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 김선생의 글쓰기

밥먹듯이 쓰자.

by 김호섭

호흡은 붕붕 뜨거나 철퍼덕 가라앉고

생체리듬은 잔잔에서 들쭉날쭉 뾰족뾰족으로 흐르며

실실 웃다가도 어라? 훌쩍 울기도 하고

둔하디 둔한 미련 곰탱이는 어느새 예민 보스가 되어있다.


소화는 도대체 언제 되는지 모르겠고

조금만 뛰어도 다리는 후덜덜

충혈된 눈은 새빨간 토끼의 눈을 닮아간다.

넉넉하던 머릿결은 어느새 탈모인이 되어있다.


입안은 다 헐고, 혓바닥에는 바늘이 촘촘하니

그 바늘로 헌 입안을 꿰매 보려는 수작인가.

탄탄(?)했던 복근은 죄다 어디 가고 D-Line이 웬 말이냐.

정신은 늘 몽롱하니, 어느새 정처 없는 방랑자가 되어있다.


요즘,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영 엉망이다.

거울 너머의 내 정신은 영 진창이다.




4개월마다 인하대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는다. 5년 전 얻은 병 때문이다.

나박사 : (아야의 외관을 위아래로 Scan부터 한다.) 안녕하셨어요? 잘 지내셨구요?

김아야 : 네. 박사님.

나박사 : 그런 것 같지 않은데요? 얼굴도 푸석푸석하니 폭삭 늙어 보이고, 배도 많이 나오고...

아니 눈은 왜 이리 빨개졌으며 머리카락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 4개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다시 아파요?

김아야 : (박사가 아니고 귀신이다...) 네. 제가 여름 내내 잔병치레를 하느라. 그나저나 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나박사 : 대부분 괜찮긴 한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좀 높은데요?

김아야 : 요즘 야식을 좀 먹어대면서 글을 썼더니...

나박사 : 글이요? 작가세요? 회사 다닌다면서요. 무슨 글?

김아야 : 브런치에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박사 : 브런치가 뭐죠? 회사는 짤렸어요? 그런데, 글을 무슨 몸으로 쓰나요?

김아야 : 네. 저는 글을 몸으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렇다. 박사님도 귀신님도 모르는 게 있구나. 브런치는 그저 아침과 점심을 퉁쳐서 한 번에 먹는 식사를 의미함으로만 알고 있겠지. 아무리 박사든 귀신이 든 간에 세상의 최신 트렌드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쯧쯧.

아야는 나박사에게 브런치를 설명한다.

김아야 :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인데요...(중략)...

자신도 잘 모르니, 자신의 말과 글을 중략시켜버리는 신박한 중략 신공을 펼친다.




박사님이자 귀신님인 그에게 한바탕 야단 한 사발 처방받고 병원을 나서며, 아야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아니. 글쓰기라는 행위를 하면 고민하느라 살도 쪽쪽 빠지고 정신은 또렷 명료해지며 사람 자체에 환한 빛이 난다더니 이 모든 게 다 새빨간 거짓말인 건가? 브런치와 글쓰기 모임 라라크루 @수호 대장님께 강력히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되는 건가? 아서라. 인간아. 고마운 글쓰기 시스템과 동쪽에서 온 귀인에게 그래서야 되겠는가. 늘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던 나쁜 습관은 이제 그만.


내 안을 들여다보자. 자아반성의 시간이다.

이러한 여러 증상의 원인은 에너지의 급격한 이동에 따른 현상들이다. 여기서 저기로. 위치가 이동되었으나 너무 급격하다.

단시간의 이동에 고통 또는 아픔과 혼란이 따라오는 건 당연지사다. 급가속, 급발진, 급체...급변. 대부분이 안에서 밖으로의 에너지 이동인데 문제는 너무 급한 탓 이리라.

급함이 문제였다.


그렇겠지. 아야는 지금 변화와 진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거겠지.

변화는 몸과 마음이 새로움에 적응하려는 변신이고,

진화는 별생각 없던 동네 아저씨에서 어엿한 작가로 환골탈태하는 과정. 그것이리라.


환골탈태!


아야의 시선은 인천 월미도 앞바다를 지나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으로 넘어간다. 휘리릭.




중국계 유통회사 한국지사에서 일하던 때이다.

애초에, 이 회사에 합류한 계기는 ERP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개선 및 재구축 프로젝트 수행이었는데,

일하던 과정 중에 중국본사 경영기획실을 맡아 달라는 회장님의 간곡한 제의가 있어서 고사를 거듭하다 결국 중국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인생은 예정과 계획 없이 흐르기도 한다.)

ERP 도 문제지만 성장동력이 떨어진 회사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 포인트 도출이 회장님의 요구사항이다.


졸지에 그룹 총괄 경영기획실장이 되어 회사 전반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반도체, IT 엔지니어

출신인 아야는 기획업무 경험이 없다만, 수십 년의 회사생활 짬력을 믿고 업무에 돌입한다.

한때는 천여 곳의 고객사를 담당하던 빡센 경험의 시절이 있던 터라, 기업평가에 오로지 눈치 9단으로만 대충 썰을 풀 정도는 되었으니 실력은 딱 고정도이다. 야매다.


