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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Feb 28. 2024

도서 리뷰 : 프랭키


한 남자가 낡은 집 거실 천장에 끈을 매달고 생을 마감하려는 찰나, 고양이가 나타났다. 인간의 말을 하는 고양이다. 남자의 이름은 "리하르트 골드"이고, 고양이의 이름은 "프랭키"다. 이 책은 운명적인 순간에 만난 두 생명체가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지은이는 요핸 구치 & 막심 레오 - 독일 소설계의 환상의 복식조란다. 출판사는 출판계의 명가 : 인플루엔셜, 출판 연도 2024)




처음 읽을 때는 쓰는 자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우선 신기했다. 말하는 고양이라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에 나오는 지혜로운 고양이 "바스테드"가 오버랩된다)
작가들의 상상력과 플롯의 구조, 스토리 전개에 그저 감탄하기만 했다. 고양이를 좋아라 해서 그런지 완 테이크 한 호흡에 후루룩 읽을 만큼 재미와 흥미를 갖춘 책이다. 도서 리뷰도 한 획으로 일필휘지 써보자며, 연필을 들었는데 멈칫하더니 며칠 동안 생각에만 잠긴다.

골드의 좌절은 무엇인가. 자신을 자신이 해칠 정도의 깊은 상처는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삶의 의미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간단치 않은 질문들을 놓칠 뻔했다. 책의 첫머리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 읽기 쉽고 간결한 문장 속에 유쾌하거나 깊은 철학적 메시지가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저자들은 프랭키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유한함, 상실과 좌절 또는 절망을 들여다본다. 복잡하기 한이 없는 인간의 사고와 감정, 형식과 모순이 부닥치는 인간 세상을 프랭키는 이상하게 바라봤고, 지구별에 살고 있는 자연과 동물, 모든 삼라만상의 단순성과 고유성에 비추어 인간들을 가엾이 여긴다.

독자들이 쉽게 읽는 만큼, 작가들은 어렵게 고생해서 문장을 쓰고 벼린다는 말이 몸으로 느껴진다. 작가들의 내공이 범상치 않다. 세상과 강호에 정말 고수들이 넘치고 넘친다더니. 넘치다 못해 흐르고 흘러 바다를 이룬다. 작가들이 궁금하니 검색해 본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란다. 그런데, 두 분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아. 내가 오래 살긴 살았구나. 나는 그 새털 같은 세월 속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잠시, 얕은 한숨도 안주 삼아 곁들인다.

프랭키는 인간의 말뿐이 아니라 시도 쓴다. 기가 막힌 설정이다. 어여쁜 여친 고양이에게 사랑의 시로 세레나데를 부르는 상상도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프랭키에게 냥냥펀치 맞는 기분이다.

프랭키는 골드로부터 "사랑 앞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진심과 감정을 배워가며 골드의 좌절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 순간에 아내와 배 속의 아이를 잃은 골드의 상처를 보듬으며 자신 묘생의 상처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픔을 나누는 과정이겠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골드의 "삶의 의미"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둘은 서로의 의미가 되어 간다.

  

골드가 매달리려 했던 천정의 끈, 백화점 건물에서 프랭키에게 강요된 목줄, 빠삐용처럼 탈출해 날아오른 앵무새의 새장. 프랭키가 말하고 싶은 단어는 절망으로부터의 "자유"와 담담히 살아내려는 "희망"이려나? 온갖 좌절에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주어진 삶에 대한 예의고, 생명체의 숭고한 존엄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천천히 마음에 담으며, 밑줄 꾹꾹 그은 몇 문장을 정리해 본다.

- P56 왜 인간어는 여러 종류일까?

- P83 자발적으로 인간의 노예가 됐기 때문이야. '줄에 묶인 동물'이라는 말은 심한 욕설이라고!

- P105 죽음은 삶의 끝일뿐이다. 시작이 있듯이 끝도 있다. 소시지와 비슷하다. 처음과 끝이 없다면 소시지는

  소시지가 아니다. 삶도 삶이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 P107 잠시 후에 만나

- P114 아. 삶의 의미 말이야. 처음에는 찾아야 하잖아. 그 후에는 잃어버리지 않게 계속 조심해야 하고 (...)

- P136 사랑 앞에서 처음에는 그저 뭔가 할 용기를 내야 해.

- P227 인생은 단순해. 그 어떤 멍청이라도 살아갈 수 있어

- P233 결국은 소소한 일들이 남아

- P260 난 다시 가벼워지려고 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 예상한 결말은 다소 반전이다. 어쩌면,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독자들 상상력의 지평을 펼치게 한 작가들의 배려이기도 하겠다.




산책길에 오른다. 나의 상실과 좌절 또는 절망, 용기와 희망을 다시 천천히 되돌아본다. 잘 살아가고 있는가. 반성도 반갑고, 다짐도 새롭다. "길에서 글을 찾고, 책에서 길을 찾아 마음에 쓰려합니다." 문학 소년의 캐치프레이즈도 슬며시 들여다본다. 읽고 쓰는 의미는 곧 잘 살아내자는 의미이려니. 맞다. 책은 곧 삶의 도구다.


공원의 냥이들이 반긴다.

"어이. 오랜만이야. 소년아. 시린 겨울 버텨내고 살아오느라 고생 많았어. 봄이 코앞이야. 춘삼월 꽃구경 갈 준비 해야지." 이런다.

나의 프랭키는 <황금마녀> <까칠블랙> <인천블루> <인상펴라> <유리공주> <아담> <삼순이> <땅콩버터> 무려 여덟 명이나 된다.

함께 걷는 길동무, 한국말하는 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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