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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신호

by 김호섭

☆ 라라크루 [화요갑분 글감] : "신호"
2025.04.08




<단호한 신호> - 문학소년


동네 까치들 목소리가 달라졌다

구슬피 처량히 울기만 하더니 명랑 발랄하게 노래한다


다소 억울하게 생긴 옆집 멍멍이는 늘 화난 줄로만 알았다

나도 이만하면 멀쩡한 얼굴이라며 주름살 쫙 편다


떼로 몰려만 다니던 비둘기들은 짝지어 천지사방으로 흩뿌려진다

빨간 구두 신고 또각거리는 아가씨 비둘기는 데이트 약속이 있나 보다 발걸음이 가볍다


은신처에 숨어만 살던 냥이들이 동산에 꽃처럼 한가득이다

냥이꽃들은 나무들과 인사한다 미야옹


검고 무거운 색이던 광장이 찬란한 웃음으로 한껏 미소 짓는다

봉숭아 물들인 여인의 손톱처럼 달은 빛나고

항구의 어머니들은 장윤정을 춤춘다


봄이 오는 신호다

이미 왔다는 시그널이다


어떤 신호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고 재생된다

까치발 들고 봄의 신호 기다리던 나의 세월은 잠시 멈춘다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보고 있다는

이바라키 노리코에게 편지 한 장 써도 좋겠다

봄이 왔다고 누군가에게 편지 한 장 쓰는 일은

이 봄이 작년의 봄과는 완전 다른 봄이라는 단호한 신호다


몇 번이나 볼 지 모를 벚꽃은 무겁지 않다

무거우면 벚꽃이 아니고

가볍지 않으면 풍화나 소멸이 아니라는 신호다


신호가 가지 않으면 불통이고

와도 온 줄 모르면 먹통이니

어물쩍 갔다가도 슬며시 돌아오는 신호에 우리는 통한다


나가자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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