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록키.

엔진의 마지막 열정

by 김호섭

록키에게.


네가 나에게 온 날은 1998년. 7월 29일이었어. 그날도 뜨거운 여름이었지? 아마도.

어느새 25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구나.



처음에 널 만났을 때, 나는 그리 탐탁지 않아했단다.

회사에서 거의 반강제(?)로 떠넘기다 시피했지만, 당시 갓 과장에 오른 내가 중형 승용차를 탈만한 경제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지.

이 OO 회장님을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모른단다.

아니, 본인이 좋아라 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면 사업이 잘되든 안되든 본인이 또는 법인이 책임져야 할 일을 왜 애꿎은 관계사 직원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냐 이 말이야. 이런 젠장. 하면서 모두들 울분을 토했지만,

밖으로 그 울분을 표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대부분 고분고분한 인간들이 많았으니까. 안 그러면 눈밖에 나니까...

너도 알다시피, 뭐 대충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잖니?

살아오면서 불의와 부조리에 참 많이도 총대를 매왔던 나지만, 이때만큼은 나도 그 고분고분한 무리 중의 하나였단다. 가족이 있으니 내 성질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거. 뭐 대충 그런 마음 있잖니.

그러니, 내가 널 탐탁지 않아했던 거는 당연지사.




그렇게 만남의 시작은 껄끄러웠으나, 너와의 25년은 정말 행복한 여정이었어.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는 주행거리만큼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넌 의외로 큰 고장 없이 잘도 버텨주더구나.

우선, 가장 큰 고마움 먼저 전할께.

우리 아들, 딸 고등학생 시절 등굣길에 트럭과 충돌한 아찔한 교통사고.

교차로에서 트럭기사의 명백한 신호위반으로 나의 빠른 운동신경도 어쩔 수 없었던 그 순간.

트럭에 들이 받친 채 교차로 한가운데서 한없이 뱅뱅 회전을 하며 통제력을 상실한 순간에도 난 너의 핸들을 결코 놓지 않았지.

난 아빠니까. 정신을 잃어도 놓을 수 없는 게 있단다.

그 충격과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준 너, 록키야.

내가 그때 얼마나 가슴이 와장창 내려앉았는지는 너도 잘 알 거야.

제법 큰 사고였지만, 손 끝 하나 털끝 하나 다친데 없이 무사한 아이들 손을 붙들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내가

주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렸던지. 지금 다시 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덜컥 덜컥 내려앉는구나.

사실은 주님에 대한 기도는 너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단다. 그때. 정말 정말 고마웠어. 록키야.


직장도 여러 번 옮기고 사업도 한답시고, 전국 8도를 돌아다닐 때에도 넌 나의 든든한 반려였고 친구였단다.

그 공허하고 헛헛한 시간과 계절을 함께 해준 너.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과 공간이 어디 한두 시간, 한 두 곳 이겠느냐.

그 역사와 시공간을 이제 고스란히 추억하려 하고 너를 이제 그만 쉬게 하려 한단다.

주행거리 40만 킬로미터.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 킬로미터라 하는데...

참 징글징글한 주인 만나서 고생 많았다.

이런저런 잔고장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치료하지 못한 건 너의 심장. 너의 엔진이었어.

주행 중에 신호대기에 걸려 정차해 있으면 넌 계속 앞으로 치고 나가려 했지. 울컥울컥.

겨우겨우 중립에 기어를 놓아야 진정되는 현상.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던 그 시간마저 이젠 추억이

되겠구나. 여러 병원(정비소)을 가봐도 그건 치료되지가 않았단다.

아니. 어쩌면 그 치료를 네가 원치 않았을지도 몰라. 너는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치료가 어렵다는 걸.

그래서 그 울컥임은 너의 마지막 열정이었을까?




너에게 록키라는 예명을 지어준 건,

아마도 나에게 이런 희망이 있었을 거야.

언제 적 영화인지 기억도 없지만, 권투선수 록키가 14회전까지 줄기차게 얻어맞다가

마지막 15회전에서 결국 다운.

포기의 순간.

링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여자 친구.

"에드리언-----"을 외치며, 벌떡 일어나 초인적 힘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대반전 드라마. 대역전 드라마.


아마도 난 이런 희망을 빗대어 너에게 록키라는 이름을 지어줬겠지. 너도 나의 깊은 뜻을 잘 알고

그 이름 록키를 무척이나 뿌듯해하고 좋아라 했으리라 믿어.




굿바이 록키.

어제 널 폐차장으로 보냈지만 난 널 그리 보낸 게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지?

넌 이미 휘영청 밝은 추석 달에 가 있으리라 확신해.

그곳에서 넌 아무런 신호대기, 아무런 중립기어, 아무런 아픔 없이 무한 질주를 마음껏 신나게 펼치렴.

너의 그 푸르른 열정으로.


굿바이 록키.

인생 대반전 드라마는 걱정하지 마렴.

어제, 보령에 사는 여동생으로부터 인수한 차는 역시 너랑 동일 모델이고 색상은 눈부신 흰색이란다.

외관 디자인도 너랑 정말 동일하고 기능도 거의 비슷하더라고.

이 새로운 친구의 이름은 당연히 "에드리언"

에드리언과 함께 그 인생역전, 반전 드라마를 이어갈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달 속에서 평안하렴.


난 아마도 널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리워할 거야.

그것은 사랑이겠지.


고마워 록키.

굿바이 록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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