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문유석 에세이, <쾌락독서>
암담하던 고시생 시절은 벗어났지만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벽에 부딪히곤 한다. 그럴 때 떠올린다. 그래, 나는 에이스가 아니었어. 팀의 주역이 아니면 어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 아냐? 누가 비아냥거려도 웃을 수 있게 된다. 죄송함다. 제가 원래 에이스가 아니거든요. 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드라마 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 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문학동네,2018년, 113~114쪽
필사적인 문장공부 ☆
001 문학소년 에세이, <나는 늘 2등이었다>
야구보다 농구를 좋아한다. 농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한다. 어렸을 적 얘기다.
골잡이로 제법 유명했으니 별명은 '코라도나'.
코 큰 마라도나! 학창 시절 얘기다.
화려한 테크니션 안정환보다, 터치라인을 따라 치고 달리는 ‘치달’의 대명사 차두리를 좋아했다. 2002 월드컵 때의 일이다.
얌전하니 생긴 외모와 조용조용한 말투와는 달리,
부딪치고 깨지고 치고 달리는 원시성에 자꾸만 마음이 기울더니 어렴풋이 내 전생이 보인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 포졸 2. 적을 향해 돌진하던 그의 폭풍 질주가 떠오르고 더 멀리 달려가 보면, 선사시대 동굴가족의 아빠 2가 가족을 위한 사냥감을 향해 광야를 내달리는 장면이 보인다. 옛날 옛적 이야기다.
아마 전생에 난 <주먹 쥐고 일어서서 달리는 자>이었으리라.
빨간 뚜껑 오리지널 진로역에서 출발해, 참이슬에서 환승하더니, 이즈백에 잠시 머물다가 드디어 맑고 푸른 물, 청하에 이르렀다. 두주불사 번쾌가 울고 갔다던 나의 주력 40여 년의 여정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강가에 이르러서야 나는 비로소 태초의 물을 만난 듯 편안함을 느낀다.
아마 전생에 난 <주먹 쥐고 일어서서 달리다가 강가에 앉아 쉬면서 한 잔 하는 자>이었으리라.
이렇듯 좋아하는 것들의 변천사는, 어찌어찌 살다 보니 그리 될 운명이었다는 스피노자의 결정론보다는 사르트르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다,라는 셀프해석에 따라 이 또한 엄연한 주체성의 발로이구나,라는 생각도 살짝 곁들여본다.
역사가 흐르 듯, 변한다는 건 흐른다는 뜻. 좋아하는 일도 생애의 강줄기를 따라 유유히 흘러가며 자연스레 선택되고 변해간다.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건 없다”라는 문장뿐.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바로 이어진다. "나는 그걸 잘하는가?"
좋아하는 걸 잘하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이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떻게 좋아하는 걸 모두 잘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걸 해야 할까? 아니면, 잘하는 걸 해야 할까?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학소년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아야 한다.
나는 늘 2등이었다. 스포트라이트 받는 스트라이커의 자리는 부담된다. 조용히 웃고, 묵묵히 달리고, 때론 눈에 띄지 않게, VAR도 모르게 골을 넣거나 스트라이커에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하거나 그런 스타일이다. 노을 지는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저 혼자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뛰는 타입. 공부도 그렇고 회사 업무도 그렇고 생긴 거도 그렇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이 아는 노력과 진심은 어디 멀리 가지 않고 내 안에 묵묵히 쌓여 간다고 믿는다. 무릎 꺾이고 쓰러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리는 성장과 동기의 주체는 오로지 나. 비교의 기준은 어제의 나다.
제법 단호한 녀석이다.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그 어느 젊은 날의 축구경기를 나는 무던히도 좋아했다. 이 대목에서 맨유의 레전드 박지성이 떠 오르지 않는가? 루니와 호날두에 가려져 저평가된 점이 있지만, 박지성처럼 때로는 조연의 뒷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영화도 드라마도 유난히 기억나는 조연들이 있지 않은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저 혼자 네임카드 석 장을 써 놓고 월드컵게임을 해 본다. 월클쏘니 보다 지송빠레. 지송빠레 보다 치달두리! 찬찬히 생각해 보아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걸 보니 나는 역시 허벅지 터질 듯하고 심장 폭발할 지경의 인간의 순수한 힘, 그 고유성과 원시성에 매료된 게 틀림없다. 내 안에 힘 있다! 제법 의리 있는 녀석이다.
쓰는 일은 어떠한가. 정말 잘 쓰는 작가님들이 차고도 넘치는 대한민국이다. 이 축복받은 문화 문학 강국에서 2등은 무슨... 끝에서 2등이면 몰라도... 참. 나. 원. 어이상실이다.
이 글을 폭풍질주로 쓰다가 누군가의 강력한 태클에 치달소년은 터치라인 밖으로 튕겨 나간다. 어디서 감히 무명 초보 작가가 쓰는 일을 논하는가. 야단도 맞고, 누군가는 조롱할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 뭘 해?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글쟁이 흉내야?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녀석아." 친구들의 타박도 이어진다.
“그래서. 책은 잘 팔려? 어차피 잘 팔리지도, 잘 쓰지도 못하잖아. 노후는 준비 안 하셔?” 직장동료의 자본주의가 뼈를 때린다.
'확. 마. 이눔들을. 응원은 못 할지언정, 어따대고 고춧가루를... 치달소년의 강력한 봐디첵을 한번 당해 볼래?' 혼잣말도 해본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좋아하는 걸 계속할 테니까. 왜? 사랑하니까.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다더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거. 그게 사랑의 본질 아니겠는가. 어설픈 대로, 서툰 대로 이 사랑에 퐁당 빠져 그 문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할 테다. 학교 교수님들 말씀처럼 좀 뻔뻔해질 테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왼손으로 진땀 나게 고요히 써 내려가는 필사적 문장들, 오른손으로 낚아채는 일상의 메모들, 관찰과 사색의 숲길에 쏟아지는 길 위의 문장들... 나는 나의 문장들을 사랑하련다. 내가 써 놓은 글들, 써야 할 문장들, 내가 거두지 않으면 이 가여운 아이들을 도대체 어찌할 것이냐.
에이스가 아니면 어떠랴. 김훈 선생님, 무라까미 하루끼 선생님이 아니니 오히려 좋지 아니한가. 말도 안 되는 글, 하나마나한 소리들 여기저기 막 써내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명성이니 어찌 흠결이 가겠는가 말이다. 껄껄껄.
잃을 게 없는 나는 두렵거나 망설일 게 없다. 누가 이런 글도 글이냐고 타박해도 헤헤 한번 웃으면 그만인 것을.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지금의 내가 오늘의 최선이다.
"좋아하는 걸, 어제보다 조금 더 잘해보자."
이 문장이 오늘의 결론이다.
내 삶의 운동장에서, 내 글의 무대에서의 '나'는 조연이 아니다. 언제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다. 그러니 무의미한 등수 매기기는 애초에 의미상실이다.
'나'가 살아 있는 글을 써보자.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사랑하는 글을 써보자.
왼손 오른손 두 주먹 꼬옥 쥐고 달린다.
문장계의 차두리 님 힘차게 치고 달린다.
허당스럽긴 하지만, 진솔한 문장과 글로 다듬고 단련하여
오늘도 내일도 나만의 슛을 가볍게 날려보자.
"나이야가라 ~~~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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