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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섭 Apr 03. 2024

사랑의 의지

<문장, 필사적 공부> - Day 30


책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책 쓰는 고통을 온전히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결과로 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자식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진 않는다. 모든 자식이 유명인이 되고 효자효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P.266
Mission : 나는 첫 책으로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제목부터 지어보자.




오랜만에 뇌구조를 들여다본다. 말풍선 모양의 그림이 둥실둥실 떠있다. 99프로는 "책"이다. 책 읽고 책 쓰고 책 생각으로 온통 꽉 차있다. 회사일도 해야 하고 빨래도 청소도 하고  밥도 지어먹어야 하는데, Zoom으로 들어온 바이어의 얼굴을 읽고,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문단으로 나누며, 빨랫줄에 널어놓은 노을에는 온통 단어와 문장의 바람결이다. 가히, 나라사랑 외사랑 책사랑이다. 도저히 헤어 날 수가 없다. 도망도 못 간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애정 행각이다. 늘그막에 사랑에 빠졌다.


겨우내 외면했던 원고 뭉치를 서랍 속 먼지나라에서 다시 꺼내든다. 울고 불며 지우고 또 고쳤던...

이제는, 원래 쓴  초고 문장이 뭐였는지 뭐라 고친 건지 알아볼 수 없는 너덜너덜이다. 이 아이를 정말 어쩌면 좋으랴. 내 마음도 구절구절이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 것을... 후회는 늘 때늦다. 사랑이 그렇듯.


사랑도 후회도 무언가 부족하고 모르겠고 마뜩지 않다. 더욱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3월 한 달 동안 참여했던 필사 모임이 어제 끝났다.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김선영 작가의 다정한 안내에 따라 수많은 문장을 쓰고 나의 문장으로 바꿔보는, 말 그대로 필사적 문장공부다. 중간에 회사출장 관계로 중단의 위기에 몰렸지만, 내가 누군가. 한다면 한다. 끝까지 판다. 억척돌이 세모돌이, 약속은 지키는 멋진 소년 아닌가. 셀프 멱살 잡고 겨우 겨우 마침표를 찍는다. 고명한 작가들이 쓴 귀한 문장의 바다에서 한 마리 어린양은 어질어질 길을 잃고 이리저리 표류하였지만, 오늘은 김선영 작가의 에필로그 한 문장에 오래도록 정박해 본다.

 


P. 266   글쓰기는 "사는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이다.



잘 살아내는 법.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까 고민하는 일. 정답이야 없겠지만, 인생길 어느 모퉁이에

여기저기 부닥쳐  멍투성이인 나를 애정하는  일. 고단한 삶이지만 애써 사랑하며 잘 살아낼 길을 부단히 찾아보는 일이라 해석해 보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사랑에는 기쁨과 환희만 있지 않고 고통과 후회도 있는 법. 그러니 쓰는 일, 문장대로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은 이다지도 어렵고 힘든 일인가 보다. 그럼에도 기꺼이, 한발 두발 앞으로 걸어 나서는 일, 여정, 여행이겠지 싶다.


잘 찾아보자. 잘 살아내 보자. 퇴고와 거절에 쩌든 빛바랜 원고를 책상머리에 살포시 올려본다.

스탠드 켜고 흐린 눈도 밝힌다. 겨우내 묵은 마음 툭툭 털어내고 다시 본다. 다시 고친다.


<멈춤을 멈추려 합니다> 

나의 첫 원고의 제목이다. 요리보고 조리 봐도 물끄러미 바라봐도 가여운 녀석이다. 접을 때 접더라도 후회는 말자. 출간 못해도 이제 더 이상 실망하지 말자. 생애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 여기고,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쓴 땀의 기록은 이 시절 이 시간 속에 역사로 남아, 어느 훗날 흐뭇한 미소로 기억되면 좋을 듯싶다.




방구석의 또 다른 한구석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하며 산모는 여전히 산고의 진속이다. 초음파나 X-Ray로 봐도,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봐도 못나고 별로인 글이다. 그래도 사랑하련다. 못생긴 글, 애잔한 문장이라도 내 자식이다. 내 연인이다. 내가 선택한 인생이다.


이 사랑에 이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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