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없는 시간은 과연 존재할까?
그랬으면 참 좋으련만, 아픔이라는 녀석은 줄기차게도 나의 뒷다리를 붙잡고 엉겨붙는다. 마치 그림자처럼.
갈길이 먼데 자꾸 이러면 어쩌자는 것이냐.
빗길에 넘어졌다. 대차게.
횡단보도.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오려는 찰나.
비스듬히 경사진 경계석을 밟고 미끌하는 그 찰나.
우산도 날고,
아야도 난다.
미끄러지며 날아오른 순간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영원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다가 갑자기 툭 암전. 필름이 멈추는 영화처럼 다가왔다.
(넷플렉스 시절에 이게 무슨 쌍팔년도 동시 상영 같은 소리냐.)
아야는 엎어졌고 팔다리는 제멋대로 꼬여 마디마디 아스팔트와 콕콕 맞닿아 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경우에, 우선 다가오는 건 쪽팔림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넘어지고 엎어지고 깨져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화 되었으니까. 그때마다 5G 초고속 광대역으로 쪽팔렸으니까.
사람들이 쳐다보며 실실 웃거나 끌끌거리며 지나간다. 그냥 지나가던지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던지 하면
좋으련만... '뭘 보냐. 인간들아. 넘어진 놈 처음 보냐'
늘 빨개진 얼굴부터 가려왔다.
쪽팔림 한 스푼과 괜한 화딱지 큰 사발이 얼큰 빨갛게 버무려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번엔 쪽팔림보다 더 먼저 오는 게 있다. 통이다. 아프다. 대차게 아프다. 쓰림이다.
아리니 아리아리 쓰리니 쓰리쓰리 아리쓰리 아라리요다.
그렇다고 어느 뼈마디가 부러지거나 파손되거나 어긋나거나 그런 정도는 아닌듯하다고 직감은 말해준다.
어느 뼈마디가 문제가 생길 때의 느낌은 이렇다. 숨을 못 쉬며 딱 한마디만 한다. '헉!'
그 헉 상황은 아니니 다소 안심하며, 아야는 얼굴도 안 가리고 그냥 잠시 멍하니 엎어져있다.
고개를 갸웃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드디어 나도 이제 나를 보게 되었구나. 남들 의식하지 않고 아픈 나를 제대로 보는 그런 멋진 녀석이
되었구나.'
멋지긴 젠장. 멋 부리는 글 쓰지 말라고 그렇게도 말했거늘... 어디서 글쓰기 초보가 자꾸 멋 내려는 수작이냐.
어쨌거나. 아프냐? 나도 아프다.
천천히 마디마디를 수습하고 달래며 몸을 일으켜본다.
무릎과 발목, 발등, 또한 허리가 묵직하다.
인도로 다시 어서 올라서야 하는데 그러기가 힘들다.
기어갈까? 그러기엔 무릎이 너무 쓰리다. 아이고. 이 허술한 몸뚱아리여.
정신을 차리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인내심 없는 차들이 빵빵거리고, 아야는 휘청이는데 건너편에서
인류애 넘쳐 보이는 30대 청년이 다가와 어깨를 빌려주며 인도로 이끈다.
"괜찮으세요? 심하게 넘어지시던데 앰뷸런스 부를까요? 택시라도 부를까요?"
(착한 청년이시여. 그대에게 만복 있으라.)
"나는 괜찮으니 저 우산 좀 집어다 주겠소?" 차도에 나뒹구는 우산을 가리키며 부탁한다.
다소 낡긴 했지만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물건이다. 몇 년 전, 딸이 반지하 셋방에 홀로 어렵사리 살다 좀 넓은
데로 이사 갈 때, 버리고 간다는 딸에게 굳이 달라해서 가져온 우산이다. 그 고난의 시절을 똑똑히 복기하고
부족한 아빠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마음과 행동의 징표로 삼고자하는 의미 가득한 물건이다.
잃어버리면 안 된다. 아직 갈길이 머니까.
청년에게 감사를 표하고 삐걱삐걱 얼그럭덜그럭 걷다가 우산을 쥔 오른손에 무언가 은빛으로 반짝이는게 보인다.
손가락 보호대. 이렇게 생겼다.
