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일용할 양식을 마련해 주신다.
아들은 요즘 말로 요알못*이다.
*'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줄여 부르는 신조어.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요리를 알지 못하니 할 줄도 모른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계란 라면, 계란 프라이, 삶은 계란뿐,
계란 시리즈 딱 3종 세트가 가능한 요리의 전부다.
음식을 싫어하는가? 그렇진 않다. 누가 해다 주면 어떤 음식이던 바로 군싹**이다. 기가 막히게 복스럽게도
얼씨구나 잘도 먹는다.
**' 군침이 싹 돈다'의 준말로,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입안에 침이 싹 고인다라는 신조어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2022 년 MZ 세대 신조어란다.
단지, 스스로 요리를 해가면서까지 무언가를 먹는 행위 자체에 별 필요성을 못 느끼다 보니 그냥 안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 한 줄 더 읽거나 글 한 줄 더 쓰거나 하는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안배함이 옳다고 느낀단다. 이렇게 본인 얘기를 남 얘기하듯이 하는 말을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한다.
"타인의 시간은 나몰라라이고 자신의 시간만 중요한가? 이런 몹쓸 인간아"라고 독자들이 들불같이 일어나면 생생은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아니, 누가 요리를 해달라 했나요? 요리를 모르고 안 해 먹는 건 내 자유 아닙니꽈!!!" 세상은 조용해진다.
(가끔 생생은 스스로도 놀란다. 지극히 개성적이고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MZ세대의 특성마저 겸비한
본인에게서 말이다. 이 인간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도대체 몇 세대를 아우르는 것인가...
이렇게 쓰고보니 좀 재수없긴하다.)
조용한 세상에 갑자기 한 여신이 분주하다. 생생의 어머니다.
팔순 중반의 노모는 독거 꽃중년 아들이 행여나 영양실조라도 걸릴까 봐
(요리조리 보따리 봉다리 바리바리 양세바리 제주도엔 다금바리 달콤바리 김호바리...)
매주말마다 귀중한 음식들을 담아주신다. 당신의 시간은 마치 자식을 위한 시간인 양, 거동이 가능하신 대부분의 시간을 시장과 마트로 종횡무진이시다. 이 여신 앞에서는 생생도 꼬리를 내린다.
MZ세계관도 무의미하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에너지뿐, 그저 받을 뿐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진정을 넣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불효는 끝이 없다.
지난 주말에 받아온 은혜로운 음식은 동치미와 미역국이다.
동치미는 정확히 말하자면 나박김치다. 동치미에 김치를 넣어 만든 퓨전음식인데 어찌나 시원한 맛인지 쨍쨍한 그 맛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이 어렵다. 미역국은 또 어떠한가. 별달리 추가한 재료가 없는데도 어머니의 미역국은 어느 식당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맛이다. (그래서, 미역국 장사하자는 사업 제안을 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맞을뻔했다.)
큰 플라스틱 용기에 듬뿍 담아주시니, 생생은 한두 번 먹고는 창문 베란다에 두 음식을 살포시 내어 놓는다.
냉장고에 큰 용기를 넣을 공간도 부족할뿐더러, 겨울철이니 밖에 내어놔도 상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당연한 조치다. 이런 면을 봐서는 생생도 제법 살림꾼이다. 요리를 못해서 그렇지...
어제 새벽의 일이다.
갑자기 온도가 뚝 떨어지니 영하 8도의 날씨다. 엄청 춥다. 영하 30도 강원도 철원의 살인적인 추위도 버텨낸 육군 병장 출신 생생은,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하며 묵묵히 새벽 산책을 다녀온다.
쿨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창문 베란다에서 동치미와 미역국을 집어 올리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그때. 희한한 상황에 마주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내어 놓은 두 음식인데,
미역국은 꽁꽁 얼었고, 동치미는 처음 상태 그대로다.
아니 이게 무슨 현상인가? 물리학도였던 생생은 물리적 해석이 어렵다는 직감과 동시에 이런 유형의 현상은 화학적 분석이 필요해라는 판단도 내린다.
물리와 화학은 서로 옆집에 사는 이웃 학문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분석을 위한 생각을 당연히 내려놓고 시원한 동치미에 밥을 먹는다. 미역국을 녹이고 끓이고 하기에는 출근시간이 임박해오기 때문에 여의치 않다. 그러니 동치미만 선택된다. 뭔가 허전하다. 그렇지. 빠진 건 김치다.
