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을 보거나 생각해 보면 당장 떠오릅니다.
어머니와 동치미.
온 식구가 열 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살던 오래전에는, 요즘처럼 틀기만 하면 뜨끈해지는 전기, 온수, 가스보일러 같은 난방시설이 없었습니다.
우리 동네 인천 송림동에는, 배다리로 넘어가던 고갯마루에 궁전처럼 세워진 삼익아파트가 난방보일러 있는 유일한 아파트였고 대부분 서민들은 연탄으로 온돌을 데워가며 겨울을 나던 시절입니다.
그 70년대 어느 날.
갈라진 방바닥 틈새로 밤사이 새어 나온 연탄가스를 마시고 온 가족이 사경을 헤맬 때, 어머니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기어가 동치미를 한 바가지 떠왔고 기어이 아버지와 자식들을 모두 살려내셨습니다.
기억도 가뭇한 어린 시절의 일입니다. 물론, 의료적으로야 병원 치료 덕분에 살아났다 하더라도
그날 그 생사의 갈림길에서, 식구들이 살아난 가장 큰 덕분은 분명히 어머니와 동치미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 연탄을 함부로 발로 차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떠올라서요.
새해가 되면 팔십 중반을 넘기시는 우리 어머니. 몸집은 아가처럼 작아졌고 거동은 불편하시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하십니다. 새봄이 오면, 온 식구들 모여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 다녀오려 합니다.
지난 주말에 여행계획을 말씀드렸더니,
"그래. 그 예쁜 날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가자."
하십니다.
새해가 다가오니 이런저런 계획과 구상에 심경이 복잡하지만, [봄날의 여행] 만큼은 일찌감치 확정해 놓았습니다. 한 가지 더 있군요. 어머니 틀니도 새로 해 드리고, 저 연탄소곱창집 모시고 가서 주인장에게 동치미도 한 그릇 부탁해 보려 합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연탄보다 뜨겁고 가스보다 강합니다.
동치미보다 맑고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소서.
#인천 #동인천 #도담연탄소곱창 #연탄 #가스 #동치미 #어머니 #안도현시인 #너에게묻는다 #연탄재함부로차지마라 #걷기 #쓰기 #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