중국본사, 현지 지방 지사 몇 군데 돌아보니 며칠 만에 일차적인 문제 파악과 답이 나온다. 축 쳐진 무기력에 김 빠진 조직문화. 회사에 생기가 없다. 직원들 눈빛만 봐도 감이 온다. 이 외 몇 가지 사항 추가 정리해서 한달 후쯤 종합보고를 올렸더니. 회장은 대뜸, 본사 전 직원 대상으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교육을

하란다. 일명 정신교육이다. 일이 커졌다. 아무튼 뚝딱뚝딱.(ppt는 뚝딱뚝딱이 제맛이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직원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 도입한 내용은 "솔개의 환골탈태" 이야기다.

널리 알려진 얘기이지만, 간략히 정리하자면 이런 이야기이다.

솔개는 비교적 장수하는(70년 정도) 새인데, 40살쯤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지금까지 살던 대로 그대로 살던가, 환골탈태를 하던가. 둘 중 하나다. 그냥 예전 그대로의 삶을 택하면 오래가지 않아
저세상 솔개가 된다. 먹이를 잡기에 너무 노쇠하니... 그러니 대부분의 솔개들은 고통스러운 환골탈태를 선택한다. 부리를 바위에 쪼아 헌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새부리가 자라면 새부리로 손발톱 (아니, 손은 없으니 발톱만 이겠지)을 모두 뽑아 새(손) 발톱이 나고, 낡은 깃털도 다 뽑아 완전 새깃털로 재무장한다는 것이 솔개 환골탈태의 과정이다. 그리되면 약 30년을 더 생생하게 살아나간다는 이야기.


솔개 이야기의 교훈처럼, 회사도 조직도 개인도 생존을 위해서 고통스럽지만 치열하고도 뼈를 깎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100여 명 가까운 직원 교육을 실시하였다. (실제로 뼈를 깍지는 않으니 그리 무서워할 일은 아니다.)

그날 교육 이후로 조직문화 개선은 이루어졌는가? 그럴 리 없다. 야매 강사가 파는 약이 효과가 있을 리가.


그런데, 이 인간들이 솔개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었는지

아야가 걸어가면 "저기 솔개 김선생 지나간다."

아야가 뭘 먹으면 "저기 솔개 김선생 밥 먹는다."

아야가 술 먹으면 "저기 술 먹는 솔개 김선생이 10분 안에 꽐라 된다에 10위안 건다." 이런다.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어쨌거나 솔개 김선생이란 별명은 이렇게 탄생된다.

어딜 가나 별명이 생긴다. 이것 참 묘한 일이다.




현재 시점에 떠오른, 환골탈태 솔개 이야기에서 아야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솔개가 환골탈태에 걸리는 시간은 반년~일 년 정도. 이러한 소요기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아야의 변신에도 일정기간의 시간 또는 꽤 오랫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한 일.

그 숙성의 시간을 무시하고, 섣부르고 설익은 발톱과 부리로 거장 작가 코스프레하려니 당연히 탈이 날수밖에.

네가 김훈 선생이냐? 몸으로 밀며 쓴다느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네가 솔개 선생이냐? 정작 본인은 환골탈태의 마무리를 차분히 기다리지도 않고... 그저 급하기만 한 인간아.


언제나 어떤 일이든 무리가 오면 그 언저리에 흐르는 건 욕심이다. 과도한 욕심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나이가 제법 들었으면 생각도 제법 차분해야 할 텐데, 어떤 일이 시작되면 급작스레 과몰입에 빠져 허덕이는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질 않는다. 어쩌겠나.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걸. 잘 타이르며 데리고 살 수밖에.

그래도, 지금이라도 오류와 시행착오를 알아차렸으니 제법 기특하긴 하다. 이를 디딤돌 삼아 다시 한걸음 나서면 될 일이니까. 이럴 때는 역시, 다시 기본으로 가야겠지?

Back to the Basic.


호흡부터 가라앉힌다.

들숨날숨에 집중한다.

들숨엔 코로 폐와 배에 공기를 input 하고 날숨엔 입으로 폐와 배를 쥐어짜서 공기를 output 한다.

복식호흡이다. 들어오는 건 우주고, 나가는 건 욕심이다.

우선은 내 호흡과 속도를 되찾아야 하고, 글쓰기라는 일련의 모듈이 하루라는 시간 속의 시스템에 어디에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적절한지 그것을 재배치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다시 시도한다.


바라건대, 나의 글쓰기라는 마음과 행위가

인간이 삼시세끼 밥 짓고 밥 먹는 마음과 행위처럼 필수적이면서도 편안한 일상적 행위이자,

한편으론

환골탈태한 솔개가 노련하게 먹잇감을 잡아채는 유연하고도 다이내믹한 실존적 행위이기를 소망해본다.


언젠가 환골탈태의 그날도 올 터이니

급을 버리고, 그저 나와 글이 자연스러운 때에 만나 생생하게 쓰면 될 일이다.

조급함은 버리고, (매의 눈, 아니) 솔개의 눈으로 일상의 글감을 낚아채고 밥 먹듯이 써보자.

좋아하는 일 오래 하려면 나에 맞는 호흡으로, 나름대로 최적화된 방법론이 필요하니까.


솔개의 헌 깃털 to the 새깃털처럼,

빠져버린 나의 낡은 머리카락도, 새로 검고 굵게 돋아나 풍성해지는 날도 와줬으면 좋으련만....

이것도 욕심이겠다. 이건 호흡 조절로도 어렵겠다. 김훈 선생도 이건 답이 없겠다. 그냥 받아들이고 살자.

머리카락으로 글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예민 보스는 까칠 까탈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관찰자로서의 예민으로.

정처 없는 방랑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탈모인은... 그래. 이발과 염색에서 해방된 탈모인으로서. 그렇게 나의 환골탈태를 규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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