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고 사진 파일을 뒤져보니 딱 한 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북경과 천진 사이 어느 작은 마을,
아담한 공원.
약 십 년 전에 사업차, 중국에 건너갔던 소년은 새벽 산책길에서 이 장면을 담는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 통역관을 닦달하여 노인께 여쭤본다.
"할아버지, 뭐 하세요? 금세 지워질 글자를 뭐 하러, 왜, 여기에 쓰시는 거죠?"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어제 배우거나, 생각난 문장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나를 세상에 표현하려는 거요. 자유롭게..."
"그러시면 책을 쓰시거나 공책에 적으시면 되지 않나요? 바닥에 물로 쓰면 금세 말라 지워지잖아요." 다시 여쭤보니 "세상이 책이지요." 이러신다.
이 말씀에 심쿵했지만, 그때의 내가 집중했던 단어는 [자유]였다.
엄혹한 사회주의 통제 국가에서 노인은 어쩌면 현명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잠깐의 생각을 했지만, 십 년 후, 문득 이 장면이 떠오른 걸 보니 무척 인상 깊은 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길 위의 문장들> 브런치 매거진 제목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지금의 내가, 다시 그때의 말씀을 들여다보니 [표현]이 보인다.
쓰는 자가 되어서야 알게 되고, 보이는 게 있다. (아주 이따금이지만)
자기표현. 왜 하는가? 왜 쓰고 그리는가? 이게 왜 하고 싶은가? 우리는 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 울고 웃는가. 저마다의 도구를 활용해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일. 어쩌면 유한한 생에 영원을 바라며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픈 인류의 애잔함이란 측면과,
"왜 사냐 건 웃지요"처럼 숨 쉬듯 당연한 존재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 작가는 소년이 다니는 학교의 교수님이기도 하다. 이런 말씀을 하신다. "자기표현의 예술은 자기를 고백하여 정화에 이르고, 독자와 또는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새로 진화된 우리를 선언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제안하는 일이다. 이렇게 나아가는 과정의 출발이 바로 자기표현이다. 이제는 문학과 예술의 틀, 작가의 정의도 변하고 있다. 출간 작가나 신춘문예 등단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어디엔가 부단하고 부지런히 표현하는 자를
작가라 정의함이 마땅하다."
소실점 아저씨의 눈이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며 소년에게 말한다.
"그래, 이제 어디 가서 자기소개할 때 당당히 말하자꾸나. 이렇게."
저는 작가입니다. 새벽을 거닐고 문장을 노니는 문학 소년입니다.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는 귀여운 INFJ입니다
문장이 딱 떨어진다.
전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흡족하다.
(※ 글벗님들~ 그간 긴 글 읽어 주셔서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끊어가기 신공에 급 마무리 공력으로 우당탕탕 써보았으나, 필력이 딸려 <자기소개와 자기표현>은 부득이 여기서 매듭지으려 합니다.
그림 그리면서 관찰되는 재미난 이야기는 다시 중간중간 펼쳐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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