다시 창문 베란다를 연다. 엊그제 작은 누이가 지방에서 공수해다 준 김장김치다. 안 얼고 멀쩡하다.
점점 호기심이 생긴다. 옆자리에 있는 닭볶음탕도 열어본다. 주말에 근처 식당에서 술안주로 포장해왔는데
먹다먹다 지쳐 많이 남아서 이 또한 베란다행이었다. 어라? 쫄디 쫄아 얼었다. 꽁꽁.
닭볶음탕이 아니라 닭꽁꽁탕이 되었다.
그 옆에 있던 밥도 얼었다.
자. 이쯤 되니, 아침 식사는 뒷전이고 출근은 나몰라라이며 생생은 창문 베란다에 대롱대롱 매달리듯이 바짝 달려들어 분석에 들어간다. 궁금하면 못 참는 호기심 대마왕 MZ성향이 다시 머리를 내민다.
생생의 머리 위에 연구실 전구가 반짝 켜진 듯도 하다.
안 얼은 음식의 공통점은 바로 찾아낸다. 역시 예리하다. 김치다.
동치미 (나박김치)와 김장김치에는 김치가 들어있고 미역국과 닭꽁꽁탕에는 김치가 없다.
오호라. 결빙을 막은 건 바로바로 김치인 것이다. 김치가 어떤 화학적 작용을 해서 결빙을 막은 것인지는 당연히 모른다. 김치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이유라고 말하는 전문가의 입은 애써 틀어막는다.
이 글이 복잡해지니까.
물끄러미 이 상황을 본다. 김치. 대한민국 전국민의 쏘울 푸드 아닌가. 대표적인 영혼의 음식이고 국가대표
반찬인데 이렇게 음식의 결빙도 막는다. 외부의 강한 온도 변화에 본 음식을 보호하고 얼거나 쫄아듬을 방지한다.
오호라. 그래서 그랬구나. 우리가 김치를 매끼마다 먹는 이유였구나.
험난한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얼거나 쫄지 말라고. 기가 막힌 선조들의 지혜에 나오는 건 그저 감탄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상에서 어떤 강한 압박이나 급작스런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누구는 얼거나 쫄거나 굳거나하고 누구는 또 태연자약이다.
이 차이는 또한 무엇인가? 온 국민이 수천 년간 먹어온 김치의 원자, 분자, 전자, 양자. 입자, 복분자?는 우리 모두의 DNA에 촘촘히 누적되어 있거늘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피지컬한 김치의 존재에 버금가는 멘탈의 김치가 또는 마음의 재료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닐까? 그럼 그 멘탈김치, 마음의 재료는 과연 무엇인가...
그 마음의 재료는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성이고 다양한 불안과 걱정에 대한 방어기제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얼거나 쫄거나 또는 역방향으로 극단적으로 폭발하거나 터져버리는 그러한 마음의 급 변이를 막아주고 달래주고 토닥여주는 것. 그것이 정녕 알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무심코 "김치~~~"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셀카 타임이냐?
헛. 이건.
미소였구나. 웃음이었구나!!!
속전속결. 자체 결론에 이른 생생은 동치미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키고, 차의 시동을 걸며 웃는다.
미역국은 찬찬히 녹여서 여유 있는 주말에 아름답게 맞이하면 된다.
출근시간이 늦었지만 그래도 웃는다. 후훗.
추운 날씨라 회사가기도 싫지만 그래도 미소 짓는다. 김치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 월드클래스냐. 이런 기가 막힌 동치미 나박김치 이론 또한 월드와이드로 알려야 할 생생띠오리라 할만하다.
수많은 심리치료 이론이 별거냐. 일상에 즉시로 쓸 수없다면 그림의 떡일 터이니,
생생띠오리는 가볍게 일상에 적용하여 수시로 써먹을만하다. 돈도 안 든다.
얼지 말고 쫄지 말자.
웃자. 웃자. 웃어보자꾸나.***
한 줄 요약 : 영혼은 얼지않는다.
*** 거장, 이상 선생님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문구를 살짝 패러디 함. 양해바랍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