선 방향 뒤쪽에서 침투하는 선수에게 패스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출처 : Naver 지식인 - 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