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섭 May 18. 2022

단무지의 효능

옐로우 카드의 필요성

가끔 누군가가, 양배추가 또는 마늘이 어디 어디에 좋다더라는 '음식 효능 카더라' 통신을 듣게 되면 검색창에서 000의 효능을 주저 없이 당장 조사해본다.

건강 염려증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몸과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나이가 되다 보니 요즘은 더 부쩍 이런 부분에 관심이 지대하다. 그럴만한 나이이겠다.

 



최근 알아본 것은 매실의 효능이다. 평소 소화력이 약해 국민소화제 '훼스탈'을 아주 입에 달고 사는 입장이다 보니 소화에 좋은 거라면 득달같이 알아보고 섭취할 방도를 찾아본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더라도 종국의, 그 대부분의 공급처는 역시 어머니이다.

시장통에서 마련한 해당 재료를 수급해서 수십 년 '생활의 노하우'와 '사랑과 정성'과 '어머니 손맛'을 버무려 항아리 분량으로 통째로 제조, 페트병으로 나누어서 소비자에게 공수된다.  

어마 무시하다. 10년은 더 섭취할만한 분량이다. 소비자는 1인. 유일무이한 그 소비자는 당연히 나다.  

내가 어머니 건강을 더 신경 써야 할 터이지만, 늘 그 마음의 무게 추는 언제나 기울어져 있다. 평생 내가 패하는 이 게임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근에 매실차를 약 3주 만에 총 쓰리 패트 보틀을 먹고 나니, 당연히 소화력은 확실히 좋아졌으나 한 가지 부작용이 따라온다. 당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 버린 거다.

매실차는 매실과 설탕 폭탄의 혼합물이니 당연한 결과 이겠으나, 뭔가에 꽂히면 [적당히/적절히]라는 컨트롤러가 고장 나버리는 나의 몰입적 성향도 한몫한 것이겠다.

단기간에 너무도 많은 양을 섭취하다 보니 회사 건강검진 때 '당 수치 높음'으로 결과표를 받아 들었고,  

급기야 보건소에서 대사증후군 관리가 필요한 인간으로 리스트에 등록되어 주기적으로 우편이 날아온다.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주의사항은 뭐고... 이런 안내문이다.

우편을 받을 때마다 무슨 요주의 인물이 된 양 어깨는 움츠러들고, 누가 볼세라 주변도 이리저리 살피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 소중한 매실을 끊었다.


빛과 그늘이 있듯이,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오해가 있다면 이해도 있는 법.

이득과 손실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이겠다.

매실을 끊은 현재는 당 수치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신박한 인체의 신비여.




이번에는 단무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의 경로당 지인께서 단무지를 두통이나 가져오셨다. 어찌 된 사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마트에서 파는 가정용 작은 포장 단위가 아니라 가로세로 약 30cm*30cm 크기로 식당용 대용량의 단무지가 집안에 떡하니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두통이나.

어머니와 사이좋게 한통씩 나눠 갖고는 또다시 어마 무시한 섭취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달이 일어난 건,  

또다시 '000의 효능' 검색 습관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단무지가 뭐 그리 대단한 효능이 있겠어? 중국집 가면 천지에 깔린 게 단무지이고 김밥집, 냉면집 등등 대한민국은 단무지 천국 아니던가?  귀한 거라면, 달라면 팍팍 퍼주는 그런 허투른 반찬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런 판단의 연장선에서 검색 전에 단무지의 효능에 대해 살짝궁 생각해 보았다.  

매운 음식(예를 들어 짬뽕)으로 얼얼해지고 알싸해진 혀를 살살 식혀주는 효능.

기름진 음식(예를 들어 짜장)으로 느끼해진 혀를 깔끔하게 닦아주는 효능. 정도의 효능이겠다 싶었다.


웬걸,

검색 결과, 단무지의 효능도 어마 무시했다. 세상에 허투루 볼 것은 없었고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맞았다.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연탄재가 인간에서 따스함을 선사하듯이, 단무지도 인간에게 건강한 효능을 선사하고 있다는 이 마당에  

(나는 과연 이 세상에 어떤 쓸모를 제공하고 있는가?  

김호섭의 효능은 과연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군가와 행복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삶의 위로가 되는 또는 삶의 모델이 되는 멘토였던가?  

지역사회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애써왔는가?  

인류공영을 위한 소소하게나마 쓸모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생각은 해보았는가?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너는 과연 쓸모 있는 인간인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난들 알겠느냐.)

가볍게 시작한 얘기가 또다시 진지로 간다.  

너무 진지로 흘러버리면 요즘 MZ세대들이 싫어한다니... 일단, 여기서 스톱!


단무지의 효능. Top 5만 추려봐도 대단하다. 면역강화, 혈압개선, 심장병 완화, 다양한 영양분,...... 소화개선!

역시나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소화개선'에 꽂힌 나는 점심식사(회사 제공)를 제외하고는 매 끼니마다 단무지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또다시 몰입의 시간이다. 이런 단(순)무지의 인간이여. 어쩔 것이냐. 축제의 시간을 즐겨라.


오늘 출근길에 거울을 보니, 얼굴이 노래 보인다.

냉장고 위에 놓아둔 참외가 단무지로 보인다.

퇴근해서 브런치 글을 적고 있는 키보드의 손가락도 또한 노오래 보인다.


[적당히]를 외치며, 엘로우 카드를 꺼내들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심판은 어디에 있는가. 이 봄에...    

매거진의 이전글 야쿠르트 아저씨는 왜 없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