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한 시절을 졸업하며

by 김호섭


언젠가 한 번은 다시 오리라 예감했어 수십 년 만에 왔어 세종대학교 캠퍼스 연예를 책으로만 배웠고 실전에는 쑥맥이던 스무 살의 나는 세종캠퍼스 스피커에서 흐르던 음악에 기대어서야 겨우겨우 여인의 손을 처음 잡았어 왜 그 노래 있잖아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서울대 트리오라는 친구들이 불러서 대학가요제 히트곡으로 떴던 그 노래 <젊은 연인들> 서클 후배 소개로 만난 지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어 음악이 흐르고 주변에 사람도 없고 이 때다 아니 이 때겠지 덥석 용기 낸 나의 손 발발 떨리는 나의 애틋함은 캠퍼스 곳곳에 천둥 쳤고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배 밖으로 나오더라구 온몸에 비 오듯 긴장이 흘렀어 그녀는 떨지 않았고 배시시 미소만 지었어 뭐라 말했는데 어이구 손도 잡을 줄 알어 이 쑥맥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문장을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했어 맞아 세상 쑥맥도 이런 쑥맥은 없을 거야 요즘 젊은 친구들이 보면 무슨 원시인 보듯 할 거야 만난 지 육 개월 만에 손잡고 일 년 만에 키스했거든


우리는 가난했어 종로서적에서 만나 종로 5가까지 걸었고 종로 5가에서 종각까지 손 잡았어 건국대 세종대 캠퍼스 어린이 대공원 앞 빈터에서 걸었어 헤어지기 싫어서 뱅뱅 걸었어 그녀의 집 근처야 서울역에서 떠나는 삼화고속 인천행 막차 시간이 돼서야 난 뛰었어 가난해도 좋았어 마냥 걸었고 그저 웃었어 근데 있잖아 아주 옛날에는 그런 사랑도 있었어 많이 답답하고 가난해도 구들장 군불 때듯 서서히 따뜻해지고 한 번 덥히면 평생 가는 온돌 보일러 같은 대충 그런 사랑말이야

음악은 끝났고 세월은 멈췄어 그때 좀 더 오래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살아가면서 뭐라고 근사한 말도 했었더라면 우린 더 오래도록 함께였을까 누군가 그랬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아 빛나던 시절만 남기고 나머진 다 보내라고 그 시절의 기억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그 힘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거라고 말은 쉽고 통찰은 선명해도 그게 좀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 맞아 그게 나야 인프제들이 그렇다지 맞아 나야 뭐 어쩌겠어 생긴 대로 살다 가야지

언젠가 다시 여기 세종에 오면 이제 그 손을 놓으려구 했었어 나만 혼자 놓지 못한 그 손을 그 시절을 이제 보내주려구
근데 오늘이야 선배들 학우들 졸업식이야 나는 내년에 졸업이구 내년 졸업식에 비로소 그 손을 놓을 수 있으려니 막연히 예상했는데 막상 오늘 와보니 직감했어 그날이 오늘 바로 지금이라고 어이구 이 인간아 세종대는 확 바뀌어 있었어 예전의 흔적이라곤 고색창연한 정문뿐이야 나만 옛날 무너진 성터에 앉아 있었던 거야 어이구 이런 미련아 곰탱아

이제야 한 시절을 졸업하는 느낌이라던 고수리 교수님 말씀이 떠 올랐어 졸업은 매듭이야 뭔가 아쉽고 부족해도 예복 차려입고 가족들 친구들 앞에서 만천하에 선언하는 거야 뭔가를 배우고 익혔으니 더 늦지 않게 세상에 나가 베풀라는 신호야 성당에서 신부님이 그러시거든 미사가 끝났으니 이제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난 오늘 졸업식이 성당의 미사 같았어
제발 내 안에 나를 가두지 말고 세상에 냅다 던지라는 메타포였어 사각모 던지듯 말이야

말이 길었어 한 호흡에 다하려니 숨도 차고 덜컥거리는 허리통증도 자꾸 쑤셔와 환갑이 지나니 서울 나들이도 만만치 않네 이제 정리할게 오늘을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정의하고 싶어 어떤 이별은 이렇게나 아름다워 세사대 문창과 역사적 압도적 과대표 조으니 조으다 조아서 조을래 조은희 선배의 졸업을 축하하고 캠퍼스를 떠나는 그녀의 앞날을 힘차게 응원해 나를 배움의 길로 이끌어 준 고마운 사람이거든 박서연 학우의 졸업도 축하해 글의 길 힘겹고 버거울 때마다 꾸준히 응원해 주고 어두운 길 밝혀 주었거든 함께 어깨동무하고 글 쓰던 모든 졸업생들도 축하해 그러니 난 참 복 받은 녀석이야 가려고 하는 길마다 어쩜 그 쓰린 모퉁이마다 젊은 귀인들이 나타나서 이끌어 주었거든 정말 신비로운 일이야 그래서 오늘의 이별이 슬프지 않아 매듭의 모퉁이 돌면 또다시 새로운 세계가 아름다운 인연이 거기서 다시 펼쳐질 거라 믿거든

그래서 오늘의 문장은 이렇게 써봤어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아이구 이런 서울대 트리오의 노래 가사잖아 그럼 그렇지 내 짧은 필력이 어디 가겠어 아무튼 낙원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낙원은 내 안에 있는 거야 내가 만들어 가는 세상인 거야 젊음이 낙원이고 성장이 구원이야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새로운 출발을 할 줄 아는 자는 늙어도 젊은이야

졸업은 매듭이야 대나무의 마디 같은
곧 봄이야 계절의 낙원이 오고 있어 겨울도 졸업 중이야


옛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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