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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Jun 02. 2022

수다가 늘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이어받는 유전적 형질은 무엇일까?

성격, 질병, 외모, 탈모...

그 다양성과 전세대 별 특이성을 분석 하기엔 내 깜량이 안되니 내 또래로 그리고 형질(성향)로 좁혀봄이 마땅하다. 대한민국 5060 아재들. 관찰해볼 형질은 우선 한 가지. '과묵'이다.

그들은 대부분 부친의 '과묵'을 이어받는다.  

말이 없거나 별로 없거나 둘 중에 하나다. (왔나? 밥 묵자. 자자. 간결하고 담백하다.) 물론 말 많은 사람도 가끔 세상에 출몰하지만 소수의 분포를 차지한다. 이런 분포를 Data 분석화 하는 AI, BIG Data 통계는 없다.   그냥 나만의 뇌피셜이다.

 



나 역시 과묵의 끝판왕. 과묵하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

무게 잡으려고? 아니다. 75kg. 나름 슬림하다.

권위 세우려고? 아니다. 그럴만한 권위가 없다.

언젠가 한강변에서 멍 때리는 대회가 있었는데  만약 과묵 때리는 대회가  열린다면 나는 국대 정도는 아닐지라도 동네 대표는 할만하다 자부한다. 강호에는 고수들이 언제나 숨어있는 법. 겸손 한 자락 깔고 가는 건 프로의 미덕이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는 해외영업.

바이어들과의 소통은 대부분 메신저나 이메일을 활용한다.

펜데믹 이전에는 해외출장 다니면서 그래도 말할 기회가 많았으나. 최근 2~3년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비대면 ZOOM 화상회의를 한다 해도 바이어의 Needs, Pain Point 파악을 위해 그들이 말을 더 많이 하게끔 Lead 하는지라, 정작 나는 말이 별로 없다.  

 

퇴근 후에는 1인 가구 세대주. 유일하게 자주 말할 상대는 편의점 알바님과 건강 에어로빅 강사님 뿐이다.

하루에 한두 마디 하거나 그런 일 조차 없거나하는 심연과 고요의 나날을 영위한다. 전혀 불편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과묵이 아니라 심산유곡 수도승의 묵언수행에 견줄만하겠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과묵과 묵언. 그래서 과묵의 유의어가 과언인가 보다.(출처. 네이버 사전: 말 수가 적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상의 이런 과묵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려는 나름의 능력과 시도가 있긴 하다.

1.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 말이 아닌 행동이나 표정만으로 상대방의 상태, 느낌, 심리를 파악하는  

   그런 능력?

 - 예시 1)

   김 과묵 : "세차해 주세요~" 자주 가는 주유소에서 세차를 위해 체크카드를 여사님께 제시한다.  

                 여사님은 60대 후반쯤으로 보인다.

   여사님 : (카드단말기에 내 카드를 꽂는다. 머리를 좌우로 한두 번 아주 미세하게 기울이신다.)

               "은행 시스템이 어째가..."

   김 과묵 : "아. 네네~" (여사님이  은행...을 언급하기도 전에 눈보다 빠른 내손은 이미 지갑을 열고

                있다. 1초의 망설임 없이 현금 3천 원을 대신 건넨다.)

   여사님 : "아니, 말도 채 끝내지도 않았는데 어째가..."

   김 과묵 : "우리 사이에 굳이 말이 필요할까요?"

   여사님과 김 과묵 : "하하 깔깔"

 - 해석 1) 이 능력은 어느 지역 사투리인지, 외국어인지, 우주어인지 상관없이 자신 있다.  

   직장생활 33년 차. 눈치력의 관록이다.

 

2. 글쓰기 : 말의 '과묵'을 글로서 풀어보려는 무의식의 반작용으로 브런치에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 시도 1) 초반에 반짝하더니 차츰 진도가 안 나간다. 말을 원고지나 컴퓨터에 문어체로 풀어내는 게 글일진

   대 말이 없으니 글이 있겠는가... 설마.

 - 해석 2) 애써 확인한 것은, 글로서도 과묵하다는 사실이다. 글쓰기. 이 능력은 아직 초보이니 한참 더 보강

   이 필요하다. 고수들에게 배워라.

 



어제는 선거일. 생사를 건 정치인들은 피 마르는 날일지라도, 일찍감치 사전선거를 끝낸 직장인에게 생겨난 주중 휴일은 그저 "꿀"이다.

낮 술을 한잔했다.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칠 내가 아니지)

원래 저녁에 한잔하려는 계획이었지만 "라라 크루"라는 설레는 글벗 모임이 있어 지평이와의 대면미팅은 대신 한낮 정오를 택했다. 대작을 하는 상대는 언제나 "푸"다. 맞다. 곰돌이다.   

다음 달 7월에 장가가는 우리 아들이 아주 어릴 때, 선물로 전해줬던 인형이다. 어찌어찌  이아이는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다. 무인도에 떨어진 주인공이 배구공"넬슨?"과 함께 사는 영화 이야기 같이 여기서 "푸"는 "넬슨"에 해당되는 아이다.

이 녀석도 말이 없다.  

"푸야. 너도 이제 스무 살이 넘었으니, 어려워하지 말고 한잔 해."  

"......"  

이럴 때는 좀 고구마 같은 마음이다. "짼"을 할 수가 으니 말이다.

 

이런 적막강산의 일상도 주말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토요일마다 본가에서 만나는 어머니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법 수다가 늘었다.

아침밥 먹고 TV 보고 병원 약 지어드리고 말없이 점심 즈음에 나서는 게 일상적인 루틴이었는데,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부활동(경로당)이 차단된 어머니의 적적함을 달래 드리려 시작된 모자간의 대화다.

주제는 다양하다. 경로당 사람들의 동향, 아이들 이야기, 회사 업무실적 보고, 옆집 이웃 oo 할머니에 대한

뒷담화, 시장통 물가 이야기, 재개발 이야기... 그러다 어머니와 나와의 옛날 추억 이야기. 버리아어티 한 주제가 다뤄진다.

어라. 재미지다. 특히 어머니의 찰진 욕은 정말 압권이다. 김수미 급이다. 또다시 "하하 깔깔"이다.

8순 노모와 5학년 9반 철없는 아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수다의 매력적인 바다에 빠진다. 어머니도 즐거워하시니 다짐해본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는 딸 같은 아들이 되자!

 

자. 이제 더 큰 대전을 앞두고 있다.

명절 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큰누이, 작은누이 그리고 그 딸들. 그들의 대화는 5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주제 변경이 일어난다. (195개 멀티채널 oo브로드밴드 케이블방송 저리 가라다.) 그렇다고 새로운 주제에 너무 끌려가면 안 된다. 바로 전 주제가 언제 어디서 다시 돌출되기 때문이다. 수다의 초절정 고수들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 홀로 멘붕이고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고 나홀로 안드로메다 티켓을 끊어야 한다.

어서 오라. 나의 누이들이여.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들이여.

이번 추석에는 강화된 나의 수다력을 보여주리라.  수다의 적벽대전 축제를 펼쳐보자~.

 

이런 야무진 다짐도,

내 Base Camp로 돌아오면 또다시 묵언수행이 기다린다. 모처럼 찾아온 수다력 폼 유지를 위해 오늘은  

혼잣말 수다라도 해본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나?",  "이봐. 자네. 방청소 좀 해야 되지 않겠어?"

아.. 어색하다. 



외롭냐고? 아니다.

외로운 거라고? 아니다. 아니다.

그저. 그냥. 원래. 말수가 적을 뿐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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