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상담사의 이상한 연애 (3)

by 김호섭

뭐 이런 말캉말캉한 감정은 무엇인가?

연애라는 감성을 오로지 책으로만 열심히 배워왔으나, 실재적인 또는 실존적인 이성과의 교제라고는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헤롱은 당황한다. 이런 게 정녕 연애의 감정인 건가?


그다음 주말에 J는 영화를 보러 가잔다. 이번 영화는 장미희 주연의 "겨울여자"다. 단성사였나 피카디리였나 기억은 나지 않고, 스토리도 모르겠고, 스크린에 살색 화면들이 가득한 것만 기억이 또렸하다.


J : "영화 어땠어? 헤롱아?"

헤롱 : "아니, J 야. 뭐 이런 영화를 보자고 했니? 참 낯 뜨거워서 혼났다."

J : "이 영화가 얼마나 유명한 영환데,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건데 문단에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야 이걸 영상미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걸 너랑 관람도 하고 토론도 하고 싶고... "

헤롱 : "아무튼 난 별로다." (스토리를 유심히 봤어야 했는데 영상만 볼 경우의 전형적인 폐단이다.)



너무 과한 영상 탓일까? 헤롱은 또다시 당혹감과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아이고 이 범생아.)

책에서 말하는 그 순정과 낭만은 어데 가고 이렇게 직설적인 것이, 직접적인 것이 사랑이고 연애인가? (아이고 이 모질아.)

이렇게 급발진하는 경우를 연애라 할 수 있는 건가? 너의 마음은 충분히 뜨거운가? 모를 일의 연속이다.

헤롱에게 상담을 받아왔던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진 않는다. 명색이 연애상담사인데, 역방향 조언을 구했다가는 헤롱의 빈약한 실전 경험의 그 실체가 만천하에 뽀록이 날게 뻔하므로.


그러나, 왠지 이건 아니다 싶었고 그 이후에는 J의 메모에 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동아리 룸에서 마주쳐도 그저 형식적인 인사뿐.

J도 헤롱의 꽉 막힌 답답함에 실망했는지, 아니면 헤롱의 적극적인 대시를 기대했다가 실망했는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여성만이 가진 어떤 섬세한 다른 감성인지. 그건 모를 일이다.

문화생활 함께하기 등의 제안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흐지부지 유야무야 되었고, 각자의 인생길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별다른 임팩트 없이 김 빠진 무말랭이처럼 그렇게 그 이상한 연애? 는 제대로 시작도 안 하고 끝이 나버린 거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약 20년 후의 일이다. 학교일인지 동아리일인지 뭐 때문에 만난 건지는 기억에 없다. 각자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 키우고 살다가 (그녀는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20년 만에 헤롱과 J는 다시 커피를 앞에 두고 앉아있다.


J :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아이들은? 많이 컸겠네."

헤롱 : " 응. 그냥저냥 살고 있어. 잘 지내고?"

......

J : "내가 학창 시절에 너 좋아했던 거 알고 있지?"

헤롱 : "J 야. 너 이제 나이 들더니 농담도 잘하는구나. 하하하. 나같이 어리숙한 녀석을 국문과 여신이었던

네가, 설마 그럴 리가. 그 많고 많은 잘난 녀석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설마"

J : "이건 농담 아닌 진심이야. 나는 그때 너에게 대쉬한건데, 넌 참 눈치도 없더라. 순진한 녀석 하고는.

그렇긴 해도 내가 너무 일방적이긴했어. 그렇지? 그건 내 실수고, 아무튼 결론적으로 난 너에게 까인

거였지."

헤롱 : "야... 무슨 소리야. 언제 내가 너를. 얘 봐라. 사람 잡는 기술 보소.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로 들을께."

J : "지나와서 하는 얘긴데, 너 때문에 마음앓이하던 여학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여자들끼리

모이면 온통 너 얘기뿐이었어. 넌 내가 봐도 참 매력 있는 아이였어. 그건 너도 부정하지 말아.

내가 너에게 들이댔다가 차이면서, 여자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다음 주자 내부 경쟁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진짜 여자 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모두들 희망과 열광을 접게 된 거란다."

헤롱 : "J야. 어질어질하니까 그만하자. 너 국문과 출신인 건 알지만 그런 류의 소설은 반갑지 않아요."

J와 헤롱 : "하하하하하하.... 그래 웃자... 하하하하하하"


유쾌한 웃음과 함께 J 와의 이야기는 역사 속으로 저 멀리 클로징 되었다.


다시 20년이 흘러, 헤롱은 이 이야기를 추억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헤롱 : "그래, 모름지기 연예 또는 사랑이란, 어느 날 각자의 에너지가 출렁이며, 새로운 파장을 발생하고 그

두 개의 파장이 서로 만나, 충돌하고 중첩되면서 더 큰 파장으로 각자에게 되돌아가 다시 더 큰

에너지의 힘과 진폭으로 발생, 단계별 궤도에 오르는. 이게 다시 반복되는 마음의 과정임이 분명해.

그리고, 위급한 상황 또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심장 떨림이 동일 장소와 시간에 있던 이성을 사랑

의 심장 떨림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하니 이 모든 조건의 검증이 이루어지려면

결국 필요한 건 시간이겠지. 내 마음이 맞는지, 우리 마음이 맞는지, 궤도의 진척은 적절한지 계속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것. 그래서 J와의 추억은 연애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얘기야.

그래서 난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썸 탄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마음의 온도를 정확히 표현하

고 말을 해도 혼란스러운데, 슬슬 상대방의 눈치나 보는 그런 썸은 별로야. 내가 상담자들에게 누누이

강조한 얘기처럼."

승기* : "하이고. 그러셔. 연애학개론 척척박사님께서 그래서 요즘의 연애와 사랑이 이모양 이꼴이세요?

너나 잘하세요다. 진짜. 상담은 무슨... 너 점점 꼰대가 돼가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으냐. 얘를""

헤롱 : (* 80년대 이승기 : 이 인간의 캐릭터 중에 가장 똑똑하고 리더십 있고 축구 잘하는 캐릭터이다. 그런

승기가 뭐라 하는데 반박할 말이 없다.) 시무룩하니 땅만 쳐다본다.

과묵 : "승기야. 너무 그러지 말자. 얘 속은 얼마나 힘들겠니.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무당이 제 운명

모르고, 마키아밸리가 군주가 못 되듯이 연애상담사가 연애를 못하는 건 진리라 하잖냐."

아야 : "헐. 과묵이 입 터졌네. 역시 한방이 있다니까. 마음의 상처도 잘 돌봐야 해. 맨날 나만 갖고

뭐라 하지 말고"

생생 : "얘들아. 너무 다운되지 말자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일진대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늘 고민하게

되잖아? 그런데 좋은 선택이란 없고, 어떤 선택이든 그 결정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

이 바로 좋은 선택이라 한단다. 후회 없는 선택으로 오늘을 살아가면 돼."

헤롱 : "그래. 얘들아. 긴 글 쓰고 읽느라 고생들 많았다, 어디 가서 이슬이나 한잔 하자. 내가 쏠게."




연애는 어렵다.

사랑은 더 어렵다.

인생은 오히려...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