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의 시간

by 김호섭

지난 주말에 급하게 이사를 했다.



생생은 인천의 구도심 단독주택 단칸 월세방에 살고 있다. 1인 가구다. 독거노인... 아니 독거 꽃중년이다.

얼마 전에 아들딸이 다녀갔다. 직장과 결혼 관계로 각자 독립해서 살고 있는데 아빠 생일을 맞아 월세방으로 찾아온단다.

이런 때면 느껴진다. 어떤 에너지의 밀도 높은 흐름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빨라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어떤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예감한다. 아들과 딸의 움직임이 신속하고 둘이서 속닥거림은 분명, 작전에 들어갔다는 의미이겠다.

심상치 않다. 바로 감 잡는다. 나는 아빠니까.

아니나 다를까. 선전포고가 날아온다. 아들이다.

"아빠. '그 방구석은 도저히 아니다'라는 결론을 동생과 냈습니다. 옮겨 가실 곳 여기저기 알아보고, 결정하고 곧 다시 올 테니 이사 가실 준비하고 계세요. 이번엔 제발 가셔야 합니다."

아빠는 물러서지 않는다.

"어허. 괜찮대도 그러네. 이 집이 다소 노후된 집이라 그렇지. 햇살이 창문 가득 쏟아지는 게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데. 아빠에겐 이 햇살이 지중해 오렌지 빛깔 햇살보다 더 빛나고 소중하단다. 아빠가 햇살 좋아라

하는 거 너희들도 잘 알지? 주인아주머니도 친절하시고, 동네도 조용하고..."

이번엔 딸이 나선다.

"아빠의 '괜찮다'가 그냥 괜찮은 게 아니란 거는 우리도 이제 알 나이가 되었답니다~

햇살은 무척이나 좋으나 여름, 겨울을 나기에는 무척이나 허술한 집이니 이번에 꼭 이사하셔야 해요.

쿄쿄쿄~"


아들과 딸은 다시 속닥속닥 거린다. 이번엔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인천의 가장 큰 병원 <인하대병원> 근처로 방을 알아보려는 눈치다. 아빠의 허술한 몸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 배경에 깔려 있으리라.

허나, 그 동네는 보증금과 월세가 비싸다.


가만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이들이 무리를 해서 다른 동네의 크고 넓은 집으로 옮기려는 기세가 확실하니 아빠는 토요일 아침 급히 서두른다.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시간이다. 아직 꽃중년의 나이인데 벌써부터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어선 결단코 아니 되기에, 지난밤의 술자리 여파로 숙취가 만만치 않다만 으라차차 벌떡 일어난다. 지금 사는 곳에서 가까운 동네를 타깃으로 다방/직방/발품을 팔아 토요일 오후에 뚝딱뚝딱 계약하고, 일요일에 속전속결 이사 끝!이다. (옮겨갈 곳의 월세도 어느 정도 적당히 착하다.)

생생의 추진력은 오래도록 수면 밑에 잠겨 있었을 뿐, 아직 이렇게 생생히 살아 있었다. 반갑다 추진력아.


세간살이는 허술한 방주인만큼이나 허술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 대부분 내다 버린다. 무거운 짐이라곤 침대와 책상뿐이고, TV는 오래전에 이상한 인간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꼴을 더 이상 보기 싫어서 발로 차 버리고 내다 버렸으니 이럴 때는 오히려 꿀이다.

초저가이지만 무거운 침대는 그냥 두고 가기로 결정을 하고 집주인 아주머니께 말씀드리니 좋아라 하신다.

결국 큰 짐 중에서 남은 건 책상뿐이다. 이건 분해해서 가면 될 일이니 굳이 돈 들여 이삿짐센터 화물차를

부를 일도 없다. 자차로 네다섯 번 옮기니 끝이다. 다만, 그동안 켜켜이 쌓아놓은 책의 무게를 간과한 것은

이번 이사 프로젝트에서 유일한 옥의 티. 질량의 무게뿐 아니라 문장의 무게가 더해지니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아이들 성화에 숙소를 옮기기로 결정하였지만,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두 가지다. 공원과 도서관이다.

물론 다른 동네에도 있는 평범한 시설이지만, 자유공원과 꿈벗도서관에 쌓아 올린 정에 어찌 비할쏘냐.

