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두렵지도 않았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부와 가난은 살아감에 있어서 편리와 불편함의 사소한 차이일 뿐, 생애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척도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돈이 나에게 붙지 않은 건, 아마도 운과 때가 맞지 않았을 뿐,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그러면 된 거라 자부해 왔었다.
추석연휴 끝에 엄니가 쓰러지셨다. 워낙 연로하셔서 기력이 많이 쇠하신 데다가 불현듯 발생하는 어지럼증에 주방 싱크대 앞에서 쓰러지셨다. 최근 이 년 사이에 벌써 다섯 번째다. 얼굴 반쪽이 시커멓고 푸르스름하고 뻘건 피멍으로 가득하다. 움푹 들어간 한쪽 눈은 상태의 심각성을 또렷이 말해주었다. 엄니의 모습은 지금까지 겪어 온 여러 부상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119에 실려 갈 때도, 내 등에 업혀 응급실로 달려갈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도록 놀랐고, 놀람보다 더 큰 짜증이 와락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만 역정을 내고 말았다.
"아니, 제발 좀 조심히 다니시라니까요. 요양보호사라도 두자고, 제발 좀 그렇게 하자는데 왜 그렇게 싫다고 하십니까." 어머니는 요양보호사를 쓰면 노인일자리를 할 수 없으니 그거는 안된다며 고개를 저으신다.
"아니, 그놈의 노인 일자리가 뭐라고, 삼, 사십만 원에 목숨 걸어요? 정히 싫으시면 좀 더 편한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요. 아니면 월세라도 얻던가 하자고요." 살아오면서 엄니께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는데... 내 목소리에 엄니도 나도 놀랐다. 엄니는 다시 완고하시게 말씀하신다.
"이 낡은 집이 팔려야 이사를 가지, 월세 낼 돈이 어디 있느냐. 잔소리 말고 너나 잘해라. 맨날 골골대지 말고, 다시 사업하겠다는 소릴랑 꿈에도 하지 말고, 애들한테 짐 되지 말고... "
"아니, 엄니, 이러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구르면 어쩌실라고 그러세요. 평지에서도 이렇게 부상이 심한데."
"그러면 그때는 그냥 가는 거지. 그렇게 한 순간에 가는 게 오히려 좋을 수 있어. 니들에게 짐 되지 않고..."
엄니도 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는 가난한 시간과 이도 저도 손에 잡히지 않는 허공만 남은 것인가.
내 눈이 아파 온다. 내 얼굴이 쓰리고 저 깊은 곳의 마음 조각이 찢어진 듯 아려온다. 이런 걸 동조화 현상이라고 하는가. 사랑하는 가족을 내 몸처럼 동일시해서 바라보는 마음이 뼈와 피부로 저미는 느낌. 그걸 나는 짜증과 역정으로 표현하고 있었나 보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오른쪽 눈의 각막이 많이 손상되었지만 다행히 망막은 손상부위가 적고 특별히 다른 골절은 보이진 않으니 천만다행이라는데, 엄니는 아무 일 아닌 듯 한마디 툭 던지신다.
"거죽이 아무러면 어떠냐. 속알맹이가 안 다쳤으면 다행이지..."
가난한 아들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의사양반에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스무날이 지났다. 그동안 한 줄 문장 안 쓰고 한 줌 생각도 멈췄다. 생각은 자꾸만 과거로 흐르고 엄니 곁에서 편히 모시지 못해 온, 후회와 자책은 온몸을 붙들고 발아래로 자꾸만 꺼진다. 좀 많이 벌어둘 걸. 최소한의 돈은 마련해 둘 걸. 가난이 갑자기 두려운 얼굴로 다가온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글쓰기나 하고 한가로이 책이나 읽고 문장타령이나 할 때인가. 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심란과 무기력이 사정없이 소용돌이친다.
시월이 가고 새달이 왔다. 엄니의 얼굴이 섬뜩한 터미네이터에서 다시 곱디고운 한복집 마나님 얼굴로 조금씩 돌아온다. 생명의 회복성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노모의 검붉은 가죽이 조금씩 사라지고 새 살이 올라온다.
엄니가 회복하신다. 정말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가난한 아들은 이제야 다시 연필을 잡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지난 시간의 후회와 자책이 무슨 소용 있으랴. 짜증도 심란도 저 자신에 대한 신경질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쓰는 일이 삶의 고난을 직접 해결해주진 못해도 사는 일이 더 나빠지지 않게는 한다니, 그 말에 기대어 보자. 삶의 최전선과 저항선 그 사이 어드메쯤을 붙들고 매달리고 기어이 버텨보자.
거죽이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의 가난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이 부끄럽지도 두렵지도 않았지만, 가난은 죄송하다.
가난하다는 건 부모님께 죄송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가을은 저만치 달아나고 어느새 바람이 시리다.
연필을 잡은 손이 자꾸만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