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고유명사다.

by 김호섭


내 이럴 줄 알았다. 미끌 엄마야 철퍼덕 어이쿠.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나 깜짝 놀라는 경우에는 무의식 속에서 엄마야를 찾는다. 계단을 겨우겨우 잘 올라왔건만, 눈과 살얼음에 야무지게 버무려진 빙판 바닥에 넘어졌다. 새벽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방구석을 바로 1미터 앞두고 벌어진 참사이다. 그나마 옆방 어머니께서 밤새 뿌려 놓은 굵은소금 덕분에 계단 밑으로 떼구루루 구르진 않았다.


소금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 이 와중에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제물포고교 (소년의 모교)의 교훈은 왜 떠오르는 걸까. 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다. 얼얼한 엉덩이를 일으키는데, 그때까지도 몰랐다. 초대형 참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손에 쥐고 있던 열쇠 지갑이 안 보인다. 방문, 대문, 자동차키를 매달고 각종 카드 넣어둔 손지갑인데 안 보인다. 아이고. 담장 너머 옆집으로 날아간 열쇠 지갑은 옆집 1층 바닥에서 "나 여기 있어"한다.

뛰어내리자니 깊고, 집 간의 간격은 삼십 센티도 안 돼 보이니 뛰어내린 들 다시 올라오기는 어렵겠다. 자칫하면 주거침입죄로 철컹철컹이다.


새벽 여섯 시 오십이 분. 가장 어둡다는 동트기 직전. 동네는 고요하고 골목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침착하자. 해법을 찾아보자.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해법과 경우의 수를 고려했으나 답이 없다.

역시 정면 돌파뿐. 옆집 초인종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대문을 두드린다. 톡톡톡. 계세요. 저기요. 통장님. 애절하게 불러본다. 개미 모기 기어가는 소리다. 당연히 없다. 아무런 응답이.

응답하라 통장님이여.


초인종은 고장이고, 모두가 잠든 이 신새벽에 큰소리를 내기도 그러니 소년은 계속 콕콕콕과 개미모기표 저기요만 연발한다. 한겨울에 진땀을 흘리는데 엉덩이는 시려온다. 째깍째깍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지각에 자비 없는 사장님이 떠오른다. 일단 택시 타고 이대로 출근부터 하자. 뛰어나가다가 급 브레이크를 건다. 아차차!


오늘은 어머니 치과 치료의 날. 못쓰게 된 치아 발치 하는 날. 오후에 잠깐 사무실 나와서 병원 모시고 가야 하니 차를 가져가야 한다. 그 사이 삼십 분이 흘렀다.


소년은 옆집 대문으로 탱크처럼 돌진한다. 쿵쾅쿵쾅. 철문은 휘어질 기세고 통장님, 어머님, 이봐요는 온 동네의 불을 밝힌다. 뭔 일이요. 싸움 났나. 온 동네 어머니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오신다.

그래도 응답이 없다. 옆집 통장님. 정말 너무너무 하십니다. 아무리 잠귀가 없으셔도 그렇지 말입니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눈물마저 나오려 한다.



소년은 자유공원 전설의 사자처럼 포효한다. 벌게진 주먹과 철문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에 드디어 문이 열리자, 자초지종 휘날리며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냅다 달린다. 열쇠 지갑아. 네가 이다지도 소중할 줄이야. 다시는 네 손을 놓지 않으마. 동네 사람들, 통장님, 옆방 어머니.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이 새벽의 대환장 난리부르스를 종료합니다. 어서 다시 주무세요.




이렇게... 조용조용하고 지나치게 말 없던 과묵소년도 포효하게 만든다.

사람들한테 주목받기 힘겨워하는 INFJ에게도 추호의 망설임이란 없다. 그럴 때가 있다.


엄마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되는 때.




#인천 #자유공원 #송월동 #미끌 #대참사 #새벽 #난리부르스 #엄마 #어머니 #송림동 #푸른하늘치과 #걷기 #쓰기 #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