자유와 꿈벗을 중심으로 요리조리 옮겨 다니는 메뚜기 이사를 하는 걸로 아이들과 극적인 타협을 이뤄낸 것이다. 생생의 협상력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만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때론 이렇게 가족 간에도 원활하다.

반갑다 협상력아.

레옹이냐? 초록은 이 집에서 4년 동안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 대나무입니다.


















새로 이사 간 곳에 제일 먼저 자리 잡은 생생의 서재입니다~




50대 초반에 시작한 사업을 50대 중반에 모두 시원하게 말아먹고 지금은 50대 후반. 예순 즈음의 나이가 되었다. (이렇게 온통 상처투성이로 갈아 넣은 나의 50대여. 잘 가거라. 후회는 없다. 혼신을 다했고 그 결과를 오롯이 책임지면 되는 일.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신포동 여관방(전문용어 : 장기방)에서 4년, 전동 단독주택 단칸방에서 4년 그리고 이제 경동 오피스텔 시대를 열었다. (월드컵이냐? 여기서도 4년 살 거냐?).

경동의 오피스텔은 신축건물은 아닌 오래된 오피스텔이지만 풀옵션 원룸이다. 짐들을 다 들여놓고 보니,

세상에! 이건 완전 호텔이다. 호텔!



아이들의 성화도 성화였지만, 이번에 이사를 감행한 결정의 마음에는 이런 부분도 있다.

바로 매듭의 시간이겠다.

요즘 들어서, 개인적으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또한 어엿한 작가가 되려는 환골탈태의 여러 과정 속에 있다.

참고 글 : 솔개 김선생의 글쓰기 https://brunch.co.kr/@khskorea/79


자의는 아니지만, 머리털도 뽑고 (탈모) / 치아도 뽑고 (임플란트) / 발바닥도 다지고 (쑥마늘 클럽, 걷기) /

체중감량(금요일~월요일 사이에 4KG 자동 빠짐. 이사하랴 치아 뽑느라 힘들어서) 등등의 야심차고 의욕적인 환골탈태 활동에 더해서 이참에 주거공간도 바꿔보자는 마음도 한몫했다.

여름에는 끈질긴 모기와의 사투가, 겨울에는 문틈으로 새어드는 칼바람과의 전쟁을 이제는 매듭짓고 공간의 환골탈태를 감행해보자는 의지의 일환이다. 글쓰기에 방해되거나 어려움을 주는 것들과의 이별과 매듭의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모두 함께 합체하여 이번 이사를 이끈다.




마침, 또 다른 매듭의 시간도 있다.

글쓰기 모임 라라크루 2기의 활동이 이번 주로 마무리가 된다. 주 2회 글쓰기를 함께해온지 어느덧 3개월이 훌쩍 지났다. 1기부터 따지면 어느새 6개월. 장장 반년의 시간 동안 나는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단언컨대 함께하는 힘이다. 고마운 글 벗님들 모두 모두 복 받으소서!

억지 만발, 맥락 무엇, 한심 처량한 문장과 어리숙한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일단 여기까지 꾸역꾸역

걸어온 것 자체에 쓰담 쓰담해본다.


이렇게 글을 쓰는 과정과 그 길은 내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좋다.

좌충우돌, 파란만장이지만 꾸준히 배워가고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여정이다.

이제 울고불고, 애면글면 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좋은 글쓰기 또는 매일매일 좋은 인간 되기에 실패해도

웃고 만다.

저기 멀리 희미하나마 탈출의 불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지하 터널의 끝이 보이고, 저기 멀리 지상의 세상이 어릿하게 아른거린다.

이 기나긴 환골탈태의 시간이 탄탄한 매듭의 시간을 거쳐내면서

언젠가 나는 나의 보금자리로 가게 되리라 믿는다.

그 보금자리는 글쓰기의 집이다.

나만의 꽃을 피울 새로운 둥지이다.

변화와 믿음 그리고 그 반복되는 꾸준한 매듭의 시간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 것이다.


자우림 김윤아가 부릅니다. Going Home.

https://www.youtube.com/watch?v=gR4_uoJdOr0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 주기를 ~ (좋은 음악 추천해주신 @JA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한줄 요약 : 매듭은 성장을 위한 시간이고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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