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리릭.
하루에 세 곳으로 공간이동 한다. 물론,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의 시공간으로 가거나, 잘 못내려 안드로메다에서 헤매거나, 무협지의 고수처럼 축지법으로 산중에서 강호로 순간이동을 하는 건 아니다.
방구석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공원으로, 공원에서 방구석으로의 이동이다. 오롯이 두 발로 걷고 두 손을 앞뒤로 흔들며 공간 이동하고 무한 반복한다. 이 번거로운 이동에는 실물의 육체뿐 아니라, 자아와 영혼의 이동이 동시동작으로 함께 이루어진다. 각각의 시간과 공간에서, 맡아 책임지고 수행거나 감당해야할 역할에 따른 구분이고 기준이다. 공간과 역할이 뒤 섞이거나 따로 놀아, 참으로 오랫동안 고생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연스레 자리 잡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회사는 나에게 생활자로서의 공간이다. 34년 차 직장인 나부랭이다. (개인사업 5년 포함. 사업은 폭망함)
지긋지긋함을 넘어 무념무상의 최상급 레벨 단계에 이른 지 이미 오래다. 자아실현이나 경력개발의 터전으로서 회사라는 공간의 정의는 옛말이고, 요즘은 그저 최소한의 밥벌이 수단이다. 하루 중 제일 많은 시간이 투입되는 공간이다. 밥벌이 걱정 없이 전업 작가가 되어 이 공간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빠삐용은 환갑이 되어도 여전히 이 공간의 틀 안에서 맴맴 돌고 있다. 매미인가 다람쥐인가. 무엇이 되었든 오늘도 꿈꾼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드넓은 창공,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 문장의 바다로 풍덩 뛰어드는 자유의 그날을.
생각만 해도 나빌레라다.
회사에서 칼같이 퇴근하는 시간에 이동하는 곳은 집 근처 공원이다. 출근하기 전, 어둑한 새벽에도 공원으로 올라가니 하루에 2회, 만나는 정다운 공간이다. 계절불문, 날씨불문, 그날의 기분 불문이다.
이 공간에서의 역할은 사색자, 문장 수집가, 산책자 또는 어르신 에어로빅 댄스팀 막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공원이라는 숲의 공간은 사시사철 꾸준한 자연의 생명력으로, 일상에 지친 한 인간에게 아낌없는 위로와 꺾이지 않는 용기를 선사한다. 때로는 삶의 무거운 짐이나 고민을 공원내 최고령 어르신 나무님께 짐짝처럼 툭 걸어 놓고 내려오기도 하니, 공원은 고민 상담소 역할을 하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루 중 가장 넉넉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임에 틀림없다.
산책을 마치고 이동하는 공간은 방구석이다. 오래된 주택들, 더 오래된 어르신들이 오밀 조밀 모여 사는 인천 송월동 고지대. 자유공원 옆구리 동네. 초록 대문집 2층 방구석이다. 본격적인 휴식의 공간이지만, 쓰는 자, 작가로서의 공간이기도 하다. 안방과 주방 사이에 손바닥만큼 아담한 공간이 있다. 서재라고 저혼자 강력히 주장하는 공간이다. 맑은 청, 이를 예, 이야기 담. <청예담>. 제법 근사한 이름도 명명하고 A4 종이 반으로 잘라 간판도 걸었다. “맑은 이야기에 이르리." 흔들리고 흐리거나, 쓰리고 아픈 어느 마음들이 나의 문장이라는 장강을 지나 맑고 단아한 이야기에 이르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는 이름이다. 이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이야기도 구상한다. 모자란 배움을 위해, 올해 봄부터는 사이버 대학교도 다니면서 인터넷 강의도 듣는다. 이 모든 행위가 <청예담>에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멀거니 앉아서 멍때리거나 시도때도 없이 울고 웃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작가로서 또는 흔한 동네 아저씨로서, 혼자만의 공간에서 조그만 창문 밖. 세상으로 쏘아 올리는 '작은 공'안에는 한 모금의 눈물과 맥락없는 미소가 함께한다. 쓰는 자의 공간이라고 별반 다를게 없다.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 다반사가 그렇듯.
최애 공간인, 공원과 단짝을 이뤄야 하기에 올봄에 덜컥 이사를 와버렸다. 방구석에서 공원까지 걸어서 대충 2분 17초 거리. 완벽한 공세권이다. 공간 간의 이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취해진 지혜로운 조치다. 인천 최저가 월세방이라, 직전에 살던 오피스텔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도 탈피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마저 챙긴다. 제법 쏠쏠한 이 공간에서, 지나온 아픔을 눈물로 씻은 문장으로 고백하고 이제 나의 존재를 선언한다. 누군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물어오면, 이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저는 작가입니다. 출간 작가는 아니지만, 새벽을 거닐고 문장을 거니는 문학 소년입니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청예담>에서 어엿한 작가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한 모금의 정수, 한 뼘 더 깊은 한 문장으로 우리 사회에 따뜻한 제안을하는 게 꿈입니다.” 이렇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흐릿했던 몸과 마음을 맑게 해 준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회사라는 공간과 시간도 그냥 버려지거나 소모되는 손실만 있는 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어딜 가나 있다는 진상?아저씨들과도 치열한 말전쟁, 심리 싸움도 벌이지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결국은 인간과 관계의 본질, 보편적인 진리를 알아가는 현장이며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 이렇게 지친 일상의 공간도 사색과 창조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마음먹기 달렸다. 진작에 이런 기적의 논리를 알았더라면 맥없이 덧없이 흘러간 지난한 직장생활도 좀 평안했으려나?
아무튼. 사무실, 공원, 방구석. 사공방! 이 세 공간은 작거나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나에게는 각각의 우주다. 소실점 너머의 다른 세계, 우주 너머의 또 다른 우주. 이 세 우주를 매일매일 씩씩하거나 유유히 넘나들며 노닌다.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가나안의 땅. 만주 벌판의 드넓은 광야다. 팽창된 우주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니, 나는 몽고반점 유목민이다. 갈 곳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유랑자가 아니라 확실한 목표와 꿈을 꾸며 씩씩하게 걷는 자. 여기서 저기로, 요리로 조리로 거침없이 걷는다. 달린다. 쓴다. 그린다. 흐른다.
문장이라는 말을 타고. 이랴.
휘리릭.
“주어진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여기는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고 그렇죠? 당신이 손가락만 까딱해서 원하는 곳으로 간다고 해도 여전히 지금 같은 기분일걸요? 있고 싶은 다른 곳, 가고 싶은 곳만 너무 바라보면 지금 주어진 걸 누릴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걸로 걱정하지 말고 그냥 즐기세요. live a little.”
SF영화 <Passenger>에서 인공지능 바텐더가 우주미아가 된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유목민은 오늘도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즐겁게 흐른다.
live a li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