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 설 마음 없어 보이던 여름이 한 걸음 주춤한다. 어제 내린 비로, 뜨겁던 대지가 품고 있던 열기를 한 소뜸 내뿜은 후의 일이다. 어린 가을의 숲 속 향기가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여린 가을의 귀여운 발걸음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안스럽기도 하다. 가을아. 너도 고생이구나.
어제 내린 비. 마치 빨갛게 달궈진 프라이팬을 개수대에 놓고 찬 수돗물을 틀었을 때와 같다. 비는 수돗물이요. 땅은 프라이팬이다. 방구석에 치이익 후끈 허연 연기가가득하더니 잠시 후 프라이팬은 식는다. 이 땅의 열기도 이렇게 쉬이 식었으면 좋으련만.
지혜의 여신님(엄니)도 경로당 당원 어르신들도 이런 더위는 살다 살다 처음이로다 하시며, 역사적 폭염을 온몸으로 증언하신다. 36.5도. 올여름 인천 지역의 최고 온도로 기억한다.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열대야 일수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올여름은 충분히 넘치도록 격렬하게 뜨거웠다.
나는 겨우 눈치채었다. 36.5도. 인체의 온도 아닌가. 나는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내가 이토록 뜨거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뜨뜻미지근한 미역국에 우유부단 한 사발 휘휘 말아 이도저도 애매한 인간인 줄로만 알았던 내가 이다지도 뜨거운 가슴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를 모르는 게 아직도 많다는 것을. 그러니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타타타인가 보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고 소크라테스가 그렇게도 강조했나 보다. 정신은 갈래갈래 어지러운데 마음하나 또렷해진다.
여름은 나에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너를 더 뜨겁게 사랑하라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너를 네가 숨 막히게 안아 주라고. 많이 부족하고 허당스럽고 한없이 게을러도 네가 너에게 가열차게 열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