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쓴 글.
1월 초에 심하게 넘어진 이후로, 관절은 삐걱거리고 전두엽은 덜그럭거린다. 가뜩이나 허술한 몸과 마음인데 어쩌자고 자꾸 이러는가. 아직은 세상에서 퇴장해야 할 때가 아니라고 수도 없이 다짐하지만, 무심한 관절과 전두엽은 아랑곳없이 자꾸 딴청만 부린다.
쥐꼬리 월급이지만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바이어들을 상대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나, 되지도 않는 맥락과 수줍은 필력으로 꾸역꾸역 문장 공부에 학교 공부에 글쓰기 모임에 우당탕탕 일상이 허당인 나. 찬란한 이 봄에 이도저도 원활치 않고 삐걱거리는 내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운동화 끈 고쳐 매고 새벽 산책길에 오른다. 아직은 걸을 수 있는 팔다리가 있고, 아직은 쓸 수 있는 손가락이 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 영차영차 함께 응원하고 같이 쓰는 글 벗님들이 곁에 계시니 고마워야 할 일이다.
출근길에 전화가 왔다. 늘 골골거리는 나에게 팔순 중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너. 공부 좀 그만해라.
역시 지혜의 여신이시다. 오늘은 퇴근하고 대나무 통 맑은 이슬로 한잔하면서, 울고 있는 관절과 전두엽을 달래 보련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어제 쓴 글.
점심 먹고 낮잠을 너무 많이 잤더니, 이 늦은 밤에 정신은 또렷 눈빛은 초롱이다. 이를 어쩌냐. 내일의 루틴과 시차적응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이 한 줄의 문장을 보니 제법 작가스러운 리추얼을 세팅하고 사는 듯한 뻔뻔함이 느껴진다)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잠이 많아진 이유를 추적해 보니 그럴 법도 하겠다는 나름의 결론에 이른다. 1년여간 브런치에 써 온 글들을 모아 모아서 퇴고라는 걸 두세 달에 걸쳐하였고, 며칠 전에 출판사 몇 군데에 투고하였다. (이 한 줄의 문장을 다시 보니 자기가 무슨 에세이계의 거장인가? 무심하면서도 건조한 듯, 별일 아니라는 듯 쿨한 척도 엿보인다. 기력이 쇠진해져 털썩 쓰러진 주제에)
투고 메일이 전송되는 짧은 순간의 화면을 낚아채어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이 한 줄의 문장을 다시 보니 무슨 역사의 한 장면을 남겨놓으려는 듯, 허세마저 가득하다.)
제발 정신머리 좀 붙들어 매자. 어지럽지 않은가.
오늘 쓴 글은 내가 쓰고도 이게 무슨 말인지 고개가 삐걱거린다.
오늘 쓰는 글.
맞다. 사흘에 걸쳐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삐걱"이다.
황유나 작가는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삐걱삐걱 이가 맞지 않아 가운데가 꺼져버린 회사 바닥이지만 그래도 발이 빠지는 일은 없다. 디딜 수 있는 마루가 있어 안심했다."
몸도 마음도 신통치 않고, 지칠 대로 지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객관적 자아관찰이라기보다는 유체이탈의 시선에 가깝다. 안쓰럽다. 출판사로 날아간 나의 글도 하염없이 바라보니 가련 타. 아픈 아이 시집장가보내는 부모의 마음에 감히 비유해 보기도 한다. 퇴고는 천리행군이다라며 당당히 은유해 보기도 한다.
급기야,
퇴고의 과정을 같은 세월 속에 함께하신 글벗님의 글에 이런 댓글을 남긴다.
"최선은 우리의 권리이고 눈물은 성장의 매듭이며 결과는 신의 뜻이다." 하여튼 과묵주제에 청산유수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너. 허당.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자신의 목에서 자신을 향해 튀어나오지만 애써 외면한다. 어찌하리오. 이미 쏜 화살이고 발을 떠난 중거리 슛이다. 그저 어느 출판업자께서 불현듯 관심을 갖고 내 글을 쳐다볼 우연과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사실 따지고 보면, 1년 전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이 기적이지 말이다. 쓰는 과정에 진심을 다했고, 글 벗님들과 하얀 밤을 걷고, 기나긴 겨울 새벽을 울고 웃으며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으니 투고라는 행운을 마주한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기적이겠다. 출간이라는 욕망이 쓰는 즐거움을 넘어서 3.8선을 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수개월간 몸소 체험했으니 이제 초심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느덧 4월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 온 지 엊그제인데 이렇게 속절없이 가려한다.
4월이 아니, 용기로 시작하고 끈기로 써온 1년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아프고 괴로웠지만 즐겁고 근사했노"라고.
"삐걱거리는 자판과 헤매는 일상이지만 넘어지는 한이 있어도 무너지진 않는다"라고.
글쓰기가 누군가 쥐어짜는 고통이 아니라, 내 삶의 즐겁고 재미난 안심구역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