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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랬을 것이다

by 김호섭


엄니가 전화를 하셨다

얘야 비 오고 태풍바람 불고

간판 날리고 맨홀이 날아간다

봄날에 이 무슨 변고냐


"네? 며느리가 날아갔다고요?"


며느리가 아니라 맨호리

아핫 핫 핫 핫 핫 앗았았앗

기력이 쇠하시던 우리 엄니

절도 있고 명료한 웃음 터졌다


얘가 가끔 이렇게 실없이 웃긴다오

보청기 빌려주랴

친구분들도 함께 웃는다

깔깔 꺄르르


아마 내가 꾼 꿈이었을 것이다

아마 세찬 봄비가 밤새 내 귀에도 내렸을 것이다

아마 태풍바람으로 내 안의 마당이 깊게 파였을 것이다


너도 이제 당에 가입해라

당은 무슨 당이요 이제 와서 무슨 정치를


"경로당"


아핫 핫 핫 핫 핫 핫 앗았았앗

나이 들수록 생김새는 아버지를 닮아가고

웃음소리는 엄니를 닮아간다


이 난리통에도

공원 봄 꽃들은 끈덕지게 살아남았다

엄니와 나도 거친 생애 속에서

아마 이렇게 살아왔고

아마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맨호리를 며느리로 둔갑시킨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엄니에게도 며느리가 있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오늘 내 할 일은 다했다

엄니가 오랜만에 웃으셨으니 되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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