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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May 24. 2022

자유공원 사람들

어르신 해병대인 줄 ~

온 세상이 봄 천지다.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막걸리 내기 장기판 삼매경에 빠져계시고,

젊은 아빠가 날리는 연 또는 모형비행기에 아이들은 콩 튀듯 팥 튀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애기 엄마는 유모차에 탄 아기 사진 찍느라 연신 분주하다.

젊디 젊은 커플은 사랑의 속삭임에 정신없고,

꾸준한 산책러들의 활기찬 발걸음 또한 가볍다.  


공원의 주말 풍경이다.

각자의 마음과 취향에 따라 개별적이지만 슬기로운 공원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과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변화하는 순간이 있다.

"국민체조 시작 ~ 헛들셋넷 둘둘셋넷..." 광장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공원 모두의 시선이 광장   무대로 집중된다.  



인천 자유공원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건강에어로빅팀이 있다. 1일 2회 (새벽, 저녁) 진행된다.

1년 365일, 본인 사망 외에는 회원 모두가 참여한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의 팀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구가 태풍에 날아가거나, 날아가던 지구가 폭염에 터진다 해도,

미세먼지가 아무리 치명적일지라도 개의치 않고 정시 정각에  어김없이 시작된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그 전통의 국민체조와 함께.

정열의 빨간 티를 함께 맞춰 입으신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어르신 해병대인 줄 ~    


공원 산책할 때마다, '저게 운동이 되겠어?'  

그저 가벼운 율동처럼 보이길래 별 관심 없이 지나치다가, 4년 전 어느 심심한 날 슬그머니 뒤편 구석에서 따라 해 봤는데 삼십 분도 못되어 헉헉대며 진땀을 뺐다.  만만하게 보았지만 운동량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부분의 음악이 뽕필 충만 트로트에 EDM을 얹거나,  

원래 리듬의 2 배속~ 4 배속의 빠른 템포로 변주한 음악이다 보니 팔다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말이 어르신 건강 에어로빅이지, 군대 시절 제일 힘들었던 사격 전 PRI 훈련 (피가 나고 알 이배 기고 이가 갈린다는 의미?)에 감히 견줄만하다. 어르신 해병대일 거라는 나의 첫 느낌이 맞았다.   

나의 동작은 어설프고 방향감각은 중구난방이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의 운동신경이여.


팀 회원은 대략 오십 명 정도 되는데, 60~70대 어머니들이 대부분이고 극소수의 아버지들로 구성되어있다. 거의 10년 이상 운동에 참여하신 베테랑들이시다.  

회장님은 80대 후반이신데 정말 정정하시다. 오래전에 작고하신 선친과 인천 고교 동창이시다. 내가 이 팀에 애정을 갖는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두 손 모아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2년 반 가까이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웠고 거의 활동이 중단되었다. IMF / 글로벌 금융위기 / 사드 / 메르스 / 이외 모든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 / 때에도 이 팀의 활동에 멈춤이란 없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장기간의 활동 중단은 그야말로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것이다.

진공의 시간과 적막한 공간의 터널을 뚫고,

최근, 코로나 방역지침이 완화되면서 드디어 건강 에어로빅 팀의 활동이 재개되었다.

고대하던 엔데믹이 일부 현실화된 것이다. (의료진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불어난 몸집을 덜어내고자 신나게 참여하고 있다.  

나는 2019년 여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였고 햇수로는 벌써 4년 차이다.  이 운동을 통해, 90kg에 육박하던 몸무게는 75kg 이 되었고, 180/120에 이르던 고혈압은 120/80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D-Line이었던 배퉁머리는 d-Line으로 제법 슬림해졌다.

내가 나를 봐도 잘록한 허리, 유연(?)하고 힙(?)해진 댄스 실력, 온갖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생각만 해도 고맙고도 즐거운 덤이다.




건강 개선에 획기적 도움을 받은 것도 즐거운 일이겠으나, 한 가지 더 즐거운 일이 있다.

회원이 아닌 일반 방문객들이 뒤편에서 한분 두 분 동작을 따라 하더니, 어느 순간 뒤돌아 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우리의 동작을 따라 하고 있던 것이다.

광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한마당이었고, 건강과 웃음의 한바탕 퍼포먼스 향연장이 되었다.

환호성 가득한 박수와 함께 운동을 마치고 나서야 생면부지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미소가 흘렀고 웃음이 넘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음악과 율동만으로 우리는 한순간 대동단결이 된 것이다.

역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K-POP의 민족, 흥의 민족, (음주)가무의 민족 아니던가.


이게 얼마만의 일상이란 말인가.  

코로나로 지친 모두가 그동안 고생 많았고 잘 버텨왔노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박수는  

치열했던 전투에서 승리한 전우에게 보내는 따듯한 격려와 응원이었다.

그런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던 어느 주말 오후는

행복했다.

내가 이 팀의 일원으로서,  잠시나마 많은 분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런 연결고리로서의 쓸모가 있었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역시 우리는 공동체다.  

어제는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지만...  

오늘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땅.  

내일을 함께 어깨 걸고 살아가야 할 이 땅.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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