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자리
작년 연말, 회장님이 떡을 돌렸다. 어르신 에어로빅이 끝난 어느 새벽이었다. “전부 모이소~.” 평소라면 엔딩곡이 끝나자마자 젊은이들의 '플래시 몹'처럼 순식간에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던 항구의 어머니들이, 그날은 회장님 곁으로 쏜살같이 모여들었다. 일명, 쫑파티다. 광장 뒷구석 저 멀리서 나 홀로 춤추던 아저씨도 찰떡같이 감잡고 부리나케 뛰어온다. 떡에 살살 얹힌 참기름 향기를 새벽하늘에서 능숙하게 잡아챈 개코 아저씨는 오늘 먹을 떡 종류를 기분 좋게 상상했다.
그때였다.
“거기. 아저씨는 안 와도 돼요.”
구십이 훨씬 넘은 나이, 회장님의 한마디는 단호했다. "거기. 아저씨는 오지 마세요."라는 문장보다 더 차가웠다. 긍정문으로 말하면서 부정을 강조했다. 싸늘하다. 달려가던 발걸음에 급 브레이크를 걸고, 뻘쭘하게 급 우회전하는 아저씨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종아리에 쥐가 났지만, 그건 종아리를 빙자한 자존심이리라. 떡 한 줌이 뭐라고 이렇게 마음이 접히는가 싶었는데, 이미 속절없이 접힌 뒤였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긁"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처량한 눈빛으로 아저씨를 쳐다본다. 공원에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중얼거리는 혼잣말이 빨개진 귓속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다음 날이다.
"아니... 그깟 떡이 뭐라고,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저씨한테 떡 한 줌 주는 게 뭐가 아까워서..."
"너무 실망 말아요. 초보 작가님, 저 양반이 요즘 정신이 올곧지 못하다고 합니다."
"내가 사모님한테 얘기해서 따로 챙겨 줄게요. 속상해하지 말아요."...
별일도 아니다며 생각을 지우려 했는데 어머니들에게는 핫이슈였나 보다. 나를 두둔하는 말도 있었고, 회장님의 성정을 두고 수군거리는 말도 있었다. 뜨거운 성토와 살가운 다정이 광장에 넘쳐흘렀고, 괜스레 고마웠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질문 하나가 자꾸 괴롭힌다. 떡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자꾸 묻게 되었다.
새해가 밝았다. 어르신들에게 진짜 새해는 음력설이다. 다시 “전부 모이소~.” 이번에는 세뱃돈이다. 어머니들은 이미 회장님 코앞에 모여 있지만, 나는 방구석으로 직진한다.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는 가지 말아야 하고 알아서 빠져주는 자의 뒷모습은 자연스럽다. 서로의 선은 넘지 않는 게 예의라 생각했다. 선은 타인이 그을 수도 있고 자신 또한 그을 수 있다. 서로 간의 경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더구나, 떡으로 한 번 접힌 자존심을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스리슬쩍 펴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들이 분기탱천해서 공원 광장이 또 시끄럽겠지. 기대는 아니더라도 내심 예상했으나... 웬걸, 그 어느 누구도 회장님을 질책하거나, 정신머리 없는 양반이라거나, 좀팽이 영감이라거나,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그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세상 이치가 이렇다. 광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겨울은 씁쓸하게 흐른다.
그날 내가 지어 본 문장은 "떡보다 돈이로소이다."이다.
하나 더 있다. "돈 앞에 뒷담화는 없다."
또 있다.
"떡도 돈도 권력이라 본다면, 반드시 오와 열을 맞추어 통제받고 춤춰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억압이다. 춤 자체가 자유이고 춤의 본질이 해방인데, 대열에서 이탈해서 춤추는 자에게는 괘씸죄를 적용해서 떡도 국물도 없다면 이게 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경제개발 5개년, 국민교육헌장 시대의 '오와 열' 타령인가. 수십 년간 우리 모두가 갇혀 있던 획일화의 틀에 넌덜머리도 나지 않는가. 내가 언제 빵 달라 밥 달라 그랬나? (떡 달라 그랬지...) 내가 누군가에게 무슨 민폐를 끼쳤는가? 떡으로 돈으로 사람들을 왜... 이리저리 휘두르려 그러고..."
