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품격

각과 격

by 김호섭

각과 격.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초성으로 써보자 ㄱㄱ ㄱ.

ㅋㅋ ㅋ 아니다. ㄱㄱ ㄱ 이다.

고고 고 아니다. 각과 격이다.


말장난인가? 아니다.

단어가 다소 딱딱하고 무거우니 가볍게 시작해 보자는 얘기다.

각과 격이란 무엇인가 들여다보자. 기가 막힌 논리의 세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

각(閣)


대한민국 대표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OO 에는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여러 곳에 있다. 그중에서 춘천에 세워진 데이터센터를 <춘천각>이라 부른다.

'기록을 후대에 남기자는 뜻'에서 760년 넘게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의 장경각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출처 : 엔지니어 권님의 블로그)


사전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각이라 함은 넓고 높은 집이나 건물을 뜻한다. (친절한 예시 : 규장각, 홍루각)

<춘천각>에 보관되는 것은 당연히 Data이다. Data를 보관하고 컴퓨팅, 네트워킹을 책임지는 Storage, Server와 온갖 Network 장비 등등 다양한 IT 장비들이 이 각에서 보관 운용된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발열이 많으니, 발열 관리를 위한 각종 공조시설 또한 들어서는데 지리적 환경의 중요성에 따라 소양강댐

근처 변전소에서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받고 지역의 낮은 평균기온, 냉각수 공급 등등의 환경적 이유로 이

건물은 춘천이라는 최적의 장소에 설립된다. 2013년 완공됨.


이 <춘천각> 설립 Project 가 시작될 즈음, 미국계 컴퓨터 회사 D사의 일원으로서 참여한 적이 있다.

네OO 엔지니어링 부서 총괄 임원 (N이라 하자.)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N : "우리는 Data의 안전한 보관과 보안, 유통을 위해 춘천이라는 최적의 장소를 택했고, 거기에 지을

건물을 '각'으로 명명하여, Data의 단순한 보관이 아닌 품격 있는 Data. 그걸 구현하려는 겁니다.

일명 <춘천각>이죠. D사에서도 잘 좀 도와주세요."

헤롱 : "춘천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게다가 Data의 품격 이라니요. 격이 다른 Data라는 개념은 시장에서 분명 경쟁 우위 포인트이겠습니다. 물론, 그 Data의 품격은 User (최종 사용자 : 일반 국민)에 따라서 최종

결정되겠지만요. 익명이라는 공간에서 악플, 험담, 혐오 등등으로 Data 가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당사에서도 <춘천각>의 성공적인 설립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N :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 부분까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사명일진대...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사님께서 이런 부분의 해결을 위해 네OO 에 합류하실 생각은 어떠신가요?

헤롱 : "그런 얘기는 일단 한잔 하면서 얘기 나누시죠..." (하여튼, 술자리를 창조하고 개발하는 능력에 스스로 혀를 내두른다.)

* 여기서, 실제로 혀를 내두르진 않는다. 생각해 보시라. 엄중한 회의자리에서 메롱메롱 그런 실례를 범하진 않는다. 그만큼 기가 막힌다의 과장법이다. 그나저나, 요즘 과장법 문장을 글에 자주 쓰는 건 무슨 심리인가? 별볼일 없는 본인의 필력을 글에서나마 과대 포장하여 살짜쿵 숨겨보려는 얄팍한 술수인가?

왜지? 왜때문? 모를 일이다. 습관 되기 전에 반드시 고쳐야 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된 심리학자 선생님들 계시면 헤롱의 이런 심리상태의 이유를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격 (格)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 (출처 : Naver 어학사전).


이 단어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이니 굳이 추가적인 설명은 필요치 않겠다.

인격, 자격, 품격... 할 때의 격이다. 품위, 격조 등의 단어와 유사한 개념으로 어느 환경이나 상황에서 자연스럽고 원활하며 높은 단계의 정도를 의미한다.




'각'을 하드웨어라 보면, '격'은 소프트웨어로 봐야 바람직하겠다. 최적의 하드웨어에 품위와 격조를 겸비한 소프트웨어가 장착된다면 매우 근사한 완전체가 되리라는 생각을 확장해보자.


이슬의 각은 병이다. 이슬의 격은 술이다. 대부분의 술이 병에 담겨있다. 와인이나 위스키 또는 코냑, 빠이주, 보드카, 데낄라... 세상에는 많고도 다양한 종류의 술이 인간과 함께 무구한 역사를 만들어 왔다. (술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술이 세상에 없던 시절의 인류여. 애도를 표한다.)

