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만 하고 주저만 앉아있다가 문득 떠오른 법칙이 있습니다.
관성의 법칙.
신경질 나게 좋아하는 일
너무도 좋은데 잘하고 싶은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일
쓰는 일.
그럼에도 몸이 앞으로 기울고 마음이 가까이 다가섭니다.
새벽에서 다시 밤으로 잠 못 이뤄 합니다.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니 누가 알까요.
나도 모른다는 건 거짓이겠죠.
자기가 좋아서 이러는 일
재미나서 어쩔 줄 모르는 일
쓰는 일.
다리가 걷는 건 인간의 본능 이라하듯이
새벽을 걷자고 길 위에 선지 어느새 6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두다리는 서툰 잠결에도 아련한 꿈결에도
산책길로 소년을 이끕니다.
마음이 걷는 길도
굽이굽이 눈물 젖도록 써내려가는
정화로 가는 본능.
걸을수록 깊어지려니
쓸수록 맑아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그 발걸음으로 어느 훗날, 소년의 여정이 근사한 작품이 될수있도록
이끌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달리는 자의 러너스 하이처럼
걷는 자의 워커스 하이도 있겠죠.
쓰는 자에게는 라이터스 하이인가요?
가튼 숨이 탁 트이는 순간.
더 긴 길로 깊이 오래도록 나아가는 추동력의 순간
계속 뛰고 걷고 쓰는 힘만이 얻는다는 희열
관성의 힘이겠습니다.
물리가 때론 쓸 만한 구석도 있군요.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더니.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오늘도 관성의 힘으로 걷거나 쓰렵니다.
의지와 습관을 넘어
본능처럼 마음이 당기는 일
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
꾸준히 밥 먹듯이
쓰는 일.
누구에게나 그런 어떤 일이 있을 겁니다. 너무 좋은데 버겁게 느껴지는 일. 너무 멀리 보면 안 난다는 엄두. 엄두는 넣어두고, 잘게 나눠 가까운 지점에 매듭돌 하나씩 놓고 걸어보면 어떨까요. 작은 매듭의 힘이 큰 대나무가 되어 숲이 되듯이.
* [길 위의 문장]을 인스타에서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고, 어느새 100개의 글을 쓰고 올렸습니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아무리 봐도 어설픈 글, 맥락 없는 문장이지만 새벽마다 눈 밝혀 써 온 이유는
문장을 통해 마음을 모으고 관성의 힘을 느껴보려 했던 소년의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한여름 뜨겁게 달궈진 방문을 열어봅니다. 새벽을 거닐고 문장을 노닐러 나가보려구요.
저같이 허술한 사람의 서툰 문장도, 계속 읽다 보니 정겹거나 웃기거나 어쩌다 쓸모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겠습니다.
함께 걸어 주실 거죠?
한줄요약 : 관성의 힘으로 걷다보고 쓰다보면 만납니다. 작더라도 단단한 매듭의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