며칠 전 출근길에 자차 펑크로 급하게 택시를 타다
문에 찧여 팅팅부어 오른 손가락. 그걸 보호하는 보호대이다. 이 난리통에도 이건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손에 착 붙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이제 온몸이 다 쑤시니 이걸로 온몸 보호대를 만들어 감싸면 레이저도 뿅뿅 쏘고 하늘도 쌩쌩 날라다니는 한국판 아이언맨이 될법하다.
그 모습은 정녕 신기 만발,
멋짐 폭발 일 것이다. (또또 또 멋을...)
손가락부터 발가락 끝까지 웅---웅---거리는 아픔이 분당 120회. 심장처럼 고동친다.
다시 삐걱거리며 아야의 전두엽은 생각한다.
'도대체 왜 자꾸 아플까? 왜 자꾸 이런 일들이 끊이질 않는가?
소화는 아주 불량 청소년스럽고, 임플란트 중인 치아는 마무리를 아직 못 씌워 허허로우며,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연일 켁켁 콜록이며, 몸살에 치를 떨다가 이젠 급기야 한국판 아이언맨이라니...
이 모든 게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한 달. 그렇구나, 이사 온 이후로 줄곧...'
그러자 동네가 대답한다.
"인간아. 이제사 깨우쳤느냐? 둔하긴 하다만 그래도 이만하면 아직 제정신인 듯싶구나.
이사 온 이후로, 너 나에게 한 번이라도 살갑게 대한적 있어? 허구한 날 전에 살던 길 건너 동네 가서 놀고,
마시고, 산책하고, 그 동네 포차/카페 사장님들, 이웃들하고만 인사 나누고...
난 도대체 너에게 어떤 의미인 거니?
너. 여기로 왜 이사온 거니?"
이어서 방구석도 나선다.
"인간아. 서운함으로 치면 내가 먼저다. 연말 회사일 바쁘다는 핑계로 맨날 퇴근 늦고, 월드컵에 폭 빠져
언제나 나는 뒷전이었어. 솔직히 말해서, 너 요즘엔 책상머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러지도
않더라. 도대체 요즘 너. 정신을 어따 놓고 다니는거니?
네가 좋아라 하는 햇살도 부족하나마 힘껏 보내줘도 넌 시선 한번 안 주고 말이야."
그랬다.
그저 익숙한 공간과 이웃에 몸과 마음이 가 있으니,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완전한 내가 아닐지니.
정신은 흩어지고 마음은 어지럽고 호흡은 불안하다.
새로움을 받기보다는 익숙함에 젖어 있던 한 달.
몸 따로 마음 따로
그러니 그 시간은 정상이 아니다. 아플 수밖에.
그렇구나.
동네가, 방구석이 말을 한다. 자기들 좀 봐 달라고.
몸과 마음이 따로가 아니듯
공간도 인간의 한 부분이라고 외친다.
애정을 쏟을 일이구나.
인생사. 아픔이 없는 시간은 없으려니,
치료와 치유가 있는 공간이 함께 할 것이다.
5년 전의 뇌졸중은 그 동네가 치료해 주었으니
앞으로의 아픔은 이 동네가 치유해 줄 것이다.
오렌지빛 가득한 그 동네 햇살만 좋아라 할게 아니라,
창문 틈에 겨우 걸리는, 부족한 턱걸이 햇살이지만
애써 거두고 보듬고 맞이해야 한다.
이 햇살도 분명 나에게 온 햇살이니까.
책상머리에 좀 자주 앉아 읽고 제발 좀 쓰자. 손가락 아프다고 안 쓰는 건 핑계다.
우리에겐 회심의 필살기, 독수리 타법이 있지 않은가.
주말엔 이 동네 마실도 다니고, 어느 언덕이 가파르고 경사진 둔턱은 어디인지 살펴보고, 식당도 카페도 기웃거리며 이웃들에게 살갑게 인사도 해보자.
동네에게 말을 걸어보자. 방구석에 애정을 쏟아보자.
동네가 답을 해오리라. 방구석이 좋아라 하리라.
동네가 치유하리라. 방구석이 평안을 주리라.
이 공간에 우산같은 사랑을 더하자.
이 아픈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