술 (술병+술)이라는 물체의 구성은 거의 동일한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헤롱은, 고품격 위스키...라는 광고 카피는 맞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술을 마실 여력이 않되서 시샘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Data의 품격에 비추어 본다면, 결국 술의 최종적인 품격의 결정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비싸고 고급진 위스키를 마시고도 그 격을 떨어뜨리는 인간들이 세상천지에 오죽이나 많지 않은가.

반면에, 단돈 1600원 정도의 가격으로도 얼마든지 이슬의 품격을 한껏 올리는 것 역시 인간이다.

사용자이다. 결국 사용자, 이 인간들에 의해 Data 도 술도 그 품격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논리다.


이 기가 막힌 논리를 글쓰기에 대입해 보자.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각이다. 거기에 올라와 있는 격은 글이겠다.

그럼 이 글들의 품격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판단하는가. 글의 창조자인 작가와 글의 사용자인 독자이리라.

브런치 심사를 통과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는 독자이자 작가이다. 즉 우리다.

"당신 글의 품격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그렇게도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목놓아 우는지도 모르겠다.

허구헌날 긴긴 새벽마다 머리 쥐어박는 글린이 & 초보인 헤롱이 고수 작가님들께 자문을 구한다.

공통된 답은 하나다.

"이봐 자네, 헤롱. 진정 작가가 되고 싶은가? 자네는 지금 품격을 따질 때가 아닐세. 일단 쓰시게.

뭘? 글을.

어디에? 브런치에.

어떻게? 꾸준히 "

(하... 꾸준히 말고 다른 How to는 정녕 없는 것인가?)




모든 사물의 품격을 결정짓는 것은 그 사물 자체라기보다는 결국, 사용자 (인간) 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먼길 왔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사람보다 더 수많은 술(이슬)을 마셔왔다. 관계의 세상 속에서,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하게 되는데, 타인은 차치하고라도 그럼 나는 그 숱한 세월 속에서 마신

'이슬의 품격'은 어떠했는가?

최대한 객관성을 갖고 판단해보자. 어렵지 않다.


시절 1) 20살 ~ 어제 : 저품격

시절 2) 어제 ~ 미래 : 고품격 (예정)


심플하다. 이 인간이 원래 심플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기가 막힌 주장을 펼친다.

시절 1에서의 저품격 이슬을 그때는 저품격이었다 쳐도 이를 다시 고품격으로 스리슬쩍 트랜스포메이션

시키는 신박한 기술이 있다. 망각 또는 뻔뻔함이다.

아예 그런 시절은 기억이 안 난다는 망각과,


그렇게도 넘어지고 망가지고 깨지고 엎어지고 욕하고 욕먹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속상해하고....

울고... 불고...

쓰디쓴 좌절의 한잔과 분노 가득한 폭음의 그늘 속에서, 만만치 않은 세상의 험난과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겪고 경험할 수 있었던 터에 그리하여 지금의 나, 어수룩하지만 나름 그럭저럭 심성 괜찮은 녀석이 되어있으니 이 모든 시절의 이슬이 모두 고품격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함이다.

그래서, 체력 좋은 젊은 시절에는 완전 떡이 될 정도로 마셔볼 때도 있어야 한다는, 그래야 나이 들어 술 바람, 뒷바람에 정신 못 차리는 낭패를 피 할수 있다는 기적의 논리를 주장하는 뻔뻔함이다.

(아... 자아도취도 이 정도면 병이다. 의사의 진료가 필요하다. 의사 선생님들의 연락처도 댓글로 달아 주세요.)


다시, 시간이라는 최종병기, 최종변수의 등장이다.

시간의 마디와 구분에 대한 정의는, 국제적 표준은 없다. 그저 각자의 몫이다.

이 시간 속에, 이 세월 속에 나의 이슬에는 품격이 있었는가? 있을 것인가?

질문은, 몸과 마음이라는 인간의 각과 격인 '인생의 품격'과도 아스라이 맞닿아 있으리라.

그래서 요즘의 헤롱은 한잔의 이슬도 감사의 예를 다하며 마신다. 감사한 인생이니까.




오늘도 글쓰기에 여념이 없는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 그대의 눈동자를 위하여

건배를!


(* 맨 끝 문장은 영화 <카사블랑카> 험프리 보가트의 명대사 "그대의 눈동자를 위하여 건배를" 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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