별일 아닌 척 점잔 빼고 있었지만 떡 한 줌에, 돈 한 푼에 나는 배배 꼬인 게 틀림없다. 문장이 제멋대로 얽히고 맥락이 툭툭 성질마저 부린다. 워워. 문학소년이여, 왜 이러시나. 진정하시라.
나는 떡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그 광장의 한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8년 가까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믿은 자리에서 살짝 밀려 나 있는 느낌. 배재라고 부르나 배척이라고 하나? 왕따라고 하나? 그런 느낌 말이다.
Hannah Arendt는 인간을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존재라고 말했다. 사람은 혼자 숨 쉬며 살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리를 느낀다. 누군가의 눈길과 손길 속에서 “아, 나는 여기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 광장은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었다. 내가 여전히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 함께 숨 쉬고 호흡한다는 걸 확인하는 작은 사회였던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서운했던 건 떡이나 세뱃돈이 아니라는 것을.
은퇴를 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굳이 묻지 않아도 자리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름이 불리고, 명함에 직함이 새겨지고,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걸 하고 책임지고, 나는 그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조직이라는 울타리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의 자리는 스스로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어야 유지된다. 그러니, 나를 같은 팀으로 여기는지, 내가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는지, 작은 신호 하나에도 이렇게 마음이 기울어진다.
문득 돌아본다. 살아오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말이나 표정, 행동으로 “거기, 당신은 안 와도 됩니다.”라는 신호를 준 적은 없었을까? 섣부른 기준으로 갈라 치기 한 적은 없을까? 기억은 늘 자기편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 못 하고 인식하지 않았을 뿐이겠지... 잠시 성찰의 시간도 가져본다.
아무튼, 나는 내일도 자유공원 광장에 나갈 것이다. 나는 거기, 나의 그 자리에 설 것이다. 그리고 혹시 광장 가장자리에서 쭈뼛거리거나 머뭇거리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이리 오세요. 우리 같이 정 나누고 웃으며 춤춥시다. 줄 맞추지 않아도 되니 마음껏 신나 하세요.” 떡은 못 받았어도 정과 자유까지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은퇴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사람이고, 동시에 누군가를 따뜻하게 환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며칠 전 석정루에서 내려다본 바다가 떠오른다. 파도에 깎여 제각기 떨어져 서 있는 섬들. 가까이 보면 외로운 단독자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장면을 이루며 바다를 완성한다. 섬은 서로 붙어 있지 않아도 근사한 풍경이 된다. 떨어져 있어도 함께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섬에 가까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나로 서는 사람.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사람.
오늘의 내 마음이 그렇다.
떡 한 줌에도 사람이 이렇게나 복잡하다. 《총, 균, 쇠》보다 더 어렵다. 《사피엔스》보다 더 역사적이다. 성불하기가 이토록 버겁고, 주님의 아들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고 인간의 감정과 일상의 철학을 면밀히 다루고 묘사하는 내공 깊은 작가가 되는 일은 그래서 더욱 힘든가 보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마음의 평온이 흔들리니, 글줄이나 한 줄 제대로 쓰겠는가.
각설하고,
누가 뭘 해주기 전에,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내가 해주자. 나에게. 옆자리 외로운 누군가에게.
내 기준이 타인과 다를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말과 행동에 앞서 상처받는 자 있는지 두루 살필지어다.
다름을 인정하자.
내 자리는 이제 내가 만드는 것이다.
작은 일 가지고 배배 꼬지 말고.
지난 일 가지고 맘에 두지 말고.
*** 이 글은 특정인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다름 앞에서 흔들렸던 제 마음을 돌아보는 기록입니다. 괜한 오해나 불편이 있으셨다면 송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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