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려운 게 있다. 자기 객관화.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주관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외부의 시각으로 마치 제삼자가 된 듯,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자로서, 편협된 사고나 감정의 늪에 너무 빠지지 않는가 자주 돌아보는 마인드 셋인데, 생각보다 어렵다. 세상 어렵다. 아직 자기 수양이 덜 된 탓이려나.
점심식사마저 거르고 달려간 긴 담 모퉁이 집. 작년 늦가을 어반스케치교실에서 그려본 그림을 드디어 전시한단다.
소박한 전시룸에 들어서는데, 낯익은 그림이 전면 키오스크에 둥둥 떠 있다. 오호호호. 근사하도다. 수많은 멋진 작품을 헤집고, 본능적으로 한 작품에 시선이 꽂힌다. 게다가 비주얼 센터 자리라니. 자기 객관화는 잠시 내려놓고 본인의 그림에 도취하여 한참을 바라본다. 한 장 종이 위에 가녀리고 어설펐던 그림이 액자 속에 담기고 키오스크에 디지털로 전환되니 오호라 제법 그럴싸하다. 한없이 올라간 입꼬리가 천정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른다.
감탄은 이제 그만, 입꼬리를 끌어내리고 내려놓았던 자기 객관화를 잡아 올린다. 전체적인 구도가 아쉽다. 색감도 좀 더 파스텔톤으로 처리했으면 좋았겠고, 하늘의 전깃줄이 너무 부각되어 균형을 깨뜨린다. 음영 처리며 원근감도 어정쩡하고 자동차는 너무 성의 없고... 객관적으로 보려니 아쉬움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신의 그림을 퇴고하다니.
제법 기특하긴 하다. 지나온 삶도 퇴고해 볼까. 그만하자.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 난다. 이제, 오늘을 살아내고, 지금을 퇴고할 뿐. 지난 과거, 먼 미래는 그때의 나에게 맡기자. 오점 없는 과거가, 완벽한 미래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조금씩 고쳐가며 걷고 쓰고 그리며 살아가면 될 일.
파도치던 마음이 잠잠해지자, 그림이 다시 보이며 새로운 마음이 올라온다. 자신의 그림을 보면, 그리던 시절의 기분이나 날씨, 생각이나 느낌까지 고스란히 되살아 난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칼같이 단정한 한옥 카페 모퉁이
단아한 쪽진 머리, 우리 할머니
할머니표 설탕 베이스 떡볶이
소실점이 보고 싶어 그리려 왔다는 소실점 아저씨
수업 시간 내내 꽁냥 거리던 사랑스러운 젊은 커플
흰머리 은은한 팔십 대 어르신
물 위에 이름 쓰듯 그리고 싶다던 젊은 처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만큼만 그리겠다던 여사님
한 말씀 한마디 차분하시던 선생님
공원 바닥에 물 찍어 붓글씨 쓰던 중국 할아버지
아담한 정원의 소나무, 너른 창으로 스미던 가을날의 햇살
골목길의 소실점,
점과 점을 잇던 부르르.
순식간에 몰려오는 파노라마는 시간의 질감이고 마음의 향기이며 어느 늦가을의 다채롭고 풍성한 장면이다.
이런 느낌이구나. 소년은 다시 웃는다. 처음의 입꼬리와는 다른 미소다. 즐거운가. 그렇다. 재미나는가. 물론이다. 행복한가. 슈어. 감사와 사랑할 수 있겠는가. 네. 해볼래. 해보자. 확신하는가. 오냐.
자. 이제 다음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작은 매듭을 짓고 확신이 섰으니. 자기 객관화와 자기 확신이라는 균형의 평형봉을 붙잡고 저 긴담 위를 재미나게 걸어보자.
긴담 지나 어느 모퉁이 돌면 좀 더 편안한 내가 보이겠지. 가벼운 여행길, 너른 광야가 나오겠지.
이제 길 위의 문장도 외롭지 않겠다.
그림이라는 친구를 만났으니.
- 글, 그림 : 문학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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